선물보따리 짊어진 ‘키다리 아저씨’…동심들 ‘환한 미소’

입력 2016-12-30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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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전북현대 김신욱(뒷줄 왼쪽 3번째)이 28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146병동(소아종양혈액병동)을 찾아 병마와 싸우고 있는 아이들의 쾌유를 빌었다. ②김신욱이 146병동 아이들에게 나눠줄 선물을 정성스레 포장하고 있다. ③김신욱이 146병동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④김신욱이 서울아산병원 최재원 대외협력실장(왼쪽), 박영서 어린이병원장에게 지원기금 2000만원을 전달하고 있다.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① 전북현대 김신욱(뒷줄 왼쪽 3번째)이 28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146병동(소아종양혈액병동)을 찾아 병마와 싸우고 있는 아이들의 쾌유를 빌었다. ②김신욱이 146병동 아이들에게 나눠줄 선물을 정성스레 포장하고 있다. ③김신욱이 146병동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④김신욱이 서울아산병원 최재원 대외협력실장(왼쪽), 박영서 어린이병원장에게 지원기금 2000만원을 전달하고 있다.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환아들과 함께한 김신욱의 소중한 시간

쇼핑센터 이곳저곳 다니며 선물 구입하고
직접 예쁘게 포장하며 아이들과 만남 준비

사진찍고 사인하고 선물주며 즐거운 하루
병실 가득 퍼진 행복한 웃음소리에 활기


사랑 나눔은 우연히, 그리고 갑자기 이뤄졌다. 2006년 이후 10년 만에 통산 2번째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한 K리그 클래식(1부리그) 전북현대는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월드컵 출정식을 겸한 우승 미디어데이를 12월 1일 진행했다. 행사가 끝난 뒤 전북 클럽하우스에서 잠시 만난 ‘진격의 거인’ 김신욱(28)이 살짝 한마디를 했다. “뜻 깊고 좋은 일을 하고 싶은데, 마땅한 방식이 떠오르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힘을 불어넣는 일이 뭘까?”

따뜻한 김이 올라오는 커피 한 잔을 두고 함께 머리를 맞대자, 금세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146병동(소아종양혈액병동) 어린이·청소년 환자들을 찾아가기로 했다. 이 병동은 골육종, 림프종, 골수이형성증후군 등 각종 암과 사투를 벌이는 아이들의 치료를 맡고 있다. 날짜는 클럽월드컵 이후인 28일로 확정됐다.

‘김신욱축구교실’을 운영하는 ㈜시드의 전 구성원이 매달렸다. 외부인 방문이 엄격히 통제되는 장소인 만큼 작은 행복을 나누기까지의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병원과 여러 차례 연락하며 해당일 입원 및 외래환자(늘 변수가 많다)를 구분하고, 성별·연령별 ‘맞춤형’ 선물을 선별해야 했다. 유니폼, 티셔츠, 축구공 등이 아닌, 더 의미 있고 실용적인 선물을 나눠주고 싶었다. 블루투스 이어폰, 무선자동차, 드론, 장난감 노트북과 패드, 변신로봇 등 다양한 물품들을 쇼핑센터 이곳저곳에서 구입했다. 또 1·2부로 구성된 세부 프로그램을 직접 짰다. ‘홍명보자선축구’ 등 연말 행사에 참여하는 틈틈이 김신욱도 함께 선물을 포장하고 분류하면서 봉사의 의미를 찾았다.

28일 이른 아침, 아산병원 신관 복도에 한국축구와 아시아 챔피언에 등극한 클럽을 대표하는 197.5cm의 ‘키다리 아저씨’가 등장하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김신욱과 여동생 수진(26·시드 총무팀장) 씨, 동갑내기 개인 트레이너 이창현(시드 총괄팀장) 씨, 양민혁(25) 김신욱축구교실 수석코치(전 울산현대) 등의 일행이 병동이 위치한 14층으로 향할 때도, 예쁘게 포장된 선물들을 나를 때도 잔잔한 미소와 작은 속삭임이 끊이질 않았다.

