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타자 이승엽의 23년’을 말한다…⑤이승엽이 기억하는 순간들

입력 2017-09-08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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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이 마련해준 은퇴 투어에서 서건창과 인사를 나누는 이승엽(왼쪽). 사진제공|넥센 히어로즈

‘국민타자’ 이승엽(41)이 마침내 은퇴한다. 1995년 삼성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한 뒤로 23년이다.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로 숱한 불멸의 대기록과 영광의 기억이 함께했다. 한 시절을 주름잡던 대스타들을 보며 그가 성공을 꿈 꾼 것처럼, 지금은 ‘미래의 이승엽’을 머릿속에 그리는 선수들이 넘쳐난다. 40년을 바라보는 KBO리그, 100년을 훌쩍 넘긴 한국야구에서 그 누구보다 위대한 타자였기 때문이다. 스포츠동아는 21세기 한국야구의 최고 스타로 기억될 이승엽의 발걸음을 매주 주말판을 통해 되돌아보는 기획 시리즈를 마련했다.


⑤ 이승엽이 기억하는 순간들Ⅰ…잊지 못할 ‘세 남자’

지난 23년간 이승엽은 무수히도 많은 영광스러운 기억과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빚어냈다. 그의 활약상과 전성기를 직접 지켜볼 수 있었다는 자부심은 먼 훗날 우리에게 아련한 추억과 행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여러 명장면들을 만들어낸 데 대한 스스로의 뿌듯함 또한 컸다. 그러나 솔직담백한 성격의 그는 아픈 기억마저도 주저 없이 털어놓았다. 이승엽이 직접 넘긴 추억의 사진첩을 2회로 나눠서 함께 들여다본다.

한때 홈런경쟁을 펼쳤던 심정수와 이승엽(오른쪽).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 심정수와 펼친 역대급 홈런 레이스

“2002년 47호 홈런을 쳤을 때도 기억난다. 심정수 선배와 공동선두로 끝날 수 있었는데, 내가 마지막 경기에서 47호 홈런을 치고 단독선두로 마쳤다. 나만 아니었다면 심정수 선배가 홈런과 타점 모두 1등이었다.”

이승엽의 최대 라이벌로는 ‘흑곰’ 타이론 우즈(48)가 첫 손가락에 꼽힌다. 한국에선 두산(1998~2002년), 일본에선 요코하마(2003~2004년)와 주니치(2005~2008년) 소속으로 활약한 그는 이승엽에게 좌절감을 안겼던 몇 안 되는 선수들 중 한 명이다. 이승엽과 우즈의 홈런 대결은 한국과 일본 모두에서 비상한 관심을 불러 모았다.

이승엽과 우즈가 KBO리그를 쥐락펴락하던 그 시절, 또 한 명의 거포가 엄청난 괴력을 뽐내고 있었다. ‘헤라클레스’로 불리던 심정수(42)다. 1994년 OB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한 그는 현대(2001~2004년)와 삼성(2005~2008년)을 거치며 프로 15년간 통산 328홈런을 터트렸다. 46홈런을 날린 2002년, 53홈런을 뽑은 2003년이 커리어의 정점이었다.

그럼에도 개인 타이틀과는 인연이 적었다. 심정수도 밤하늘을 밝히는 큰 별이었지만, 이승엽의 빛이 더 영롱하고 또렷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심정수는 은퇴 직전이던 2007년에야 홈런(31개)과 타점(101개)에서 1인자로 등극했다. 그가 프로에서 얻은 개인 타이틀의 전부다.

이승엽의 기억대로 2002년 심정수와 펼친 홈런 레이스는 흥미진진하고 극적이었다. 마치 그 이듬해 단일시즌 최다홈런 아시아신기록을 작성할 때처럼 2002년에도 최종전에서 치열했던 홈런 레이스의 마침표격인 47호 아치를 그렸다. 10월 20일 광주 KIA전 연장 13회 우중월솔로홈런을 쏘아 올렸다.

이미 정규시즌을 마치고 LG와의 준플레이오프를 준비하던 심정수는 망연자실했다. 수원구장에서 훈련을 마치고 숙소로 이동하던 도중 이승엽의 47호 홈런 소식을 접했다. 홈런(46개), 타점(119개), 득점(101개), 장타율(0.643) 모두 이승엽(47홈런·126타점·123득점·0.689)에 이어 2위였다. 심정수는 2003년 53홈런을 때리고도 이승엽(56홈런)의 그늘에 가렸다. 50개 이상을 치고도 홈런왕에 오르지 못한 KBO리그 유일의 타자로 남아있다.

