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루 벤투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 스포츠동아DB
15년 전이긴 하지만 한국대표팀을 이끌고 2006 독일월드컵에 출전했던 그는 홈인데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앞선 한국을 상대로 밀집수비와 대인마크, 역습을 적절히 섞은 ‘맞춤 전술’로 재미를 톡톡히 봤다. ‘선 수비, 후 역습’이 의도한 대로 잘 들어맞은 것이다. 이는 상대 전력을 정확히 분석했기에 가능했다.
축구는 상대적이다. 한 팀이 성공했으면, 상대는 실패했을 확률이 높다. 한국축구대표팀을 맡은 지 3년이 넘은 파울루 벤투 감독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는 건 작전에서 실패했기 때문이다. 얌전한 플레이와 뻔한 전술이 무득점과 무승부를 낳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충분히 짐작할 수 상황에서도 거기에 대비한 전술을 내놓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팬들은 화가 났다.
이날 예상된 손흥민(토트넘) 집중마크에 대한 대비책은 잘 보이지 않았다. 우리의 강점인 측면 돌파가 막힐 때의 차선책도 찾을 수 없었다. 벤투 감독이 추구하는 빌드업 전개도 상황에 따라서 건너 뛸 수 있어야하는 데, 그렇지 못했다. 빌드업은 상대가 압박을 가하고, 정상적으로 올라와줘야 효과를 볼 수 있는데, 이라크는 애초부터 그런 의도가 없었다. 축구에선 점유율보다는 골이 더 중요하다. 벤투 감독도 “공격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못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국가대표팀 정도 되면 다양한 전술을 소화할 수 있어야한다. 흔히 말하는 플랜A 뿐만 아니라 플랜 B나 플랜 C도 갖고 있어야 상황에 맞게 대처할 수 있다. 우리의 약점이 여기에 있다. 너무 단조롭다. 한번 막히면 대책이 없다. 밋밋한 세트피스도 마찬가지다. 그런 측면에서 이라크전은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2년 전 목표를 이루지 못한 2019 아시안컵 때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상대가 누구든 최후방부터 시작하는 빌드업을 끝까지 밀어붙이다 보니 공격이나 슈팅 횟수에 비해 득점력이 떨어졌고, 결국 8강에서 탈락했다. 당시에도 플랜B 부재에 대한 얘기가 많았다. 그때보다는 나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기대만큼 내실을 다졌는지는 의문이다.
또 손흥민이나 황의조(보르도) 등 해외파의 컨디션 관리도 문제다.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는 대표선수들의 고충은 몇 해 전 박지성의 은퇴를 통해 잘 드러났다.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지만 부상이 아닌 한 감독 앞에서 내색하긴 쉽지 않다. 귀국한 지 50여시간만에 정상 컨디션으로 출전한다는 건 애초부터 무리다. 벤투 감독이 이런 상황을 제대로 살폈는지 되돌아봐야한다.
이번 최종예선은 총 10경기를 치른다. 이제 1경기 끝났을 뿐이다. 그래도 불안한 건 나머지 9경기의 패턴도 비슷할 것 같아서다. 벤투 감독은 단일 임기로 역대 한국대표팀 사령탑 중 최장수다. 한국축구의 약점이던 잦은 감독 교체도 이젠 옛날 얘기다. 싫든 좋든 그가 한국축구의 운명을 쥐고 있다. 월드컵 본선에 오르기 위해선 벤투 감독이 아시아축구에 대해 더 많은 연구를 해야 한다. 그래야 이긴다. 또 주위의 조언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게 한국축구를 위하는 길이다.
최현길 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