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리의 듀얼인터뷰] ‘극한직업’ 흥행 숨은 주역, 영화계 ‘숨은 고수’

입력 2019-02-13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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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코미디’로 등극한 영화 ‘극한직업’의 흥행 뒤에는 시나리오를 맡은 배세영 작가(왼쪽)와 제작자 김성환 어바웃필름 대표가 있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국민코미디’로 등극한 영화 ‘극한직업’의 흥행 뒤에는 시나리오를 맡은 배세영 작가(왼쪽)와 제작자 김성환 어바웃필름 대표가 있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 1300만 돌파 ‘극한직업’ 제작자 김성환 대표·배세영 작가

김성환 대표
‘과속스캔들’ 등 참여 베테랑 제작자
“늘 웃는 배 작가는 코미디와 잘 맞아
1300만 돌파? 왠지 남의 일 같아요”

배세영 작가
영화 ‘완벽한 타인’ 이어 연속 히트
“왕갈비통닭, 둘 다 먹고 싶어 탄생
영화 속에 아들딸 슬쩍…몰랐죠?”


기록이 멈출 줄 모른다. 1000만 관객을 모으더니 어느새 1300만 명을 넘어섰다. 12일 기준 역대 한국영화 흥행 5위. 여기서 끝날 분위기도 아니다. 영화 ‘극한직업’(감독 이병헌·제작 어바웃필름)이 곧 ‘국민코미디’ 자리에 등극할 태세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제작자 김성환 대표(45)와 시나리오를 각색한 배세영 작가(44)가 의기투합해 작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광경이 지금 극장에서 펼쳐지고 있다. 11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두 사람은 이를 “남의 일 같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요즘은 영화 제작자와 작가들도 언론매체에 자주 등장하며 유명세를 얻기도 하지만 그에 비하면 김 대표와 배 작가는 ‘숨은 고수’에 가깝다. ‘극한직업’으로 ‘초대박’ 흥행을 일구기까지 차근차근 길을 걸어왔다.

특히 배세영 작가는 지난해 500만 관객을 모은 ‘완벽한 타인’의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다. 2007년 ‘사랑방 선수와 어머니’로 데뷔해 ‘킹콩을 들다’ 등 코미디영화에 주력해 온 그는 tvN ‘SNL 코리아’의 히트코너 ‘여의도 텔레토비’로 정치 풍자 열풍을 이끈 주역이기도 하다. 김성환 대표 역시 투자와 제작을 거치면서 ‘과속스캔들’ ‘최종병기 활’ 등에 참여해온, 20년 경력의 베테랑이다.

이들이 인연은 2010년 시작됐다. 배 작가가 쓴 ‘적과의 동침’을 당시 김 대표가 몸담고 있던 투자사가 영화화하면서다. 그러다 CJ엔터테인먼트가 한국콘텐츠진흥원을 통해 발굴한 문충일 작가와 제작사 해그림의 ‘극한직업’ 프로젝트의 영화화를 김 대표에게 맡기면서 두 사람은 다시 의기투합했다. 제작에 돌입한 김 대표는 “재미있는 이야기꾼”으로 통하는 배 작가에게 각색을 맡겼다.

마약반 형사들이 치킨집을 차려 범죄조직을 소탕한다는 줄기는 초고와 같지만 완성된 영화의 캐릭터와 이야기 전개, 각양각색의 에피소드는 대부분 배세영 작가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제안을 받을 땐 도저히 집필할 수 없는 일정이었지만, 무리해서 수락했다. 워낙 거절을 못하는 성격이고(웃음), 사실 김 대표의 제안이니 망설일 이유도 없었다.”

“배 작가는 남에게 싫은 소리를 못 한다. 늘 웃는다. 불편한 것도 싫어한다. 그래서 따뜻한 코미디 장르와 잘 맞는지도 모르겠다.”

영화 ‘극한직업’의 한 장면.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영화 ‘극한직업’의 한 장면.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의기투합한 뒤 시나리오는 순식간에 완성됐다.

“주·조연 구분 없이 다섯 명의 주인공 형사들 각기 동등한 역할을 줘 마치 ‘한국형 어벤져스’ 같은 느낌이 나길 원했다”는 작가는 “치킨집이 위기를 겪은 뒤 닭을 튀기는 일이 형사들의 생업이 되고, 그 일을 지키려 몸부림치는 과정의 아이러니를 생각했다”고 밝혔다.

