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37년, 세이버매트릭스로 본 세기별 베스트 10은?

입력 2018-12-28 05:3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전 삼성 이만수-두산 양의지-전 삼성 이승엽-전 넥센 강정호. 스포츠동아DB

한국프로야구 37년을 수놓은 최강의 라인업을 ‘오직 숫자로만’ 짠다면?

KBO리그가 역사를 쌓아온 시간만큼 수많은 별들이 뜨고 졌다. 20세기 태동한 프로야구는 21세기를 걸치며 다양한 스토리를 쌓아왔다. 메이저리그에서 10년 단위로 올스타를 선정한 것과 비슷하게 KBO리그의 한 세기를 풍미한 별들을 꼽아본다면 면면은 충분히 화려하다.

비슷한 시도는 있었다. KBO는 2011년 리그 출범 30주년을 기념하며 ‘레전드 올스타 베스트 10’을 선정했다. 선정위원회의 투표로 명단을 꾸렸는데 다소 아쉬움이 남았다. 당시 현역 선수는 후보에서 배제돼 ‘양신’ 양준혁, ‘종범신’ 이종범 등의 이름은 없었다.

스포츠동아는 KBO리그 기록을 다루는 통계사이트 ‘스탯티즈’의 도움을 받아 무형의 가치를 배제하고, 세이버매트릭스(sabermetrics·기존 야구 기록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각종 통계학적 방법론으로 야구를 연구하는 이론)로만 20세기(1982~1999년·18년간)와 21세기(2000~2018년·19년간) 포지션별 최고 선수를 선정했다. 수비력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미국 메이저리그의 ‘골드글러브’ 방식 대신 ‘실버슬러거’와 유사하게 타격 지표만을 평가했다. 타자는 세기별로 2000타석, 투수는 1000이닝 이상 소화한 이들을 대상으로 했다.


● 이승엽·박병호, 이종범·강정호…별들의 전쟁

타자는 세이버매트릭스를 다루는 이들이 야수를 평가할 때 주목하는 wRC+(조정득점생산), RC/27(경기당 득점생산력), 순장타율 등 세 가지 지표를 활용했다.

20세기 포수 1인자는 이만수다. KBO리그 최초 타격 3관왕의 주인공이자 역대 최고의 공격형 포수로 꼽히는 그는 압도적이었다. 포수를 넘어 전 포지션으로 범위를 넓혀도 손색이 없을 만큼의 빼어난 타격 지표를 남겼다. 21세기는 양의지가 wRC+와 RC/27 1위에 올랐다. 순장타율 1위 박경완은 전성기가 1990년대와 2000년대에 걸쳐있어 다소 불리했다.

쟁쟁한 타자들이 즐비한 1루는 이승엽 전후로 나뉜다. 1995년 삼성에서 데뷔한 이승엽은 단 5년의 기록만으로 20세기 1루를 평정했다. 이승엽이 일본프로야구로 떠난 사이 춘추전국이었던 1루는 2012년부터 황제로 군림한 박병호의 차지가 됐다. 박병호는 2000타석 이상 소화한 모든 타자 가운데 순장타율 1위(0.294)에 올랐다. 장타율에서 타율을 뺀 기록인 순장타율이 3할에 육박한다는 것만으로도 박병호의 괴력을 알 수 있다.

2루의 과거와 현재는 김성래와 박민우였다. 통산 성적으로 따졌을 때 악바리 근성으로 똘똘 뭉친 박정태와 정근우가 예상 외로 저평가 받았다. 20세기는 김성래가 독보적이었고, 21세기는 박민우와 안치홍이 치열히 경합 중이다. 여전히 젊은 안치홍과 박민우가 앞으로 써나갈 선의의 경쟁 구도가 흥미로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3루는 홍현우와 김동주가 자웅을 겨룬다. 홍현우는 선수 생활 말미, 팀을 옮겨 다니면서 긴 슬럼프에 빠졌다. 그럼에도 한대화, 김한수 등을 제치고 20세기 최고 3루수의 성적은 거둔 것은 그만큼 뛰어났기 때문이다. 21세기는 ‘한국 최고 3루수’ 김동주의 천하였다.

유격수는 뚜렷하게 양분됐다. 20세기는 이종범, 21세기는 강정호가 평정했다. 허구연 MBC 해설위원은 이에 대해 “별다른 코멘트가 필요 없는 결과”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포지션을 넘어 세기별 최고 타자를 꼽아도 이들의 이름이 들어갈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 지명타자의 길은 양준혁에게 통한다

좌·중·우 구분없이 선정한 외야수 명단에는 타격 장인들의 이름이 가득했다. 박재홍과 고(故) 장효조, 심정수가 20세기 명단을 나눠가졌다. ‘헤라클레스’ 심정수는 21세기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시대를 가리지 않고 포지션별 최정상을 차지한 것은 심정수와 양준혁(지명타자)뿐이다.

21세기 외야수 부문에는 김재환과 클리프 브룸바가 심정수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김재환은 역대 외야수 가운데 순장타율, wRC+, RC/27 모두 1위를 차지했다. 여러 논란이 있지만 기록만 놓고 보면 숱한 전설들에게 결코 밀리지 않는다.

결과가 가장 흥미로운 포지션은 지명타자다. 지명타자의 길은 시대의 구분 없이 양준혁으로 통했다. 양준혁이 20세기에 기록한 wRC+(179.4), RC/27(9.26) 모두 KBO리그 역대 1위다. 1번부터 9번타순까지 양준혁으로 채우면 매 경기 9.26점을 몰아친다는 의미다. 어느 기록을 들이밀어도 양준혁을 넘어서는 타자는 없었다. 지명타자 1위는 당연한 결과다.

투수는 팀 성적을 좌우하는 만큼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어떤 지표를 적용해도 정답이 분명했다. 20세기는 선동열, 21세기는 류현진의 천하였다. 선동열과 류현진간의 우위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면, 시대 내에서의 분류는 무의미한 수준이다. 정민철, 김용수, 윤석민 등 역사에 남을 이름들도 선동열과 류현진 앞에서는 고개를 숙였다.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