2003년 8월 9일 대구 LG-삼성전 9회초 LG 장재중의 빈볼시비가 발단이 돼 삼성 이승엽과 LG 서승화간에 주먹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스포츠동아DB



● 서승화로 기억되는 상처

“서승화와 싸운 장면은 지금도 후회된다. 좀더 참고 냉정했어야 했다. 지금은 두 아들을 키우니까 더 그렇다. 그 장면은 (TV를 통해) 두고두고 나오는데, 아들들이 그 모습을 봤을 때 어떤 생각을 할지 아빠로서 미안하다. 그 당시에는 아들로서도 (아버지에게) 죄송했다.”

2003년 8월 9일 대구 LG-삼성전 9회초 발생한 난투극은 지금까지도 KBO리그에서 가장 격렬했던 벤치 클리어링의 대표적 사례로 회자된다. LG 장재중 타석 때 삼성 라형진의 빈볼성 투구가 직접적 발단이었다. 양 팀 선수들 전원이 그라운드로 뛰쳐나와 뒤엉켰다. 그 와중에 이승엽과 LG 투수 서승화(38)가 멱살을 잡고 주먹을 주고받았다. 앞선 이닝에서 서승화가 이승엽의 허벅지를 맞히면서 쌓였던 감정 때문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 일로 이승엽과 서승화는 나란히 2경기 출전정지 및 벌금 200만원의 징계를 받았다.

야구장 안팎에서 모범적인 선수로 정평이 나있는 이승엽에게는 큰 상처였다. 2012년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서도 “야구는 아이들을 비롯해 청소년들이 보고 있는데 잘못된 모습을 보여 후회한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층 성숙해진 계기였다. 그는 서승화와의 악연을 떠올리며 “그 사건 뒤로는 좀더 성숙해졌던 것 같다. 일본에서도 상대 투수들이 위협구를 많이 던져 (참기) 힘들 때도 있었지만, 그 사건 때문에 참아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02년부터 2010년까지 LG에서 뛴 서승화는 프로통산 147경기에 등판해 2승23패17홀드1세이브, 방어율 6.25를 기록했다. 크게 내세울 만한 성적은 아니지만, 시속 150㎞의 빠른 볼을 던지던 좌완이라 타자들이 느끼는 위압감은 상당했다. 재능을 꽃 피우지 못한 채 은퇴했지만, 이승엽과의 불미스러운 일에 결부돼 꾸준히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지바롯데 시절 이승엽. 사진제공|지바롯데



● 마쓰자카라 더 특별했던 첫 안타

“일본에서 친 첫 안타도 생생하다. 마쓰자카를 상대로 뽑았다. 이런저런 인연이 있는 마쓰자카를 상대로 첫 안타를 쳤기 때문에 좋았다.”

이승엽은 2004년 일본으로 건너가 2년간 지바롯데 유니폼을 입었다. 데뷔전은 2004년 3월 27일 원정경기로 치러진 세이부와의 개막전이었다. 당시 상대 투수는 우완 마쓰자카 다이스케(37·현 소프트뱅크)였다. 메이저리그(2007~2014년·보스턴~클리블랜드~뉴욕 메츠)에 진출해 한때 ‘삼진 머신’으로 통했던 그는 지금은 불같은 강속구를 잃고 계륵으로 전락했지만, 당시만 해도 일본을 대표하는 대투수였다.

4번 지명타자로 나선 이승엽은 1회 2사 1루서 마쓰자카의 4구째 체인지업을 받아쳐 세이부돔 오른쪽 펜스를 원바운드로 때리는 선제 결승 1타점 2루타를 뽑았다. 반면 경기를 앞두고 “이승엽을 비롯한 지바롯데 타자들을 분석한 비디오테이프는 볼 필요 없다”며 자신만만해하던 마쓰자카는 9이닝 5실점 완투패를 떠안았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3·4위전에서 이승엽에게 결승 2타점 2루타를 허용한 마쓰자카(오른쪽).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이승엽과 마쓰자카의 인연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승엽은 예선리그와 3·4위전에서 잇달아 마쓰자카를 상대했다. 9월 23일 벌어진 예선리그에서 이미 중월2점홈런으로 마쓰자카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던 이승엽은 나흘 뒤 3·4위전에선 8회말 2사 2·3루서 결승 2타점 2루타로 온 국민을 열광시켰다. 앞선 세 차례 타석에서 잇달아 삼진으로 물러났던 터라 이승엽으로서도 값진 한방이었다. 결국 일본을 3-1로 꺾은 한국은 사상 첫 올림픽 동메달에 입맞춤했다. ‘합법적 병역 브로커’, ‘8회의 사나이’라는 이승엽의 별명도 이 때부터 시작됐다.

정재우 전문기자 jac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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