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회 칸 국제영화제가 전통과 새로운 뉴미디어의 물결 사이에 놓였다. 동영상 스트리밍서비스 플랫폼 넷플릭스라는 새로운 기류에 영화 관계자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사진은 칸 국제영화제 메인 행사장인 팔레 데 페스티벌 모습. 칸(프랑스)|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바람의 저편’ ‘로마’ 등 관심작 상영 불발
작품 수급 차질 빚은 칸, 수준도 하락
이창동 감독 “우린 지금 변화의 시기”
“아무래도 넷플릭스의 영향을 간과하기는 어렵다.”
칸에서 만난 해외 영화제 관계자들은 예년과는 분위기가 조금 달라진 칸 국제영화제의 상황을 실감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영화제를 찾는 사람도, 상영작 목록도, 필름마켓에 나온 작품까지 그 규모나 경쟁력 면에서 예년 수준을 밑도는 것 같다는 설명이다. 물론 공식적이고 객관적인 집계는 아니다. 어디까지나 칸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아온 영화인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체감온도’다.
제71회 칸 국제영화제가 미디어혁명으로 평가받는 넷플릭스의 도전에 맞서고 있다. 지난해 넷플릭스가 제작한 봉준호 감독의 ‘옥자’와 또 다른 작품 ‘더 마이어로위츠 스토리스’가 경쟁부문에 진출하면서 극장 상영작과 동영상 스트리밍서비스로 제공되는 영화가 같은 기준에서 평가받아야 하는지를 두고 논란이 촉발된 이후 올해 제2의 라운드가 벌어지고 있다. 칸에서 유형무형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신진세력 넷플릭스와 전통을 굳건히 강조하는 칸 국제영화제가 세계 영화 흐름을 주도할 ‘패권’을 놓고 주도권 다툼을 벌인다는 해석이 가능할 정도다.
● 알고 보면 넷플릭스의 ‘칸 보이콧’
칸 국제영화제는 올해 출품작 발표 전 “경쟁부문 초청작에서 넷플릭스 영화를 포함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넷플릭스 영화를 경쟁부문에 초청하면서 프랑스극장협회의 거센 반발을 사는 등 논란을 의식해 내놓은 조치다.
이에 넷플릭스의 입장도 강경했다. 칸 국제영화제의 이런 결정 뒤 넷플릭스 또한 “경쟁부문은 안되고, 비경쟁 부문은 가능한가”라는 의문 제기와 함께 자사의 모든 콘텐츠를 올해 영화제에 출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보이콧’ 선언이다.
넷플릭스의 이런 결정으로 인해 칸 국제영화제는 작품 수급과 선정에 있어서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는 게 칸에 모인 영화인들의 의견이다.
칸에서 만난 한 한국영화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감독과 배우들이 거대 자본력과 파급력을 가진 넷플릭스로 대거 이동하고 있는 점은 올해 영화제 상영작들에 분명한 영향을 미쳤다”고 짚었다. 칸 필름마켓에 참여하고 있는 또 다른 관계자 역시 “북미와 유럽 작품이 줄어든 게 느껴진다”며 “꼭 넷플릭스가 절대적인 이유는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올해 칸 국제영화제는 넷플릭스가 복원한 오슨 웰즈 감독의 공개되지 않은 유작 ‘바람의 저편’을 소개할 계획이었다. 그 자체로 화제를 불러일으킬 기회였지만 넷플릭스의 보이콧으로 결국 무산됐다. 이뿐 아니라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넷플릭스의 지원으로 만든 영화 ‘로마’ 등 현재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감독과 그들의 신작을 칸 무대에서 처음 소개하려는 시도는 물거품이 됐다.
● 칸 vs 넷플릭스…한국감독에게도 화두
외신도 칸 국제영화제와 넷플릭스 사이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기류를 놓치지 않고 있다. 미국 영화전문매체 버라이어티는 “넷플릭스가 사라지면서 유명한 감독과 배우들의 참여나 그들의 출연작이 줄었다”며 “이는 칸이 자초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칸 국제영화제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상황은 자신의 영화를 가장 먼저 공개하는 자리로 칸을 활용해온 한국 감독들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도 따른다. ‘버닝’을 경쟁부문에서 소개하는 이창동 감독은 영화제 공식 소식지 스크린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영화라는 매체가 대중에 전달되는 방법에 있어서 우리는 변화의 시기에 와 있다”고 말했다.
칸(프랑스)|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