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 김용옥 “흰쌀밥맛을 아는 청년일세”·유아인 “선생님 순수함에 반했습니다”

입력 2019-01-04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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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두 사람이 만났다. 배우 유아인(오른쪽)과 철학자 도올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가 KBS 1TV 토크쇼 ‘도올아인 오방간다’를 통해 소통한다. 사진제공|KBS

■ KBS 1TV 토크쇼 ‘도올아인 오방간다’ 5일 첫방

영화 ‘버닝’ 이창동 감독을 연결고리로 인연
기분 좋을 때 쓰는 ‘오방간다’ 신조어 느낌팍
설교는 금지…유아인 통해 젊은세대와 소통
서른여덟살 차, 세대 넘어선 장르파괴 토크

지난해 9월 어느 날 철학자로 잘 알려진 김용옥(71) 한신대 석좌교수의 집에 낯익은 얼굴이 찾아들었다. 배우 유아인(33)이었다. 김 교수는 유아인이 주연한 영화 ‘버닝’을 보고 ‘독특한 청년’이라 생각해왔던 터였다. 불쑥 자신의 집을 찾아온 유아인에게 김 교수는 밥상을 차려주었다.

“우리 집밥이 맛있는데, 유아인이 흰쌀밥에 반해버렸다고 했다. ‘순수한 쌀밥을 제게 주시느냐’고 물었다. 거기에 내가 반했다. 흰쌀밥의 맛을 안다는 것, 그건 대단한 경지 아닌가!”

유아인과 김 교수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독특하다 못해 파격적이라고 할 만한 만남 그리고 섣불리 상상할 수 없었던 조합. 이들 스스로도 “처음부터 합이 맞지 않았다”며 웃을 정도다.

공통점이라고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이들이 그 파격적 만남을 KBS 1TV 토크쇼 ‘도올아인 오방간다’로 이어간다. 두 사람이 함께 호스트로 나서 프로그램을 이끌고 나간다는 자체부터 시청자의 강한 호기심을 자아낸다.


● “영화 ‘버닝’ 이창동 감독이 연결고리”


프로그램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특집으로 기획됐다. 방청객 300명이 바라보는 무대 위에서 유아인과 김용옥은 역사적 인물에 대해 토론하고, 방청객 참여를 유도하는 버라이어티 토크쇼의 진행자로 나선다.

제목부터 독특한 ‘도올아인 오방간다’는 유아인의 아이디어. 기획 당시 제목은 ‘아인아 도올 해볼래?’였단다.

첫 방송에 앞서 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유아인은 “좋은 음악을 들어 기분 좋을 때 ‘오방 간다’는 말을 쓰는 사람이 실제로 있었다. 여기서는 동서남북과 중앙을 포함한 뜻이다. 제 인식을 전환시켜 준 단어다”며 “한국적인 신조어를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날 자리에서는 유아인의 표현처럼 ‘한국적인 신조어’와 같은 두 사람의 ‘독특한 조합’에 대한 궁금증이 쏟아졌다. 두 사람도 “익숙한 그림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을 이어준 사람은 영화 ‘버닝’의 이창동 감독이었다. 김용옥 교수는 “영화 ‘버닝’을 보고 감동을 받아 평소 교류해온 이창동 감독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유아인이란 친구가 ‘내면의 어떤 것을 표현하고 싶은 충동이 가득한 젊은이’라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유아인은 “배우로 활동하며 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는 찰나에 선생님을 만나게 됐다”며 김용옥 교수와 첫 만남을 떠올렸다. 김 교수의 제안으로 ‘도올아인 오방간다’를 하게 됐다는 유아인은 “제 목소리로, 거리의 목소리로 선생님의 고견을 대중에 전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철학자 도올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왼쪽)와 배우 유아인. 사진제공|KBS


● “도올의 순수함·유아인의 올곧은 자세”

유아인은 이미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아 ‘할 말은 한다’는 이미지를 얻었다. 김용옥 교수 또한 오랜 세월 강단에 서며 카리스마 넘치는 표정과 독설로 대중에 기억됐다. 하지만 두 사람은 자신들을 향한 세간의 시선에서 벗어날 것임을 선언했다. 이들은 ‘도올아인 오방간다’로 그동안 알려진 모습 이외의 것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아인은 김 교수의 “순수함”을 예로 들었다. 유아인은 “칠판을 뒤에 두고 대중을 향해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는 모습에서 순수함을 느꼈다”고 밝혔다. 지식 전달에 그치는 것이 아닌, 시대에 대한 고민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함께 호흡하려는 도올의 의지가 순수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김용옥 교수는 유아인의 ‘일관된 물음표’를 높게 샀다. 그는 유아인의 실존적인 의미를 묻는 자세에 “고맙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대중문화를 이끌어가는 배우가 사회에 의미를 던지는 존재로 가야 할 단계라 생각한다”면서 “새로운 차원의 의미를 만들어 내려는 유아인이 연예계를 대표해 특별한 역할을 해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서로 내세우는 호흡에 대한 자신감과는 별개로 두 사람이 38세의 나이 차를 단번에 뛰어넘을 수 있을지 여부는 지켜볼 대목이다. 유아인은 “합이 시원하게 맞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다만 일흔이 넘은 김용옥 교수와 소통하는 과정 자체가 자신에게 시사하는 바가 컸다는 전제를 달았다. 유아인은 “불편한 격식을 벗고 소통하는 자체가 특별했다”고 말했다. 프로그램 제목부터 배경음악까지 함께 논의하고 정해온 시간이 “선생님과 함께 노는 과정”이었다는 그는 “이 실험의 의미가 가치 있게 전달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자신했다.


● “설교하지 않고, 사람 중심으로 풀어갈 것”


유아인이 자칫 드러날 수 있는 세대의 차이를 김용옥 교수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메워갈 것으로 보인다. 김용옥 교수는 “프로그램 속 첫 주문이 ‘설교하지 마라’였다”면서 자신이 지닌 역사적 정보를, 유아인을 통해 젊은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자신은 “(유아인을)살짝 도와주는 정도”라며 자세를 낮추면서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라는 테마를 다룰 때 역사적 사실이 아닌 사람을 중심으로 전할 것”이라는 포부를 드러내기도 했다. “위대한 역사적 인물을 발굴하고 그에 관해 충분히 토론하며 그 이미지를 살려내는 작업을 하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렇다면 두 사람이 프로그램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일까. 유아인은 연예계 대표적인 ‘논객’으로 불리며 때론 논란을, 때론 설득력 있는 대중적 가치관을 전해왔다. 김 교수 역시 다양한 사회적 문제에 대한 강렬한 어조의 발언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이들은 “이 시대 대한민국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고민으로 나아갔다. 유아인은 김 교수와 방청객을 포함한 시청자가 나누는 대화 속에서 “더 나은 순간”을 모색해가고 싶다고 밝혔다.

물론 거기에 “편향되거나 개인적인 의견”이 있을 수 없다고 이들은 다짐했다. 그 순간 프로그램은 “쇼에 머물 것”임을 이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유지혜 기자 yjh030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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