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2021시즌 V리그 준비현장을 가다] 9년 만의 우승은 잊었다. 다시 원점에서 출발해야 하는 현대건설이 믿는 것은

입력 2020-10-09 05:3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크게보기

2020~2021시즌 V리그 개막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지난 시즌의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남녀부 13개 팀은 이제 새로운 출발선에 선다. 수많은 관중이 편하게 경기장을 찾던 일상으로 언제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각 팀은 비시즌 동안 과감한 트레이드와 자유계약선수(FA) 영입으로 새 시즌의 기대감을 높였다. 17번째 시즌을 앞두고 땀으로 젖은 각 팀의 훈련장을 돌아봤다

● 포기하지 않았던 승점1이 만든 9년만의 우승
현대건설은 2010~2011시즌에 이어 9년 만에 팀 통산 3번째 정규리그 1위를 차지했다. 5라운드 성적을 기준으로 이사회에서 순위를 결정했지만 5라운드 최종순위는 물론이고 시즌 종료직전 순위도 1위로 마쳤다. 시즌 내내 경쟁을 해왔던 GS 칼텍스와 엎치락뒤치락 했지만 5,6라운드 맞대결에서 승점4를 따내며 자존심을 세웠다. 특히 2월 23일 5라운드 장충체육관 원정에서 먼저 2세트를 내주고도 포기하지 않은 덕분에 2-3으로 진 것이 결정타였다.


그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의 위험을 무릅쓰고 경기장을 가득 채웠던 3700여 명의 관중 앞에서 이도희 감독은 “오늘의 승점이 앞으로 중요할 수도 있다”면서 선수들을 다그쳤는데 소름끼치게도 그 말대로 됐다. 승점52로 2위 GS칼텍스에 1점 앞섰다. 현대건설은 이후 6라운드 초반 GS칼텍스에 역전 당했지만 3월 1일 수원 홈경기에서 3-0으로 이기며 승점 2차이를 뒤집고 다시 1위로 복귀했다. 그 다음날 시즌은 조기 종료됐다.


시즌 도중에 마야에서 헤일리로 외국인선수의 교체가 있었음에도 현대건설이 1위를 차지했던 원동력은 자유계약(FA)선수로 영입한 레프트 고예림 효과였다. 그가 가세하면서 황민경과 함께 안정적인 리시브 라인을 만들었다. 기초공사가 탄탄한 명품 건물은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고예림 효과는 전초전으로 열렸던 순천·KOVO컵 우승과 MVP 수상에서 예고편을 상영했다. 시즌 도중 힘들 때마다 앞장서서 후배들을 이끌며 우승에 크게 공헌했던 양효진은 V리그 출범 첫 해인 2005년 정대영(당시 현대건설)에 이어 사상 2번째로 센터포지션으로 시즌 MVP가 됐다.

양효진은 2년차 정지윤, 루키 이다현과 함께 중앙에서 상대를 압도했다. 현대건설은 195개의 속공득점과 공격성공률 5.78%로 득점과 성공률 모두 압도적인 1위였다. 블로킹도 259개로 가장 많았는데 이 가운데 3명이 158개를 기록했다. 덕분에 외국인선수에게 크게 의존하지 않으면서 좌우 중앙의 공격분포가 어느 한 곳에 치우치지 않는 토털배구를 자랑했다.
● 튼튼한 기초공사와 헬렌 루소와의 새로운 조합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조율해주던 세터 이다영이 자유계약(FA)선수로 팀을 떠났다. 2년간 팀을 이끌던 세터의 이동으로 새로운 시즌은 많은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FA영입과 보상선수 이적이 끝난 결과 현대건설은 이나연을 팀의 새로운 선장으로 선택했다. 다행히 FA선수 황민경과 김연견이 잔류를 결정하면서 리시브 라인에 큰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황민경은 특정 팀으로부터 많은 유혹도 받았지만 자신이 앞장서서 현대건설로 이끌고 왔던 후배 고예림과의 동행을 선택했다. 여기에 4년 만에 다시 친정팀으로 돌아온 김주하가 리베로로 포지션을 바꿔 리시브를 전담하고 지난 2월 왼 발목 수술을 받고 재활을 열심히 해왔던 김연견이 디그를 맡는 새로운 역할분담도 했다. 기초공사는 튼튼해 보인다.



