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개막식 최종 성화 점화 주자 인도네시아 스포츠영웅 수지 수산티.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인도네시아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사람들은 유난히 배드민턴을 좋아한다. 현장에 가보면 그 열기를 실감한다. 이번 대회 개회식에서 성화 점화자로 배드민턴 스타 수지 수산티가 선정된 것만 봐도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게 배드민턴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수산티는 현역시절 대한민국의 방수현과 항상 세계 정상에서 겨루던 선수였다. 왜 배드민턴은 동남아시아에서 큰 사랑을 받을까.
● 배드민턴의 기원은 인도의 놀이, 그래서 더 친숙하다!
동남아시아의 많은 사람들은 배드민턴을 예전부터 좋아했다.
사실 배드민턴의 기원은 영국이 아니다. 고대 인도에서 성행했던 푸나라는 놀이가 바탕이다.
이를 식민지 건설을 위해 해외에 나가 있던 영국의 장교가 1800년대 중반 본국에 전파하면서 배드민턴이 탄생했다. 수많은 식민지를 건설했던 영국은 배드민턴을 동남아시아에 역수입했다. 현지 주민들 가운데 상당수를 차지하는 인도계 사람들에게 새로운 놀이 배드민턴은 전혀 생소하지 않았다. 푸나와 비슷한 놀이는 거부감을 주지 않고 쉽게 정착했다.
배드민턴의 특성상 엄청난 육체적 능력이나 신체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도 체격이 작은 동남아시아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순발력과 지구력이 필요한 종목의 특성은 배드민턴의 인기를 높여놓았고, 많은 운동 유망주들이 돈과 명에를 위해 배드민턴에 뛰어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까지 동남아시아를 오래 지배했던 유럽 열강과 일본은 동남아시아 현지인들이 스포츠를 통해 독립의식을 키우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학교를 만들 때 의도적으로 운동장을 두지 않았다. 배드민턴은 넓은 운동장이 필요하지 않았다. 좁은 공간에서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운동이었다.
배드민턴은 동남아시아 각국에서 유독 인기가 높다. 2018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을 개최한 인도네시아도 예외는 아니다. 식민지시대부터 손쉽게 즐길 수 있는 스포츠였고, 높은 인기를 바탕으로 엄청난 부를 거머쥘 수 있기 때문이다. 22일 벌어진 남자단체전 결승에선 인도네시아가 중국에 게임스코어 1-3으로 석패해 은메달을 따냈다. 사진은 단체전 결승 단식에 출전한 인도네시아의 앤서니 시니수카가 중국 선수의 공격을 받아내고 있는 모습.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스포츠강국을 만드는 종주국효과·선점효과·후광효과
우리가 태권도를 잘하고 일본이 유도의 강국인 이유는 같다. 농구와 배구는 미국이 세계 정상이고 조정은 영국, 사이클은 프랑스가 강국인 이유도 마찬가지다. 종주국이 주는 선점효과 덕분이다. 다른 나라보다 먼저 그 스포츠를 시작하면 아무래도 경쟁력에서 앞설 수 있다.
하지만 종주국이 그 스포츠를 잘하거나 반드시 그 나라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아니다. 전략적으로 특정종목을 국가스포츠로 키울 수도 있다. 중국은 탁구와 배드민턴의 강국이다. 엄청난 인적자산을 바탕으로 배드민턴과 탁구에 국가적 역량을 투자한 결과 감히 넘볼 수 없는 수준까지 앞서나갔다.
이런 투자와 보조를 맞추는 것이 후광효과다. 후배들의 롤 모델이 되는 슈퍼스타가 갑자기 튀어나와 그 나라의 특정 스포츠 인기를 높인다. 우리 여자골프가 세계정상급에 오른 것은 박세리 덕분이다. 수많은 ‘세리 키즈’는 롤 모델을 따라서 골프에 뛰어들었다. 선수육성 시스템과 인기, 돈이 이들을 뒷받침해주면서 한국의 여자골프는 세계정상으로 급성장했다.
● 스포츠는 돈과 환경이 중요한 영향을 준다!
인도네시아에서 배드민턴 스타들은 엄청난 돈을 번다. 쉼 없이 벌어지는 오픈대회를 통해 직장인의 연봉 수십 배를 단숨에 만질 수 있다. 수지 수산티는 배드민턴 덕분에 인도네시아에서 손꼽히는 부자가 됐다. 축구가 수많은 아프리카 청소년들에게 신분상승의 기회를 줬듯, 배드민턴은 동남아시아 스포츠 유망주에게 희망이다. 지금 인도네시아의 배드민턴 등록선수는 10만 명이다. 그 넓은 저변에서 좋은 선수가 나온다.
자메이카가 세계적 육상강국이 된 이유도 유전적으로 좋은 DNA를 물려받은 것도 있지만 달리기를 잘해야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돈과 명예를 누릴 수 있다는 꿈이 유망주들을 유혹하기 때문이다.
날씨가 흐린 잉글랜드의 축구는 킥앤드러시 전술을 좋아하고 초원이 많은 남미에서 패스 위주의 축구가 발전하는 것처럼 스포츠는 그 나라의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강과 호수가 많은 헝가리에서 좋은 카누선수가 나오고, 바닷가를 따라 도시가 발달한 호주가 수영강국이 된 것은 어릴 때부터 이런 환경에서 카누와 수영이 현지인들에게 일상생활로 정착했기 때문이다.
운하가 많은 네덜란드는 겨울에 스케이트를 이용해 다닐 수밖에 없는데, 이런 환경이 좋은 빙상선수를 만들어냈다. 소련을 포함한 동유럽권 국가들이 체조를 잘하는 이유도 추운 겨울이 긴 자연환경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아이스하키, 스키 등도 마찬가지다. 북반구의 나라들이 동계스포츠의 강국이 된 것은 스포츠와 환경의 영향을 잘 보여준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