입소문 확산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수원왕갈비통닭’도 배 작가의 아이디어다. 마침 배 작가의 집필실이 경기도 수원에 있었고, 끼니마다 통닭과 갈비를 놓고 뭘 먹을지 고민할 때도 잦았다. 갈비인지 통닭인지 모를 그것은 “둘 다 먹고 싶은 염원에서 탄생한 메뉴”라고 했다.

형사일 땐 ‘대충’ 일하다 치킨 집을 차리고선 ‘목숨 걸고’ 나서는 형사들의 모습은 영화의 재미를 높이는 대목이다. 김성환 대표 역시 처음 시나리오를 보고 “형사가 소상공인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마음이 움직여 제작을 결심했다”고 돌이켰다.

“소상공인은 목숨을 걸고 일한다는 정서가 마음을 울렸다. EBS 프로그램 ‘극한직업’을 한 회도 빼놓지 않고 보는 애시청자다. 영화 일이 힘들다 느낄 때도 그 프로그램에 나오는 분들을 보며 반성도 한다.”


● 워킹맘 작가 “등장인물에 딸 이름 넣기도”

배세영 작가는 지난 3년 동안 14편의 시나리오를 집필할 만큼 다양한 소재를 갖고 있다. 하지만 그는 “굳이 새로운 걸 찾으려 하지 않는다”고 했다. “주변의 일상에 소재가 넘친다. 이미 나온 이야기라도 다른 상황에서, 다른 캐릭터로 접근하면 새로워진다”고 믿는다.

지금껏 쓴 시나리오도 대부분 주변에서 보고 듣고 저장해둔 이야기다. 2014년 개봉한 영화 ‘우리는 형제입니다’의 경우 각각 목사와 무속인인 자신의 두 외삼촌 할아버지들의 실화를 옮긴 시나리오다.

배세영 작가는 중학교 2학년생인 아들과 여섯 살배기 딸을 둔 엄마이기도 하다. 첫째가 100일이 갓 지날 무렵 어린이집에 맡기고 일터로 나가야 했던 그는 지금 참여하는 영화에 단역이나 사진으로나마 아들의 얼굴이 나올 수 있도록 하고, 등장인물 이름에도 ‘예진’이란 딸의 이름을 넣는다고 했다. 이유가 있다.

“나중에 아이들이 커서 ‘어릴 때 우린 엄마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다’고 아쉬워하면 슬쩍 그 영화들을 틀어주려고 한다.(웃음) 시나리오를 쓸 때도 엄마는 너희를 많이 생각했다는 걸 느끼게 하려고 말이다.”

20년 가까이 영화 일을 해온 김성환 대표에게도 어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다. 초창기 영화 투자배급사에서 투자담당자로 일할 땐 딜레마도 겪었다. “투자담당으로 감독이나 제작자가 공들여 준비한 작품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거절 못하고, 싫은 소리도 못하는 성품은 김 대표와 배 작가의 공통점으로 보였다.

두 사람은 요즘 각별한 감상에 젖을 때가 있다. 배세영 작가는 며칠 전 아버지가 위독했던 상황을 담담히 털어놨다. “요즘 아버지가 ‘극한직업’ 때문에 아주 행복해하셨다. 갑자기 건강이 안 좋아져 걱정이 되면서도 ‘이번 영화를 보여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란 마음도 들었다”고 했다.

김성환 대표도 비슷하다.

“어느 딸과 아버지가 10년 만에 극장에 가서 영화를 봤다더라. 아버지가 환하게 웃는 모습을 몇 년 만에 봤다는 딸의 이야기를 듣고 조금 감격스러웠다.”

두 사람은 호흡을 맞춘 또 다른 코미디영화 ‘해치지않아’를 곧 내놓는다. 바빠지더라도 협업을 이어가겠다고 했다.


배: “김 대표님은 친정오빠 같다. 대표님을 두고도 영화를 한 편 쓸 수 있다.”


김: “어떤 장르? 혹시 신파?”


배:
“어떤 한 인간이 영화판에서 거둔 성공 스토리!”


김:
“너무 전형적이잖아.”


배: “‘극한직업’도 전형적이다. 형사들이 마약범 잡는 이야기잖아. 하하!”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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