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한일전 참패 그 후…잠 못 이룬 할릴호지치…힘 실어준 일본축구협

입력 2017-12-19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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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전이 이렇게 무섭다. 승승장구하던 일본축구가 도쿄에서 열린 E-1 챔피언십에서 4-1로 참패당한 뒤 참담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바히드 할릴호지치 감독은 역적이 됐고, 경질론에 휩싸였다. 16일 한국에 참패한 일본 선수단의 참담한 표정.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한일전이 이렇게 무섭다. 승승장구하던 일본축구가 도쿄에서 열린 E-1 챔피언십에서 4-1로 참패당한 뒤 참담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바히드 할릴호지치 감독은 역적이 됐고, 경질론에 휩싸였다. 16일 한국에 참패한 일본 선수단의 참담한 표정.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본선행으로 잠잠해진 비난 여론 다시 비등
할릴호지치 “한일전 이후 제대로 잠 못 자”
JFA 회장 “내년 월드컵까지 믿고 맡길 것”


일본축구의 ‘월드컵 시계’가 다시 삐걱거리고 있다.

1998프랑스월드컵은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축구역사에 다양한 명과 암을 남겼다. 한국은 당시 최종예선으로 치른 1997년 원정 한일전에서 ‘도쿄대첩’을 완성시켰지만, 이후 한일 정기전 패배와 본선에서 부진을 겪으며 사령탑 중도교체라는 비극을 맞게 된다. 일본도 그때를 잊을 수 없다. 역사상 최초로 본선에 진출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다만 한국과 마찬가지로 본선에서 세계무대의 높은 벽을 느낀 채 쓸쓸히 퇴장했다.

그리고 20년이 흘렀다. 그동안 일본은 거시적 관점의 투자와 육성을 통해 아시아를 대표하는 강호로 거듭났다. 이미 한국과 어깨를 나란히 했고 라이벌을 뛰어 넘어섰다는 평가도 나온다. 실제로 일본축구의 근간인 J리그는 자생력을 갖춘 프로스포츠 산업으로 자리를 잡았다. 대표팀 역시 2018러시아월드컵에 이르기까지 6회 연속 본선진출을 달성했다.

그런데 이처럼 아무 탈 없이 흘러가던 일본축구가 암초에 부딪혔다. 16일 ‘2017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에서 치른 한일전이 문제였다. 숙명의 라이벌전은 두 나라의 월드컵 정국을 뒤흔드는 기폭제가 됐다.

한국은 4-1 대승으로 신태용 체제가 힘을 얻게 된 반면, 일본은 안방에서의 대패로 바히드 할릴호지치 체제가 다시 흔들리게 됐다.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쪽은 일본 언론이다. 현지 취재진은 한일전을 앞둔 때만해도 일본이 초반 2승을 거둔 덕분에 밝은 표정이었지만, 한일전 직후부터는 말조차 쉽게 건네지 못할 정도로 분위기가 바뀌어있었다.

일본 할릴호지치 감독.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일본 할릴호지치 감독.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흥미로운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이들 가운데 한 기자는 “최종예선 막판 잠재워진 할릴호지치 감독을 향한 불신이 다시금 터져 나올 수도 있다”고 귀띔했다. 현지 언론들의 보도와 현장 기자들의 힌트를 통해 본 일본축구의 난맥상은 한국축구의 최근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본 역시 한국과 마찬가지로 이번 최종예선 내내 홍역을 치렀다. 아랍에미리트(UAE)와 1차전을 패한 뒤 B조 3위까지 성적이 떨어지며 위기가 시작됐다. 여기에 할릴호지치 감독 특유의 강압적인 지도 스타일과 혼다 게이스케, 카가와 신지 등 스타들을 발탁하지 않는 충격요법이 겹치며 안팎의 불만이 쌓였다. 일본 취재진은 “최종예선 후반부부터는 매 경기를 앞두고 ‘이번에 패하면(혹은 비기면) 감독을 경질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고 전했다. 한국과 너무나도 흡사한 장면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비난이 한 방에 잠재워졌던 이유는 본선행 티켓에 있었다. 호주와 9차전 승리로 러시아행을 확정지으며 할릴호지치 체제는 다시 안정세를 찾게 된다. 물론 허니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16일 한일전 대패로 할릴호지치 감독은 다시 위기에 봉착했다. 그간 수그러들었던 일본 언론들이 비난의 선봉에 섰다. 17일 주요 스포츠신문을 비롯해 일간지들은 지면을 대거 활용해 한일전 소식을 전했다. 닛칸스포츠는 “한 마디로 한심한 패배였다. 대표팀은 자부심이 있는가”라는 타지마 코조 일본축구협회(JFA) 회장의 촌평을 실었다. 스포츠호치는 “경기장에서 ‘감독은 물러나라’는 이야기마저 들렸다”고 보도했다.

비난보다 뼈아픈 건 무관심이다. 한일전 참패 소식을 매섭게 비판하던 일본 언론들은 아예 대표팀 소식을 뉴스와 지면에서 제외하고 있다. 레알 마드리드의 클럽월드컵 우승 소식이 더욱 크게 다뤄진 18일자 산케이스포츠 지면. 도쿄 | 고봉준 기자 shutout@donga.com

비난보다 뼈아픈 건 무관심이다. 한일전 참패 소식을 매섭게 비판하던 일본 언론들은 아예 대표팀 소식을 뉴스와 지면에서 제외하고 있다. 레알 마드리드의 클럽월드컵 우승 소식이 더욱 크게 다뤄진 18일자 산케이스포츠 지면. 도쿄 | 고봉준 기자 shutout@donga.com


다음날은 분위기가 더욱 삼엄했다. 비난이 무관심으로 옮겨간 듯 보였다. 전날 들썩였던 언론들은 다소 잠잠해졌다. 18일자 주요 신문은 대표팀 기사 대신 레알 마드리드의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 월드컵 우승 소식으로 지면을 채웠다. 산케이스포츠 정도가 “변명의 여지가 없는 패배다. 한국은 투지로 가득 찼던 반면, 일본은 그렇지 못했다”고 정면 비판한 혼다 게이스케의 인터뷰를 실었을 뿐이다.

JFA는 일단 불끄기에 나섰다. 18일과 19일 이틀간 E-1 챔피언십 검증회의를 열고 대책 수립에 나섰다. 여론을 의식한 듯 급히 마이크 앞에 서기도 했다. 18일 도쿄 축구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타지마 코조 회장은 “내년 월드컵까지 할릴호지치 감독에게 믿고 맡기겠다”며 힘을 실어줬다. 이틀 만에 모습을 드러낸 할릴호지치 감독은 “한일전 이후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이번 경기를 두고 많은 비판 기사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더 의욕이 생긴다. 월드컵에 맞춰 제대로 준비 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서둘러 여론 봉합에 나선 일본축구. 그러나 다시 찾아온 ‘불신의 시대’ 그 끝은 아직 아무도 알지 못한다.

도쿄 | 고봉준 기자 shuto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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