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익래의 애리조나 스토리] ‘KT 엄마·아빠’ 유한준·박경수, “마지막 과제? 후배 성장 시간 벌기”

입력 2020-02-14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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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준(왼쪽)과 박경수. 투손(미 애리조나주) |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유한준(왼쪽)과 박경수. 투손(미 애리조나주) |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우리 구단의 엄마, 아빠다.”

KT 위즈 관계자가 ‘현 캡틴’ 유한준(39)과 ‘전 캡틴’ 박경수(36)를 두고 한 말이다. 2019년 생애 첫 주장을 맡아 묵묵하지만 세심한 성격으로 팀의 5할 승률 진입을 이끈 뒤 올해도 중책을 이어가는 유한준. 유쾌한 성격 속에 감춘 카리스마로 자타공인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맡고 있는 박경수. 이들이 만들어내는 시너지는 KT가 리그 최고의 ‘분위기 맛집’으로 꼽히게 만들었다.

박경수는 지난 시즌을 앞두고 3년, 유한준은 새 시즌에 앞서 2년짜리 프리에이전트(FA) 계약을 맺었다. 선수생활 황혼기에 접어든 이들을 2020시즌 미국 애리조나주 투손의 스프링캠프에서 만났다.

●‘사람 좋은 선생님’과 ‘팀에 꼭 필요한 선수’

-15년도 넘은 얘기일 텐데, 서로의 첫 인상이 기억나는가?

유한준(이하 유) : “선명히 기억난다. 동국대 2학년 때인 2001년, 당시 청소년대표팀과 연습경기를 치렀다. 그때 성남고 2학년이었던 (박)경수를 처음 봤다. ‘성남고 천재타자’ 박경수는 당시 워낙 유명했다. 명성이 자자해서 직접 보고 싶었는데, 세 살 후배지만 나보다 야구를 훨씬 잘한다는 느낌이었다. 좋은 선수가 될 거라고 확신했다.”

박경수(이하 박) : “그때가 내 전성기였고 프로 입단하기 전에 끝났다(웃음). 프로 입단 후 현대 유니콘스와 경기 때 처음 만난 기억이다. 호리호리한 선수의 타구가 내 쪽으로 날아왔는데 다이빙도 못하고 흘려보냈다. ‘빠른 타구를 치고 싶다’는 욕구를 처음 자극시킨 사람이다.”

유한준(왼쪽)과 박경수. 투손(미 애리조나주) |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유한준(왼쪽)과 박경수. 투손(미 애리조나주) |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이제는 한솥밥 5년째다.

박 : “한준이 형이 KT에 오기 전까지 따로 연락하는 사이는 아니었다. 인사하면 잘 받아주는 형 느낌(웃음)? 사람마다 감이라는 게 있지 않나? 한준이 형이 첫 FA를 앞둔 2015시즌 야구장에서 만나면 ‘형이랑 같이 야구하면 재밌을 것 같다. 얼마 주면 KT로 올 건가’라는 농담을 던지곤 했다. 그런데 지금 실제로 같은 팀에서 5년째다.”

-지난 4년간 서로에게 많이 의지하는 게 느껴졌다.

유 : “경수를 보면 대리만족이 된다.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내가 갖지 못한 부분이 경수에게 많다. 야구장 안팎에서 의지가 된다.”

박 : “내 밑에 나 같은 후배가 있었다면 진짜 죽도록 혼냈을 텐데…(웃음). 한준이 형이 워낙 오픈 마인드라 이렇게 친하게 지내고 있다.”

-옆에서 지켜본 상대방을 한 단어로 묘사한다면?

박 : “사람 좋은 선생님. 학교마다 한 명씩 있는 대화 잘 통하고, 말 안 듣는 학생 바른 길로 인도해주는 그런 선생님 같다.”

유 : “내가 뭐라고 누굴 인도하겠나. 경수는 팀에 꼭 필요한 선수로 정의하겠다.”

●5년째 이어지는 ‘고마움과 미안함’ 배틀

박경수는 2016년부터 3년간 주장을 맡았다. 그 사이 KT는 10위~10위~9위의 성적으로 아쉬움을 남겼지만 지난해 5할 승률로 6위까지 도약에 성공했다. 그 사이 박경수가 다져놓은 팀 문화도 한몫했다. 2019년 처음 주장을 맡은 유한준은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나에게 와서 경수에게 미안하다. 내가 한 것보다 경수의 공이 더 크다”는 진심을 전했다.

-오글거리겠지만 서로에게 한마디씩만 부탁한다.

박 : “그저 고맙다는 말만 하고 싶다. 내게 부족한 부분을 한준이 형이 다 채워준다. 난 철이 덜 들었는데 한준이 형은 어른스럽다. 늘 고마운 사람이다.”

유 : “1년 해보니까 팀이 연패에 빠지거나 성적이 처질 때 주장의 무게감은 상상을 초월하더라. 팀이 잘못되면 전부 자기 탓 같고….”

박 : “그걸 3년 버텼다(웃음). 1년 반쯤 지나니까 면역이 되더라.”

유한준(왼쪽)과 박경수. 투손(미 애리조나주) |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유한준(왼쪽)과 박경수. 투손(미 애리조나주) |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올해 KT 선수단은 입을 모아 포스트시즌(PS)을 얘기하고 있다.

유 : “정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 시절인 2015년이 마지막이다. 어느새 5년 전이다. 개인적으로도 정말 올해는 PS를 해보고 싶다.”

박 : “프로 18년차인데 아직 PS 한 경기도 치러보지 못했다. 어느 팀, 어느 선수에게 PS 한 경기는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만 나와 KT에게는 다르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재미있게, 후회 없이 할 자신은 있다. PS에서 후회를 남긴다면 내 자신이 너무 실망스러울 것 같다.”

유 : “다른 팀에게 한국시리즈 우승 같은 느낌이지 않을까(웃음). 우리가 은퇴하기 전에 선수들에게 PS의 맛을 보여주고 싶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도전자다. 심적으로 편하고 자신이 있다.”

-2년 뒤 둘의 FA 계약이 나란히 끝난다. 남은 2년의 목표가 있다면?

유 : “그 2년간 남은 배터리를 모두 소진시킬 생각이다. 대신 경수는 FA를 한 번 더 해도 될 것 같다. KT에서 필요한 선수니까.”

박 : “객관적인 지표들을 보자. 지난해 3할 타자인 형과 2할4푼 타자인 나 중에 누가 더 야구를 오래하겠나? 프로는 실력이다. 형이야말로 한 번 더 FA 대박을 노려도 될 것 같다. 사실 둘 다 야구를 오래한다면 좋겠지만, 훌륭한 선수가 나온다면 양보하는 것도 우리 역할이다.”

유 : “공감한다.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후배들의 성장까지 버텨주는 것이다. 젊은 선수들이 우리를 넘어 리그 전체에서 경쟁력을 갖춘 선수가 될 때까지 화살과 비바람을 막는 게 우리 몫이다.”

투손(미 애리조나주) |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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