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rts & Law Story] 실질적 평등에 근접한 ABBA 승부차기

입력 2017-07-20 05:45: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승부차기는 얼핏 보면 양 팀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미묘한 승률의 차이가 그 안에 존재하고 있다. 형식적 평등과 실질적 평등이라는 개념을 대입하면 더욱 뚜렷해진다. 2016코파아메리카 칠레와의 결승전에서 승부차기를 실축한 뒤 자책하고 있는 아르헨티나 리오넬 메시.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평등은 헌법상 기본권…기회의 균등 보장
실질적 평등은 과정·결과의 균등까지 고려
승부차기 역시 좀더 공평한 방식으로 발전


승부차기는 ‘11m 짜리 러시안 룰렛’으로 불린다. 자칫하면 모든 걸 잃어버릴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벌이는 무모한 모험이라는 의미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 만큼 운도 따라주어야 한다. 골키퍼와 1대1로 맞서는 키커의 긴장감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다. 오죽하면 FIFA의 회장이던 제프 블라터도 ‘재앙’이라고 표현하면서 다른 것으로 대체하자고 했을까!

월드컵에서 승부차기가 도입된 것은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이 처음이었다. A-B-A-B처럼 A팀과 B팀의 선수들이 번갈아가며 한 번씩 차는 방식이었다. 이런 순서로 양 팀에 다섯 번씩의 기회를 공평하게 보장했다.

그런데 이런 방식이 정말로 공평하게 기회를 보장하는 방식일까?

만일 공평한 방식이라면 먼저 차든 늦게 차든 그 승률이 비슷해야 한다. 즉 A팀이든 B팀이든 기본적으로 50% 내외의 승률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실제 승률은 그렇지 않았다. 그 동안의 결과 분석으로는 먼저 찬 팀의 승률이 60% 가량이나 되었다고 한다. 사람의 심리가 작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먼저 찬 선수가 킥을 성공시키고 나면 나중에 찬 선수는 심리적인 긴장도가 더 커지다 보니 성공률이 떨어진 것이었다.

또 승부차기는 리그전이 아닌 토너먼트 방식에서 주로 열린다. 지면 탈락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인 것이다. 괜히 ‘11m 짜리 러시안 룰렛’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다. 이런 순간에 60% VS 40%의 승률은 당사자에겐 매우 큰 차이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 과연 공평한 방식일까?


● 형식적 평등과 실질적 평등

평등권은 문명국가라면 모두 다 보장하고 있는 헌법상의 기본권이다. 세계인권선언은 제7조에서 ‘모든 사람은 법 앞에서 평등하며, 어떠한 차별도 없이 법의 동등한 보호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제연합헌장이나 우리 헌법 역시 평등권을 보장하고 있다. 평등권은 남녀평등, 인종 차별 금지, 외국인 차별 금지, 학력 차별 금지 등등 그 영역이 매우 다양하다. 물론 스포츠 분야에 있어서도 평등권이 보장된다.

평등권은 여러 형태로 분류할 수 있다. 형식적 평등과 실질적 평등도 그 중 하나다. 형식적 평등은 통상 결과를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기회를 보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반대의 영역에 있는 것이 실질적 평등이다. 기회뿐만 아니라 과정이나 결과까지도 평등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UN 회원국이 모였다. 평등한 감축을 위해 회원국 전체가 현재 배출량의 10%를 일률적으로 감축하자는 제안이 있었다. 선진국처럼 많이 배출하는 나라는 30%를 감축하고, 후진국처럼 배출량이 적은 나라는 10%를 감축하자는 제안도 있었다. 어느 것이 더 평등한 감축이라는 이상에 맞는 걸까? 이처럼 형식적 평등은 기회의 균등을 의미한다면, 실질적 평등은 과정이나 결과의 균등까지 고려한 평등을 의미한다.


● 실질적 평등으로 일보전진

승부차기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똑같이 다섯 번의 기회만 보장하면 평등한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를 놓고 보면 먼저 차는 팀이 유리한 게 사실이었다. FIFA도 이러한 결과에 주목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열린 U-20 월드컵에서 최초로 승부차기 방식을 변경했던 것이다. 즉 기존처럼 A-B-A-B 방식 대신 A-B-B-A-A-B-B-A방식을 도입했다. 한번은 A팀이 먼저 차고 그 다음 한번은 B팀이 먼저 차는 방식으로 바꾼 것이다. 새로운 방식이 실제로 균등한 결과를 가져올지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한다. 하지만 선수들의 만족도가 높았다는 이야기가 들리는 걸 보면 좀 더 실질적 평등에 접근한 방식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 스포츠를 지배하는 이념은 정의

승부차기를 도입하기 전에는 동전 던지기로 이긴 팀을 결정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운에 좌우된다는 비판이 있어 좀 더 실력으로 평가하기 위해 승부차기를 도입했다. 그리고 그 방식이 좀 더 공평하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평등은 이미 오래전부터 정의와 같은 문제라고 인식되어 왔다. 즉, 평등하지 않으면 정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승부의 세계는 정의로워야 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스포츠가 추구하는 이념이다.

법무부 법질서선진화과장 양중진 부장검사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