박영서 어린이병원장과 가벼운 환담을 나누고 기부금 2000만원을 전달한 김신욱이 드디어 병동에 들어서는 순간, 이미 그의 방문 소식을 접하고 오매불망 기다린 환아들과 보호자들의 입가에 환한 웃음이 피어올랐다.

놀랍게도 병동에는 전북 팬들이 의외로 많았다. 전주월드컵경기장을 찾아 ‘녹색군단’의 당찬 진군을 직접 지켜본 환아들이 꽤 있었다. 최진훈(17·가명) 군은 그 누구보다 애타게 이날을 기다렸다고 한다. 어느 날 걸음을 옮기지 못할 정도로 다리가 아파 병원을 찾았다가 뜻밖의 진단을 받았다. 전북 경기 관전은 최 군의 유일한 낙이다. “꾸준히 전북 경기를 찾아서 봤어요. TV에서, 사정이 허락할 때면 경기장에서 같이 웃고 울었어요.”

집이 있는 전주와 서울을 왕복하며 병마와 씩씩하게 싸우고 있는 함호현(19·가명) 군은 퇴원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조심스러워하는 어머니를 졸라 이른 새벽부터 병원을 찾았다. 한 때 축구선수의 꿈을 키워가던 함 군은 가장 사랑하는 팀의 간판스타이자, 그것도 국내 최고 선수인 김신욱의 사인과 선물을 받고, 사진을 찍는 내내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이를 지켜본 병동 간호사는 “호현이가 가장 행복할 때 짓는 표정이 지금 나왔다”며 함께 행복해했다.

초등학교 재학 중 정부단체 어린이기자단에서 활동했고, 축구라면 사족을 못 쓰는 장준혁(16) 군도 전북의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깊이 감동했다. “전주성(전북월드컵경기장의 애칭)을 종종 찾았어요. 선수들이 너무 자랑스럽고요. 신욱이 형을 바라보는 지금 이 순간이 믿어지지 않아요.”

항상 진지한 표정의 윤준성(13·가명) 군은 유럽축구를 줄줄 꿰고 있다. “K리그를 아무래도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보니 좋아할 틈도 없었다”면서도 이것저것 김신욱에게 물어보며 적극적으로 궁금증을 푸는 모습이 주변을 흐뭇하게 만들었다.

종목은 다르지만 미래의 스포츠스타를 꿈꾸는 어린 선수도 김신욱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강원도 인제에 거주하는 초등학교 야구부원(투수) 함유성(12) 군은 중학교 야구부에 스카우트됐는데, 팀 합류 며칠 만에 안타까운 진단을 받았다. 그래도 엄마를 볼 때면 입버릇처럼 “봄까지는 나아야 한다. 5월 대회에 출전한다”며 의지를 불태우는 투지의 학생이다.

그러나 계속 웃음만 있지는 않았다. 자리를 파할 무렵, 3층 소아 중환자실에서 한 아빠가 헐레벌떡 김신욱을 찾아왔다. 의식이 없는 24개월 아기(아들)를 위로하고 격려해달라는 이야기를 아주 어렵게 꺼냈다. “큰 아이가 지난해 같은 병으로 하늘나라로 떠났다. 너무 가슴 아프다”는 말에 걸음을 옮긴 김신욱은 펑펑 눈물을 쏟았다. 간절히 기도하며 아기의 쾌유를 빌었다. 아빠, 부모의 마음을 이제는 충분히 이해하는 김신욱이다. “오늘 함께한 모두는 세상 어떤 것보다 힘들고 기약 없는 싸움을 하고 있다. 축구의 승패는 극히 작은 부분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왜 더욱 열심히 뛰어야 하는지, 앞으로 어떤 마음과 자세로 살아야 할지를 느낀 소중한 시간”이라던 그의 눈가는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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