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주권이 왜 ‘나쁜 사마리아인’인가?

입력 2017-02-08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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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주권. 스포츠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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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 네 나라로 돌아가.’, ‘이제 용병으로 취급해야.’, ‘kt는 외국인 선수가 한 명 더 있었네.’

5일 우완투수 주권(22·kt)은 미국 애리조나 투산 스프링캠프에서 중국대표팀으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인터넷 뉴스 댓글과 야구 커뮤니티에 올라온 몇몇 글들은 차마 입에 담기조차 어려울 정도였다.

주권은 애리조나 투산 캠프 현지에서 중국대표팀 참가 결정이 발표되기 직전 스포츠동아와 인터뷰를 했다. “만약 중국 유니폼을 입고 WBC에 출전하면 앞으로 나를 보는 시선에 선입견이 생길까 두려웠다”고 말했다.

솔직한 심경이었지만 걱정은 현실이 됐다. 물론 따뜻한 박수와 격려도 존재한다. 그러나 익명의 탈을 쓴 일부의 악질적인 비난은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한다.

읽을 가치조차 없는 비난을 바라보다 2014년 11월 17일 주권과 처음 만났던 날이 떠올랐다. 열아홉 살 주권은 고교 졸업을 앞두고 kt 마무리 캠프에서 훈련 중이었다. 한국에 처음 도착한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2005년 12월 8일 입니다.” 1995년 중국에서 태어난 주권은 어머니와 함께 한국에 정착했고 귀화했다. 한국말도 서툴렀고 야구는 본 적도 없었던 소년은 팀의 에이스가 됐다. 그리고 모두가 꿈꾸는 프로야구선수가 됐다. 여전히 말이 참 없는 청년은 마운드에 오르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씩씩하게 공을 던진다. 대한민국 국가대표가 꿈인 주권은 한중 야구의 교류, 그리고 WBC라는 큰 대회 경험을 위해 중국대표팀을 선택했을 뿐이다. 한국보다 중국이 더 좋다가 아니다. 주권이 한국대표팀과 중국대표팀을 선택할 수 있었다면 당연히 한국이었을 것이다.

주권에 대한 비판의 이유는 단지 그의 아버지가 중국인이고 중국에서 태어났다는 것뿐이다.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야구와 한국야구의 스포츠외교에서 주권의 역할과 다문화가정 아이들에게 주는 희망의 크기 앞에서 논할 가치도 없는 악담일 뿐이다.

기원전 722년 이스라엘은 아시리아에 정복됐다. 이후 유대인과 아시리아인의 혼혈 사마리아인이 태어나기 시작했다. 유대인들은 수백 년 동안 이웃이자 친척인 사마리아인을 ‘나쁜 사람들’이라고 경멸했다. 그러나 성경에는 강도를 만나 곤경에 처한 나그네를 외면하는 유대인 제사장, 그와 반대로 그를 구해낸 사마라아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사마리아인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나쁜 사마리아인’으로 불렸던 그들이었다. 그래서 ‘선한 사마리아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더 크다. 왜 성실히 열심히 살아온 대한민국 청년 주권이 나쁜 사마리아인이어야 하는가.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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