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가해자로 인사위원회에 회부된 3명이 오늘 모두 해고됐다. 성폭력에 대한 단호한 처벌과 강력한 징계,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또 다른 문제에 주목한다. 바로 성폭력 ‘피해자’다.
피해자의 시선에서 반드시 짚어봐야 할 문제들이 있다. 성폭력 신고 이후 가해자가 즉시 격리됐는가? 피해자 보호가 철저히 이뤄졌는가? 2차 피해의 여지를 최소화했는가?
이번에 해고된 성폭력 가해자 A씨 사건을 보자. 피해자가 MBC 클린센터에 신고를 한 시점은 2017년 4월이었다. 감사실은 1년 가까이 별다른 조사를 하지 않았다. 파업이 끝나고 감사실이 새로 구성된 이후 감사가 본격 시작됐지만, 감사실이 해당 국에 감사 진행 사실을 통보한 뒤에도 상당기간, 사측은 가해자에 대해 대기발령 등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피해자 중 한 명이 SNS에 여러 차례 글을 올려 “해당 가해자가 언론인으로 계속 현장에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고통스럽다”고까지 썼지만, 가해자는 계속 정상 근무했다.
또 다른 가해자 B씨의 경우 소속 국장이 인사위 회부를 요청한 시점은 지난해 12월 20일이다. 그런데 대기발령 조치가 내려진 건 한 달 뒤인 1월 15일이다. 이 기간 B씨는 업무배제 통보를 받긴 했지만, 피해자들과 마주칠 수 있는 사무 공간에 정상 출근하고 근무를 이어갔다.
외주제작사에 대한 갑질 폭언과 성폭력으로 해고된 C씨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C씨는 2014년부터 2017년 8월까지 외주 독립PD들에게 상습적으로 성폭력과 폭언 등 ‘갑질 횡포’를 가했다. 이른바 갑을관계를 악용한, 성폭력의 악질적 유형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이런 사실이 언론에 폭로된 이후에도, 당시 적폐 경영진은 어떠한 징계 절차도 밟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성폭력 사건 인지 이후 이들의 해고까지 적게는 2개월 반, 길게는 11개월이 소요됐다. 적폐.불법 경영진의 시기를 감안하더라도 용인될 수 없는 일이다. 이들에 대한 업무배제, 격리 절차가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서 피해자 보호 조치는 지연됐고, 동시에 부실해졌다. 미국의 경우, 직장 내 성폭력이 발생하면 사실관계를 따지지 않고 바로 가해자를 격리, 전보, 대기발령하는 등 인사 조치부터 내린다.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PD가 방송작가를 성추행한 사건이 발생한 YTN은 피해자의 ‘미투’ 폭로 바로 다음 날 인사위원회를 열어 가해자를 자택 대기발령 처분했다.
그러나 MBC의 성폭력 가해자들은 조사 및 감사, 징계 절차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사무공간에서 정상 근무했다. 피해자가 가해자와 직‧간접적으로 접촉할 가능성, 그 외 다른 구성원들이 입게 될 정신적 충격과 고통 등을 고려할 때 2차 피해가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현재 사측에서 성폭력 관련 내규 제정에 들어갔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신속한 피해자 보호, 엄중한 조사, 강력한 처벌이 이뤄질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정밀한 내규를 마련해야 한다.
MBC도 예외가 아니었다. 충격과 분노, 부끄러움에서 자유로울 MBC 구성원은 없을 것이다. 노동조합은 반성한다. 수직적 상하관계, 감시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인권 약자들의 성폭력 피해 사실에 신속하게, 또 체계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회사의 부실한 대처에 대한 감시가 부족했다. 예방과 피해자 보호에 대한 고민이 모자랐다. 조합은 오랫동안 부당한 권력과 외압에 저항해왔지만, 제때 성폭력을 막아내고 피해자들을 보호하는데 소홀했다.
그러나 우리는 부끄러움과 반성에 머물지만은 않을 것이다. 노동조합 성평등위원회 출범을 계기로, 조합은 모든 종류의 성폭력과 성차별을 철폐하고 피해자들을 보호해, 평등하고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2018년 3월 7일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동아닷컴 이슬비 기자 misty8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