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판사’ 정세린 음악감독 “선한 인상의 배우들, 나도 궁금했다”

입력 2021-07-31 15:36: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악마판사’ 정세린 음악감독 “선한 인상의 배우들, 나도 궁금했다”

디스토피아를 표현하고 있는 또 하나의 장치, ‘악마판사’ 속 배경음악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tvN 토일드라마 ‘악마판사’(극본 문유석/ 연출 최정규/ 제작 스튜디오드래곤, 스튜디오앤뉴)가 화려한 볼거리, 치밀한 스토리, 배우들의 호연으로 매료시키고 있는 가운데 장면의 맛을 배가하는 음악들이 열띤 반응을 얻고 있다. 과연 음악 속에 어떤 전략이 담겨 있을지 정세린 음악감독과의 생생한 인터뷰를 공개한다.

1. ‘악마판사’를 준비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포인트가 있었다면 무엇인가?

‘국민시범재판’에서 판결이 난 후의 여러 군상들을 스코어로 다 표현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아들의 태형 집행에 싸인해야 하는 차경희(장영남 분) 장관 신의 경우 모성애, 비틀린 정치적 야망, 남편의 안타까운 부성애, 끌려가는 아들의 두려움, 기묘한 느낌의 태형 집행장 등의 느낌을 다 살려야 했다.

모든 장면을 오리지널 스코어로 해결하려 하지 말고 클래식도 활용하고자 했는데 우연히 Erik Satie의 ‘Gnossienne’ 1번 곡을 붙여보니 모든 게 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태형 집행 장면에서는 우리 OST인 ‘Tempest’를 붙였다. 괴이하고 불편한 장면들의 연속이지만 음악에서 주는 아이러니함이 전달됐으면 했고 작업 후 감독님, 작가님을 비롯한 후반팀 스태프들이 만족해주셔서 기분이 좋았다.

2. 2회 강요한과 정선아가 함께 춤을 추는 신에서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음악이 나왔다. 클래식을 쓰게 된 작업 배경은?

감독님이 제안을 주셨는데 이 곡을 고른 가장 큰 이유는 모티브가 확실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멜로디에서 느껴지는 묘한 감정들이 어울렸고 여러 버전으로 편곡하기에도 재밌겠다는 감독님의 판단이 있지 않았나 싶다. 꽤 긴 장면인데 지루하지 않으면서 중간에 다른 음악이 삽입돼도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도록 정밀한 배치가 필요했던 신이라 신경을 많이 썼다.

두 번째는 감정 전달이었다. 시청자들이 이 장면을 보시고 만화같으면서 씁쓸하고, 과장이 섞여 판타지스럽지만 묘하게 현실적이고, 강요한(지성 분)이 무서우면서도 안돼 보이고, “요한은 대체 어떤 사람이지?”하며 미스터리하면서도 멜랑꼴리한 감정과 카타르시스를 동시에 느끼셨다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3. 이 드라마에서만 쓰인 독특한 악기나 효과가 있을지, 어떤 재미난 시도들이 있었나?

먼 미래가 아니라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 흔히 접하는 장르와 악기들로 작업을 했다. 다만 자연을 연상시키는 클래식 기타보다는 암울한 시대에 더 맞을 법한 일렉 기타가 쓰인 정도? 가장 신경 쓴 점은 성별에 따라 악기나 장르를 나누지 않는 것이었다.

또 특정 신들은 ‘생각지 못한 장르의 음악이 흐른다면 재밌겠다’란 생각을 했다. 정선아(김민정 분)와 차경희가 신경전을 벌일 때 EDM이 흘러나온다거나 액션 신에 서정적인 음악을 깔아서 역설적인 대비를 보여주는 식의 시도들이다. 자칫 무겁고 괴랄해 보일 수 있는 장면들은 위트있게 넘길 수 있도록 하고 반대로 가벼운 장면이지만 좀 더 생각해봤으면 하는 신들은 진중한 음악을 배치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런 작업 과정이 어렵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제게는 매우 흥미롭고 재밌는 시도이자 도전이다.

4. 최정규 감독님과 고민한 부분이 있다면?

