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귀환’ 배우 이혜영 “여전히 누군가의 꿈이고 싶다”

입력 2021-07-26 15: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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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만드는 홍상수입니다.” “나는 준비가 됐다. 만나자.”

시작은 문자메시지로 주고받은 짧은 대화였다. 배우는 감독이 자신을 “왜 캐스팅했는지 이유를 묻지 않았다. 사실 궁금하지도 않았다”. 단지 “그를 만나고 싶었다”.

배우는 감독과 술 한 잔 나누며 친구가 되고 싶었다. 감독은 마침 술을 끊었지만, 이내 배우는 “그의 영화와 영화를 만드는 현장에 완벽히 매료됐다”고 돌이켰다.

배우 이혜영(59)은 2007년 영화 ‘더 게임’ 이후 14년 만에 그렇게 새로운 무대의 주역으로 다시 나섰다. 홍상수 감독의 ‘당신 얼굴 앞에서’이다.

그가 최근 영화진흥위원회의 한국영화 해외 플랫폼인 코비즈(KoBiz)와 인터뷰를 가졌다.

코비즈는 “1980년대 한국영화의 대표 얼굴”인 그에게 임권택·정지영·장선우·이장호·송경식 등 당대 대표적인 감독들이 “한국영화에서 만난 적 없는 강렬한 캐릭터를 맡겼다”고 밝혔
다. 그렇게 “매번 스크린에서 열정적으로 타올랐”지만 그는 이후 공백기로 “이혜영의 얼굴이 지닌 파괴력을 기대하는 관객”에게 아쉬움을 안겼다.

그래서 “이혜영의 얼굴이 85분의 러닝타임을 다득 채우는 홍상수 감독의 신작 ‘당신의 얼굴 앞에서’를 향한 기대가 뜨겁다”면서 “전설의 귀환”이라며 그의 복귀를 반겼다.

최근 막을 내린 제74회 칸 국제제영화제 프리미어 부문에서 영화를 선보이기도 한 이혜영은 인터뷰에서 “내 영화가 칸에 초청받아 꿈을 이룬 기분이다”는 소감을 밝혔다.

“영화 만드는 홍상수입니다”라는 메시지에 “나는 준비가 됐다. 만나자”는 답으로 만난 이혜영과 홍 감독은 자신들의 부모에 얽힌 인연도 갖고 있다. 이혜영의 아버지 이만희 감독의 1968년작인 ‘휴일’의 제작자가 홍상수 감독의 어머니 고 전옥숙 선생이다.

2015년 전 선생의 빈소에서 홍 감독을 처음 만났다는 이혜영은 “사실 2015년까지 홍 감독의 영화를 본 적이 없다”면서 “TV에서 흘깃 본 그의 영화는 너무 일상적이고, 현실적이고, 불친절했다. 성의 없게 보일 지경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영화의 판타지를 현실로 믿고 사는 내게 오히려 홍상수 영화의 리얼리티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홍 감독의 연락을 받고 그의 영화를 찾아봤다는 그는 “남들이 다 아는 천재를, 나 혼자 뒤늦게 만났구나!”라며 “그렇게 감격한 상태로 현장에서 연기하고, 다시 밤새워 그의 영화를 보고 감동하는 날의 연속이었다”고 돌아봤다.

이어 홍 감독의 현장은 “40년 배우로 살아오는 동안 지난날의 내 연기가 모두 가짜였던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만큼 새로움을 발견하는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지금껏 연기하면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자유로움을 느꼈다.”

매우 구체적인 묘사가 담긴 일반적인 시나리오와 달리 홍 감독의 시나리오는 그렇지 않았다며 “촬영 당일 시나리오를 받고, 그 자리에서 연기하면 끝”이었다고 말했다. “그날의 상황에 맞게 연기하면 되는 작업이 정말 재미있었다”며 그런 자유로움이 좋았다는 설명이다.

그렇게 이전과는 전혀 다른 연기를 펼쳤다는 이혜영은 스릴러 영화 ‘앵커’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또 곽재용 감독의 신작 ‘해피 뉴 이어’에도 주연으로 나서 촬영 중이다.

여전히 카메라 앞에서 배우로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그는 “내가 새로운 작품을 선택하는 건 배우 이혜영이 제대로 담길 인물을 찾는 과정이거나, 이미 찾은 뒤에 또 방랑길을 떠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어린 시절부터 고독했고, 외로웠다. 12살이 될 때까지 웃어 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면서 “그러다 영화를 만났고, 영화를 보는 게 행복했다”고 돌이켰다.

“배우의 꿈을 꿨고, 이뤘다. 나는 여전히 꿈을 좇으며 산다. 그리고 여전히 꿈을 믿는 누군가의 꿈이 되고 싶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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