이도희 감독은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에서 가장 배구센스가 뛰어나다는 헬렌 루소를 선택했다. 터키리그에서 베스트7에 들 정도로 기량을 인정받은 선수였다. 레프트가 주 포지션이지만 감독은 제천·KOVO컵 때 라이트에 출전시켰다. 클러치공격 능력과 배구기술이 눈에 띄었다. “배구를 알고 한다. 경기에 출전만 한다면 리스크가 전혀 없는 선수”라는 전문가들의 칭찬을 받았다. 2007~2008시즌부터 시작해 13시즌 동안 팀의 터줏대감으로 수많은 외국인선수를 지켜본 양효진도 “좋은 기량의 선수가 왔다”면서 루소를 높게 평가했다.

기량도 기량이지만 동료들과 편하게 잘 지내고 훈련 때도 열심히 하는 태도는 더욱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도희 감독은 “수비 훈련 때 다른 선수들이 2번 받으면 루소는 3번씩 받으려고 한다. 너무 열심히 해서 그렇게 안 해도 된다고 말리는 형편”이라고 했다. 관건은 트라이아웃 선발 때부터 들렸던 2018년의 무릎부상 경력과 내구성이다. 빡빡한 V리그의 일정을 끝까지 소화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이도희 감독은 이런 사정 등을 감안해 고예림~황민경~정지윤과 함께 공격을 거들면서 루소의 체력을 비축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 여전히 믿는 것은 최고의 센터들이지만 변수도
현대건설의 장점은 누가 뭐래도 센터진이다. 어지간한 윙 공격수 이상의 역할을 해주는 양효진과 중앙 오픈공격이라는 새로운 공격옵션을 창조해낸 정지윤, 다른 팀에 가면 무조건 주전으로 뛸 이다현 등 3명이 이번 시즌에도 창과 방패를 동시에 들고 있다. 감독은 이들 3명의 공존을 위해 정지윤을 라이트로 투입하는 공격옵션도 준비하고 있다. 이 것이 성공하면 현대건설의 공격루트는 더 다양해지고 예리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레전드의 반열에 들어선 베테랑 황연주도 이전 시즌보다는 라이트에서의 역할이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관건은 새로운 세터 이나연과의 호흡이다. 좌우로 뽑아주는 날개공격과는 달리 중앙에서 만드는 변화무쌍한 속공, 시간차, 이동공격은 센터와 세터의 호흡이 필수다. 눈빛만 봐도 마음이 통하는 정도까지 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이나연이 모든 센터들의 장점을 지난 시즌처럼만 살려줄 수 있다면 현대건설은 걱정할 일이 없다. 그래서 명 세터출신 이도희 감독이 팀에 어울리는 세터로 이나연을 새로 만들어내느냐 여부가 시즌 성패를 가를 전망이다. 플랜B지만 주전의 기회만 노리는 김다인은 순천·KOVO컵 우승 이후 경험치가 높아졌다.
새 시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슴 아픈 소식도 있었지만 이 모든 것을 이겨내고 여러 의미에서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하는 현대건설이 어떤 극적인 얘기를 만들어낼지 궁금하다.


●IN&OUT
▲IN=이나연 전하리(이상 IBK기업은행 트레이드) 한미르 양시연 박지우(이상 신인 드래프트)
▲OUT=이다영(흥국생명 FA선수 이적) 신연경 심미옥(이상 IBK기업은행 트레이드)


●예상 스타팅 오더
④센터 양효진 ③라이트 루소 ②레프트 황민경
⑤레프트 고예림 ⑥세터 이나연 ①센터 정지윤
▲리베로=김연견, 김주하, 이영주
▲웜업존=전하리, 박지우(이상 레프트) 황연주(라이트) 이다현, 정시영, 양시연(이상 센터) 김다인, 김현지(이상 세터) 한미르(리베로)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오늘의 핫이슈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