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은 기후와의 전쟁…강추위 보다 무서운건 ‘폭설·강풍·비’

입력 2018-02-09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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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최상의 경기력, 날씨가 최대 변수

알파인 스키에선 폭설 내리면 코스 멘붕
강풍·안개 심할땐 스키점프 취소되기도

비 내린 28년 스위스대회 자갈밭 노르딕
64년 인스부르크선 군인 6000명 눈 동냥


평창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가장 많이 나온 단어 가운데 하나가 추위와 온도다. 올겨울 유난히 맹추위가 한반도 전역을 뒤덮은 가운데 한겨울 추운 밤에 벌어질 개막식과 설상경기를 놓고 많은 걱정이 나왔다.

이희범 대회조직위원장이 6일 이례적으로 전세계 취재진 앞에서 관객용 방한장비 세트를 보여주고 직접 입어보면서 큰 문제가 없다는 시그널을 보내는 이유도 그만큼 낮은 기온이 걱정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번 대회를 커버하려고 세계 각국에서 온 취재진들도 평창 강릉의 추위에 혀를 내두른다. 일본 NHK-TV의 평창 파견 현장 앵커는 밤 9시 뉴스에서 영하 17도 까지 떨어진 온도계를 보여주며 연신 “사무이(추워요)”라고 외쳤다.

눈과 얼음이 축제 동계올림픽은 온도 또는 기온과의 전쟁이다.

이번 평창대회까지 치러진 23번의 동계올림픽이 지구의 북반구에서 개최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여기서 하나 궁금한 것이 있다. 역대 동계올림픽 가운데 가장 추웠던 대회는 언제이고 최악의 기후조건은 어떤 대회였을까?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역대 가장 추웠던 대회는 1994년 노르웨이 릴레함메르 대회?

많은 올림픽 자료를 뒤져도 온도와 기후와 관련된 통계자료는 없다. 다만 많은 취재진들의 기억과 기록을 토대로 했을 때 노르웨이 릴레함메르에서 벌어진 1994년이 가장 추웠던 대회로 남아 있다. 이희범 조직위원장은 6일 브리핑에서 “릴레함메르는 영하 23도까지 떨어진 적도 있다”고 했다. 개막식이 벌어진 당시 기온은 영하 11도였다.

다행히 평창대회 기간동안 기온이 그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은 없다. 조직위원회가 대회 일정이 확정된 뒤 최근 30년간의 평창과 강릉 지역의 기상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영하 5도 전후의 기온이 평균적이었다고 했다.

물론 하늘의 뜻을 알 수는 없겠지만 ‘평창과 맹추위’의 연관검색어는 곧 사라질 수도 있다. 물론 동계올림픽은 추운 것이 더운 것 보다는 훨씬 낫다.

동계올림픽에서 최악의 기후 조건은 3가지다. 첫째 폭설이다. 눈이 필요한 경기지만 눈이 오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우선 눈이 내리면 알파인스키가 열리는 코스가 엉망이 된다. 선수들이 경기를 하는 스키장은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슬로프와 다르다. 얼음처럼 단단하게 다져줘야 선수들이 마음껏 기량을 발휘할 수 있다.

그래서 대회를 준비할 때 전문가들이 인공눈을 이용해 원하는 강도의 슬로프를 만든다. 이렇게 다 준비했는데 하늘에서 눈이 내리면 그야말로 멘붕이다. 다른 방법은 없다. 그 넓은 슬로프에서 내린 눈을 모두 쓸어내야 한다.

바람과 함께 오는 눈 폭풍도 문제다. 특히 스키점프는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기에 바람이 너무 강하면 대회자체가 취소될 수도 있다. 안개도 좋지 않다. 시야를 가린다. 비도 훼방꾼이다. 정말로 문제가 되는 것은 높은 기온이다.

만일 영상 20도 이상으로 올라가면 설상종목은 최악의 조건이 된다.

1964 인스부르크 동계올림픽 당시 눈이 부족하자 군인들이 눈을 실어나르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동계올림픽 역사상 최악의 기후 조건은

높은 기온 때문에 문제가 됐던 역대 최악의 조건은 동계올림픽 초창기인 1928년 스위스 생 모리츠대회 때 나왔다. 하필이면 대회 기간동안에 높새바람이 불어왔다. 내내 대회기간 내내 비도 내렸다. 노르딕 경기장은 눈이 녹아 자갈밭이 됐다. 기권이 속출했다. 당시는 알파인 스키 경기가 열리지 않아 슬로프의 눈이 녹아내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노르딕 경기가 눈이 아닌 질척질척한 땅 위에서 벌어졌다.

눈이 문제가 된 대회는 또 있다. 1932년 미국 레이크 플래시드에서 벌어진 대회였다. 동계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미 대륙에서 벌어진 대회였다. 당시만 해도 신대륙 미국은 유럽에 비해 스포츠 인프라가 부족했다. 간신히 대회를 준비했지만 눈이 내리지 않았다. 지금이라면 과학과 첨단장비를 이용해 인공눈을 뿌리기라도 하겠지만 1932년에는 하늘만 쳐다볼 뿐이었다.

대회개막이 코앞으로 왔는데도 눈에 내리지 않자 조직위원회는 상상을 초월한 방법을 생각해냈다. 미국과 인접한 캐나다 국경으로 열차를 몰고 가서 눈을 싣고 왔다. 좁은 땅에서 사는 사람들은 결코 생각하게 어려운 큰 스케일이었다. 그런 노력 끝에 간신히 설상종목 대회도 열렸는데 스키점프 때는 비가 내려서 그나마 있던 눈이 녹아버렸다. 결국 선수들은 스키 점프대에서 강물에 뛰어드는 꼴이 되고 말았다. 우승자는 노르웨이의 비르이르 루드였다. 우승소감을 묻는 취재진에게 남긴 소감이 당시 상황을 잘 보여줬다. “다음 대회 때는 구명대를 차고 와야 할 것 같다. 나는 수영을 할 줄 모른다.”

1964년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에서 열린 대회도 눈 때문에 난리가 났다.

평소 눈이 많은 곳이지만 대회를 앞두고 경기장 쪽으로 눈이 오지 않았다. 고심하던 프리델 볼프강 대회조직원원장은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군인들을 동원했다. 무려 6000명의 군인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주변 고개에서 눈을 실어와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이번 평창대회를 위해 음지에서 고생하는 우리 국군장병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새삼 전하고 싶은 생각이 갑자기 든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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