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다이어리] 단일팀을 개회식장으로 이끈 머레이 감독의 용단

입력 2018-02-08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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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라 머레이 감독-박철호 감독(오른쪽).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돌이켜보면 참으로 부담스러운 짐이었다. 제 식구 챙기기도 버거운 터에 난데없이 커다란 바위 하나가 굴러들어왔다. 남과 북을 합쳐 올림픽에 출전하라는 통보.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남모를 마음고생도 했다. 그러나 흔들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특유의 똑 부러지는 강단 덕분일까. 이제는 어두운 표정을 찾아볼 수가 없다. 누구보다 복잡한 올겨울을 보내고 있는 감독, 새라 머레이(30·캐나다)다.

남북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을 이끌고 2018평창동계올림픽에 출격하는 머레이 감독에게 지난 한 달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간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단일팀 구성이 논의됐고, 그리 반갑지 않던 손님들과 마주하게 됐다.

일각에선 걱정이 태산이었다. 갓 서른을 넘긴 여성 사령탑, 그것도 한국 문화와 역사적 배경에 익숙지 않은 외국인 감독이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리라는 시선이었다. 심지어 북쪽에선 작은아버지뻘 되는 코치까지 내려온 상황. 결국 뜻하지 않던 스포트라이트가 자신과 선수들을 향했다. 지난 4년간의 노력이 무색할 만큼 경기 외적으로 달갑지 않은 주목을 받았다.

사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났어도 누구 하나 뭐랄 사람이 없었다. 당사자의 심경과 짐의 무게를 알았기 때문이다. ‘머레이 동정론’이 나온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옆에서 지켜본 머레이 감독은 예상을 한참 빗겨가 있었다. 빠르게 마음을 다잡고 선수단을 통솔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땐 굳이 참지 않았고, 원하는 바가 있을 땐 반드시 관철시켰다.

새라 머레이 감독.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7일 관동하키센터에서 훈련을 마치고 취재진 앞에 선 머레이 감독은 어느 때보다 표정이 밝았다. 지난달 22일 긴급 기자회견 그리고 4일 단일팀 미디어데이 때와 비교하면 미소가 더욱 환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머레이 감독은 “단일팀 훈련이 예상보다 잘 진행되고 있다. 호흡(Chemistry)과 소통(Communication) 모두 만족스럽다”며 밝게 웃었다. 남북선수 이야기를 할 때는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미국에서 자란) 한국선수 박윤정은 한국어를 하지 못하고, 북한선수 김향미는 영어를 하지 못한다. 그러나 둘은 서로 대화하고, 때론 껴안기도 한다”면서 선수들이 잘 뭉치고 있음을 대신 전했다.

머레이 감독은 9일 평창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릴 개회식에 선수단 전원을 이끌 생각이다. 다음날 스위스와 B조 예선 1차전을 앞두고 컨디션 조절에 애를 먹을 수도 있음에도 용단을 내렸다. 그런데 그 배경이 참 감사할 따름이다.

“라커룸에서 정치는 존재하지 않지만, 경기장을 벗어나면 단일팀은 분명 정치적 메시지를 지니게 된다. 그런 면에서 개회식 전원 참가는 단합을 보여주는 좋은 계기다.”

강릉 | 고봉준 기자 shuto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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