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연대에 관한 테마 단편선을 기획한 건 나였다. 일곱 명의 작가에게 청탁을 하고 원고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편 한편 도착하는 소설들을 읽고 있자니, 손이 근질근질해졌다. 아, 나도 끼고 싶어 … (중략) 그래서 이 책은 애초 기획보다 두꺼워졌고, 나는 기획의 말 대신 작가후기를 쓰게 되었다.”
이 책을 출간한 폴앤니나의 대표이자 소설가인 김서령 작가의 후기이다. 그가 ‘한편 한편 읽다가’ 마음을 홀딱 빼앗기고 만 문장은 ‘언니들이야말로 든든한 배후’라는 정여랑 작가의 글이었다. 이 한 문장은 ‘언니 믿지?’를 하나로 꿰뚫어 엮는 새끼줄 같은 것이다.
‘언니’의 일러스트와 노란 바탕부터 눈길을 가게 만드는 이 예쁜 소설집은 여성연대를 이야기하는 여덟 편의 단편소설을 싣고 있다. 여덟 명의 작가는 이 땅에서 여성들이 연대하고 어울리고 위로하는 세상을 더없이 발랄하면서 잔잔하게 그리고 있다.
등장인물들은 할머니의 삶에서 여성의 삶을 끄집어내 복원하고(할머니는 엑소시스트·송순진), 이혼하고 돌아온 이웃집 딸을 위해 온갖 오지랖으로 빨래방 창업을 돕는다(언니네 빨래방·김서령).
친구의 실종된 딸을 찾으러 모든 것을 팽개치고 떠나기도 하고(안부를 물어요·윤화진), 자신의 존재가 아기를 생산할 수 있는 자궁으로만 집계되는 현실에 기막혀하기도 한다(에그, 오 마이 에그·김지원).
바람을 피우고도 뻔뻔한 언니의 남자친구를 처단하기 위해 자매가 싸움판을 벌이고(엄마한텐 비밀이야·최예지), 디지털성범죄를 저지른 아들을 엄마가 제손으로 신고한다(한 사진관·정여랑). 비혼여성이라 당연히 돌봄노동을 도맡게 되는 현실이 그려지는가 하면(우리들의 방콕 모임·이명제), 그래야 하는 이유도 모르면서 완벽한 식탁을 차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기도 한다(완벽한 식사·임혜연).
폴앤니나는 ‘상큼한 소설과 반짝이는 일러스트의 만남’이라는 콘셉트로 ‘폴앤니나 소설시리즈’를 연달아 출간하며 요즘 출판계의 핫 퍼블리셔로 급부상하고 있다. ‘달콤한 밤 되세요(노정 지음·드로잉메리 그림)’, ‘애비로드(최예지 지음·살구 그림)’, ‘연애의 결말(김서령 지음·제딧 그림)’ 등이 폴앤니나의 책들이다.
‘언니 믿지?’는 텀블벅에서 먼저 선보였고, 1시간 만에 목표금액을 달성하는 등 크라우드 펀딩은 성공적이었다. 책의 앞표지에는 ‘당신의 배후가 되고 싶은 언니들의 소설집’, 뒷표지에는 ‘걱정마라, 네 뒤에는 언니가 있다!’라는 짧지만 누군가에게 간절한 힘이 되는 문장이 새겨져 있다. 당장이라도 친구 먹고 싶어지는 표지의 언니는 이시호 작가의 일러스트 작품이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