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 박병호-NC 나성범-두산 김재환-LG 라모스 (왼쪽부터). 스포츠동아DB
1988년이었다. 당시 빙그레 이글스(현 한화)를 지휘하던 김영덕 감독은 시즌 막판 장종훈을 자주 타석에서 뺐다. 신고선수 출신 장종훈의 기량이 한창 발전하던 프로 2년째였다. 홈런 12개를 때리며 거포의 자질을 보여준 그였지만 정확성은 떨어졌다. 시즌 타율은 0.241에 그쳤다. 그 자리에 천안북일고 출신 신인 조양근이 자주 출전하자 뒷말이 돌았다. 자신이 지도했던 북일고 출신을 우대하려고 일부러 장종훈을 뺀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김 감독의 말은 달랐다. 삼진 때문이었다.
그해 장종훈은 108게임 전 경기에 출전해 406타석에서 95개의 삼진을 당했다. 시즌 최고기록이었다. 김 감독은 “한 시즌에 100개의 삼진을 먹으면 기록으로 남을 텐데, 그렇게 내버려둘 순 없다”고 밝혔다. 타자가 삼진을 당하면 창피스럽다는 생각이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장종훈은 KBO리그 최초로 40홈런의 벽을 돌파한 1992시즌 125경기에서 99개의 삼진을 당했다. 당시로선 시즌 최다 기록이었다. 그러나 1998시즌부터 외국인선수들이 가세하면서 과거와는 다른 야구가 펼쳐졌다. 세 자릿수 삼진을 당하는 타자들이 급증했다.
올 시즌 KBO리그에선 11일 첫 100삼진 타자가 나왔다. 키움 히어로즈 박병호다. 79경기 333타석만이다. 2위는 91개의 NC 다이노스 나성범, 3위는 87개의 두산 베어스 김재환, 4위는 83개의 LG 트윈스 로베르토 라모스다. 21세기 야구에선 한 번에 많은 득점을 하는 빅이닝을 선호하다보니 타자들의 스윙은 갈수록 커지는 추세다. 삼진은 늘겠지만 그보다는 장타로 얻는 이익이 더 크다고 판단해 대부분의 타자들은 삼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최근 7년간 KBO리그의 타석당 삼진 비율은 16~18%대를 오르내리고 있다. 역대급으로 삼진 비율이 높았던 때는 2018시즌으로 18.8%였다. 지난 시즌에는 공인구 교체의 영향 때문인지 17.2%로 급감했고, 올 시즌에는 11일 현재 17.5%로 조금 높아졌다.
같은 기간 타석당 4구 비율은 7~9%대를 오갔는데, 올 시즌은 최근 4년간 가장 높은 9.0%다. 그만큼 타자들이 볼을 잘 골라냈거나, 투수들의 제구력이 나빠졌다는 의미다. 시즌 초반 한화 이용규의 공개 발언 이후 스트라이크존이 좁아진 영향도 어느 정도는 있을 것이다.
각 팀의 삼진과 4구 비율을 보면 그 팀 타자들의 능력과 특성이 한눈에 드러난다. 올 시즌 가장 많은 삼진을 먹은 팀은 키움이다. 무려 598개로 이 부문 최하위인 두산(449개)과는 무려 149개차다. 그만큼 키움 타자들이 공격적 스윙으로 많은 삼진을 당하고 있다는 얘기다. 키움은 4구도 354개로 가장 많다. 최하위 한화(255개)보다는 99개를 더 얻었다. 이 부문 2위는 274개의 두산이다. 삼진은 적게 먹고 4구는 많이 골라 상대 투수들을 힘들게 만들고 있다. 왜 두산이 무서운 팀인지 짐작이 간다. 반면 한화는 삼진은 많이 먹지만(575개·3위) 4구는 적다. 리그에서 가장 허약한 타선답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