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못 하면 짐 싸고 가야지” 삼성 이학주의 자책과 다짐

입력 2019-05-22 1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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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이학주.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못 하면 짐 싸고 가야지’라는 생각으로 했다.”

삼성 라이온즈 유격수 이학주(29)는 자리에 앉자마자 이 말부터 했다. 4월까지 29경기에서 타율 0.237(93타수22안타), 3홈런, 11타점의 타격 부진에 시달렸고, 최대 강점으로 꼽혔던 수비에서도 9개의 실책을 범하며 흔들리자 자신감은 급격히 하락했다. 주위의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기 시작했고, 표정도 점차 어두워졌다. 다소 늦은 나이에 데뷔한 KBO리그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2018년 9월 열린 2019시즌 신인드래프트 2차 1라운드 전체 2순위, 지명 순번에 나타났듯 이학주에 대한 구단의 기대치는 엄청났다. 미국 무대에서도 인정받은 수비력과 빠른 발, 정확한 타격을 지향하는 이학주는 즉시전력을 넘어 팀 전력을 끌어올릴 카드로 평가받았다. 초반 부진이 더욱 뼈아팠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알을 깨트리는 아픔은 길지 않았다. 5월부터 점차 살아나기 시작했다. 21일까지 5월 12경기에서 타율 0.394(33타수13안타), 2홈런, 5타점의 맹타를 휘둘렀다. 4월까지 0.237이었던 시즌 타율도 0.278(126타수35안타)까지 상승했다. 여기에 5홈런, 16타점, 출루율 0.357의 타격 성적은 유격수의 수비 부담을 고려하면 만족스러운 수준이라는 분석이다. 타율은 10개구단 주전 유격수 가운데 키움 히어로즈 김하성(0.339), NC 다이노스 노진혁(0.279)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김한수 삼성 감독도 “(이학주가) 자신감이 붙었고, 힘 있는 타구도 많이 나오고 있다”며 “수비에 중점을 두고 플레이를 하는데, 기복이 있긴 해도 확실히 최근에 좋아졌다고 느낀다”고 칭찬했다. 이에 대한 본인의 생각이 듣고 싶었다.


● 내려놓기, 반전의 첫걸음

한결 표정이 밝아진 이학주를 21일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만났다. 그는 “‘못 하면 짐 싸고 가야지’라는 생각으로 했다”고 밝혔다. 부담을 내려놓으니 한결 편안해졌다는 의미다. “내가 뭔가를 보여주려고 하는 것보다 시간 약속 잘 지켜서 경기장에 나오는 것부터 꾸준히 내 일을 하는 게 중요하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4월에 안 되면 5월에 잘하면 되고, 5월에도 안 되면 6월에 또 잘하면 된다고 생각을 바꿨다. 다행히 내 폼을 찾아가고 있다. 타율 상승에 의미를 두진 않는다. 수비에 집중하며, 투수와 싸운다는 생각뿐이다.”

후배 박계범(23)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박계범은 4월18일 처음 1군에 등록해 유격수와 3루수를 오가며 공수 양면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이제는 팀에 없어선 안 될 존재로 자리 잡았다. 이학주는 “(박)계범이를 보며 자극도 많이 받았다”며 “올라오자마자 자기 기량을 뽐낸 계범이도 대단한 선수다. 최근에 몇 차례 실책을 저지르기도 했지만, 수비를 정말 잘하는 선수다. 기죽지 않고 열심히 하면 대성할 것”이라고 힘을 북돋웠다.

삼성 이학주(왼쪽).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 ‘돌 글러브’를 언급하다

돌 글러브. 실책이 잦은 선수를 설명하는 말이다. 이학주는 4월까지 최다 실책의 불명예를 썼다. 지금도 최정(SK 와이번스)과 함께 최다 실책(10개)을 기록 중이지만, 5월에는 단 한 차례 실책을 저지른 게 전부다. 이학주에게 기대했던 그림이 나오고 있다는 의미다. 그는 “돌 글러브였다. 글러브가 땅에 박혀서 빠지질 않더라”며 “(실책 부문에서) 다른 선수들이 치고 올라와야 하는데, 타율과 달리 이미 기록한 실책은 줄일 수도 없지 않냐”고 웃어 보였다. 스스로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듯했다. 그러면서도 “내 실책으로 진 경기가 있으니 반드시 만회하고 보답해야 한다. 내게 오는 타구는 어떻게든 아웃카운트를 늘려야 한다는 생각뿐”이라고 말했다.


● 역시 야구는 야구다

2월 스프링캠프 때 상상했던 KBO리그 무대를 지금은 피부로 느끼고 있다. 그때와 지금의 차이점을 물었다. “스프링캠프 뛰면서 ‘도전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야구는 야구다.

선수들의 성향 등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하지 못했다. 뒤늦게 데이터를 보며 연구하고 그러다 보니 조금 나아지는 것 같다. 전력분석팀에서 투수의 성향 등 여러 데이터를 뽑아주는 게 큰 도움이 된다. 이동 거리가 긴 마이너리그 시절과 견줘 체력을 관리하기도 좋다.”

코칭스태프의 믿음도 굳건하다. 5월 들어 팀이 치른 17경기 가운데 5게임에 결장한 것도 부진이 아닌 무릎이 좋지 않았던 탓이다. 이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은 덕분에 반전도 가능했다. 이학주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팬들께 죄송하다”며 “남은 기간에 꼭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제 KBO리그에 완벽하게 적응했냐’는 물음에는 활짝 웃으며 “언제까지 적응기냐. 적응은 다 했다. 내가 하기 나름”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목소리에 점점 힘이 실렸다.

대구|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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