대본을 보니 강요한과 강이삭(진영 분)의 서사가 끌렸고 정선아를 비롯한 여러 조연 캐릭터들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또한 최정규 감독님의 차기작이라면 거절할 이유가 없어서 하겠다고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음악 작업이 매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감독님과 사전 단계부터 많은 음악을 주고 받고 콘셉트 이야기를 나눴다. 특히 OST로 꼭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다며 허클베리핀을 추천해주셨다. 음반을 들어보는데 ‘악마판사’의 내용과 이분들의 음악이 함께 하면 시너지 효과가 날 것 같았다. 허클베리핀과는 내용에 관한 의견이나 어떤 장면에 어떤 곡이 필요한지 이야기하는 등 잊지 못할 재밌는 과정을 나눴다. 처음 ‘Tempest’ 데모의 전주 첫 부분을 듣자마자 벅차오르던 감정을 숨기지 못한 채 흥분해서 감독님과 통화했던 게 생각난다.

감독님과 제가 고민했던 것은 ‘악마판사’가 하나의 장르로 설명할 수 없어 음악도 여러 종류, 여러 장르가 필요했다는 점이다. 메인 테마를 멜로디로 풀어야 할지, 분위기(코드성)로만 가져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

흔히들 생각하는 장르물의 음악도 가져가야 했고 각 캐릭터들의 테마 역시 선악의 경계가 불분명하게 흘러갈 때가 있어서 그 오묘한 경계를 어떻게 표현할지도 고민이 됐다. 그만큼 어렵고 복잡한 작업이었다. 이 고민의 결과물이 여러분들이 지금 듣고 계시는 것들이다.

5. 캐릭터의 테마 구상 시 어떤 키워드 혹은 이미지 등을 떠올렸나?

테마를 잡을 때 배우의 인상도 큰 영향을 받는다. 배우들의 사진과 전작들을 찾아보고 어떻게 연기할지 상상하며 작업을 하는데 이번에는 상상조차 어려웠던 게 배우분들 인상이 전부 선해서 이 역할들을 어떻게 소화해낼지 궁금했다. 성별에 따라 악기와 장르를 나누는 전형적인 시도를 따라가지 않으려 했기에 클리셰를 따라가는 듯 묘하게 비껴가는 우리 드라마처럼 음악도 반대로 가는 지점들이 있으니 그걸 따라 듣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캐릭터별 대표되는 음악이 있긴 하지만 상황에 따라 맞게 사용한다. 강요한과 김가온(진영 분)은 마음속에 늘 상처있는 아이가 있다고 생각해 아픔과 슬픔이 묻어나는 멜로디가 흐르고 서로가 아픔을 들출 때마다 현악기 솔로와 피아노, 오케스트라가 함께 한다. 김가온과 윤수현(박규영 분)은 따뜻한 톤의 일렉기타 곡들이 주를 이루고 정선아는 변화무쌍한 캐릭터라 고전미 가득한 매혹적인 음악, 음모를 꾸미거나 계략을 꾸밀 때는 EDM, 최고 빌런에 등극했을 때는 외로운 암사자같은 느낌의 음악 등을 사용했다.

6. 마지막으로 드라마 음악이 주는 효과는 무엇인가?

스코어는 숨어있는 배우이자 배경인 것 같다. 장르를 만들어주기도 하고 드라마의 톤과 배우들의 연기를 명확하고 돋보이게 한다고 생각한다. 정선아가 강요한을 납치하고 욕망을 드러낼 때 정의로운 음악이 깔린다면 아마 납치된 강요한이 나쁜 악당이고 정선아가 히어로처럼 느껴질 것이다. 어떤 음악이 붙느냐에 따라 신의 해석과 흐름이 완전히 바뀌는 매우 섬세한 해석과 접근이 필요한 작업이다.

작업을 할 때 저도 같이 호흡하고 울고 웃으며 하게 된다. 시청자들이 들었을 때의 감정과 배우들이 느꼈을 감정을 생각할 때도 있다. 드라마 음악은 배우들의 감정선을 공기처럼 감싸주면서 음악이 있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분위기로만 존재해야 할 때도 있고 때로는 제 3의 주인공처럼 존재감을 드러내서 끌고 가야 하는 신이나 불분명한 의도의 장면을 음악으로 설명해주기도 한다.

음악 작업에는 꽤 많은 제작비, 오랜 시간의 작업 과정이 필요하다. 이제는 많은 팬분들이 이 노력을 알아주시고 들어주시고 공감해주시는 것 같아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악마판사’도 처음 본 방송 보실 때는 내용에 집중해주시고 두 번째 보실 때는 음악에도 귀 기울여 주시고 언젠간 출시될 OST도 관심 가져주시길 바란다.

이처럼 보는 재미를 넘어 듣는 즐거움까지 선사하고 있는 tvN 토일드라마 ‘악마판사’는 31일(토) 밤 9시 10분 9회가 방송된다.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오늘의 핫이슈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