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의 발걸음이 대거 모이는 명절 대목에는 이 같은 현상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명절은 여름과 연말과 더불어 극장가 대목으로 꼽힌다. 너도나도 믿을 만한 ‘텐트폴 무비’를 내놓지만 동시기 경쟁 속에 빛을 보는 작품은 하나 혹은 원톱과 서브에 그친다.
최근 몇 년을 돌아보면 2013년 짧은 설 연휴에는 ‘7번방의 선물’(최종 관객수 1281만명)과 ‘베를린’(최종 관객수 716만명)이 극장가를 사로잡았다. 그해 추석 연휴에는 ‘관상’(최종 관객수 913만명)이 독보적인 흥행을 일궜다. 2014년 설 시즌에는 ‘겨울왕국’(최종 관객수 1029만명)과 ‘수상한 그녀’(최종 관객수 865만명)가 극장가를 이끌었다. 추석 연휴에는 ‘루시’와 ‘두근두근 내 인생’도 있었지만 ‘타짜-신의손2’(최종 관객수 401만명)의 승리였다.
2015년 설 연휴에는 ‘조선명탐정: 사라진 놉의 딸’(최종 관객수 387만명)과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최종 관객수 612만명)가 두각을 보였고 추석에는 ‘사도’(최종 관객수 624만명)가 극장가를 점령했다.
지난해 설 연휴에는 황정민 강동원의 버디 무비 ‘검사외전’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쏠림’의 정점을 찍었다. ‘마을버스 수준의 상영시간표’를 보인 ‘검사외전’은 최종 관객수 970만명을 기록했다. 2016년 추석 시즌도 마찬가지. 추석마다 ‘관상’ ‘사도’를 히트시킨 송강호 주연 영화 ‘밀정’(최종 관객수 750만명)의 압승이었다.
● 전세대 아우르는 오락무비 ‘공조’…권력층의 밑바닥 풍자한 ‘더 킹’
설 연휴를 약 2주 앞둔 시기, 극장가도 대목을 준비하고 있다. 현 박스오피스는 4일 개봉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과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모아나’가 나란히 1위와 2위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너의 이름은.’과 ‘모아나’의 흥행이 그대로 설까지 이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설에 앞서 ‘큰 벽’ 두 개가 나란히 막고 있기 때문. 영화계는 18일 개봉하는 영화 ‘공조’와 ‘더 킹’의 경쟁 구도를 예측하고 있다.
먼저 ‘공조’는 남한으로 숨어든 북한 범죄 조직을 잡기 위해 남북 최초의 공조수사가 시작되고, 임무를 완수해야만 하는 특수부대 북한형사와 임무를 막아야만 하는 생계형 남한형사의 예측할 수 없는 팀플레이를 그린 영화. 작정하고 액션을 준비한 현빈과 영화 ‘럭키’를 통해 원톱으로도 인정받은 유해진의 조합으로 기대를 모은다.
같은날 선보이는 ‘더 킹’은 무소불위 권력을 쥐고 폼 나게 살고 싶었던 태수(조인성)가 대한민국 권력의 설계자 한강식(정우성)을 만나 세상의 왕으로 올라서기 위해 펼치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정우성 조인성에 배성우 류준열 김의성 그리고 김아중까지 ‘빵빵한’ 캐스팅과 ‘관상’ 한재림 감독의 연출작으로 ‘이슈 몰이’를 해냈다.
어디를 가나, 누구를 만나나 “‘더 킹’ 어떠냐?” “‘공조’ 재밌나” 등 두 작품이 그야말로 ‘장안의 화제’다. 12일 영화 ‘더 킹’과 ‘공조’를 연이어 본 후 조심스럽게 예측하는 설 연휴 극장가 판도는 ‘공조’와 ‘더 킹’의 쌍끌이 흥행이다. 남자 배우들의 ‘브로맨스’가 짙은 작품이라는 공통점이라는 것 외에 겹치는 부분이 거의 없다. 소재도 장르도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도 다르다. 관전 포인트가 차별화 됐기 때문에 윈-윈을 노려볼 만한 상황.
‘공조’는 ‘국제시장’ ‘히말라야’를 내놓은 JK필름 특유의 유쾌하고 따뜻한 감성작이다. 남북 동포애, 가족애, 형제애, 남녀의 사랑 등이 두루 녹아있어 설 연휴에 ‘안성맞춤’. 여기에 현빈은 액션을 중점적으로, 유해진은 웃음을 집중적으로 맡았다(물론 유해진은 액션도 훌륭하다).
맨몸으로 카체이싱 격투, 총격, 와이어 액션까지 펼치는 현빈은 ‘제이슨 본’을 떠올리게 한다. 현빈은 대역을 마다하고 직접 소화하는 열정을 보였다. 그가 와이어 하나에만 의지한 채 액션을 연기한 이태원 자동차 추격신은 보기만 해도 아찔한 느낌을 자아낸다. 유해진은 특유의 능청스럽고 친숙한 연기로 보는 이들을 웃기고 울린다. ‘공조’ 속 그의 인간적인 매력은 극 중 아내 장영남의 대사처럼 “치명적”이다.
‘공조’가 즐기면서 볼 ‘오락 무비’라면 ‘더 킹’은 진중하다. 스타일리시하면서도 던지는 메시지는 묵직하다. 조인성이 연기하는 한태수의 1인칭 시점을 따라가는 ‘더 킹’은 한태수의 흥망성쇠 인생사와 대한민국 현대사를 연결했다. 격동의 1980년대부터 2010년 이후까지 시대 순으로 전개하면서 권력 계층의 추악한 뒷모습을 신랄하게 풍자한다. 직접적이고 설명적이기도 하다. 아는 만큼 보이고, 느끼는 만큼 분노한다.
영화 곳곳에 실제 뉴스 자료화면이 즐비하게 삽입돼 마치 현실처럼 다가온다. 자료화면 가운데 故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가결 당시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미소 짓는 모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강렬한 무언가를 남긴다.
‘더 킹’에 앞서 최근 부정부패가 판치는 대한민국의 민낯을 보여준 영화 ‘판도라’와 ‘마스터’는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12일까지 ‘판도라’는 456만명을 ‘마스터’는 674만명을 동원했다. 관객들의 뜨거운 분노가 ‘더 킹’까지 영향을 끼칠지 관심이 모인다. 영화의 메시지와 무관하게 정우성과 조인성을 한 스크린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더 킹’은 매력적인 작품이다.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CJ엔터테인먼트-N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