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리그 개막특집] 새 집·새 선수·새 흥국생명, 다시 행복을 말하는 ‘원 팀 흥국’

입력 2021-10-01 1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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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 황제\' 김연경을 비롯한 주축 선수 5명이 한번에 팀을 이탈했다. 2021~2022시즌 흥국생명을 향한 부정적 시선이 지배적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박미희 감독은 “부정적 예측이 많지만, 성장통의 시간을 단축하는 데 초점을 맞추겠다”며 2021~2022시즌을 의욕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젊은 선수들의 활기에 기대를 걸고 있다. 사진제공 | 흥국생명

7인제 배구에서 주축선수 한두 명의 이탈은 시즌 포기로 이어질 만큼 타격이 크다. 하물며 5명이 빠진다면? 2021~2022시즌 흥국생명이 그렇다. 리빌딩 모드. 거목들이 빠져나간 땅을 다시 일구고 새로운 씨앗을 심는 것은 프로구단의 역할이다. 역사를 쓰는 게 익숙했던 박미희 감독은 젊은 선수들의 성장을 믿는다. 시행착오가 불가피한 시즌이지만, 그 기간을 줄이며 이들과 함께 새 역사를 조금씩 쌓아가겠다는 각오다.

“젊은 선수들, 강한 일정 잘 따라와”

V리그 개막을 16일 남겨둔 30일 흥국생명 연수원에는 활기가 가득했다. 박미희 감독의 표정부터 밝았다. 지난 시즌 내내 여러 부담과 싸우며 어두운 표정이 가득했던 박 감독의 미소는 모처럼만이었다. 그는 “올 시즌을 앞두고 유달리 빡세게 운동을 했는데, 젊은 선수들이라 그런지 힘든 기색 없이 잘 따라와주고 있다”며 웃음을 지었다.

2014~2015시즌부터 흥국생명 지휘봉을 잡은 8년차 사령탑 박 감독에게도 지난 시즌은 낯설음의 연속이었다. 시즌 전 김연경과 이다영을 영입하며 ‘흥벤져스’로 불릴 때는 ‘1패만 당해도 실패’라는 부담이 그를 짓눌렀다. 시즌 막판에는 이재영-다영 쌍둥이 자매가 학교폭력 논란에 휘말리며 무기한 출전정지 징계를 받았다. 반대로 1승이 쉽지 않은 환경이 됐다.

박 감독은 “처음 지휘봉을 잡았을 땐 코치 경험이 없어 시행착오도 겪었지만 미래를 향한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지난 시즌에는 모든 것을 놓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지인들도 ‘무실세트 우승’ 얘기까지 나왔던 지난해 KOVO컵 때부터 박 감독이 적잖은 부담에 짓눌리고 있음을 감지했다. 여러 일들에도, 박 감독은 묵묵히 버티며 선수들의 화살받이 역할을 자처했다.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은 지난 시즌을 잊고 새 팀 빌딩 작업에 한창이다. 박 감독은 "승부의 세계에 핑계는 없다. 어려운 시기를 단축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했다. 사진제공 | 흥국생명


2021~2022시즌, 성장통 단축의 원년

새 시즌에는 또 다른 장르의 부담감이 박 감독을 찾아왔다. 이번에는 젊은 선수들을 주축으로 한 육성, 리빌딩이 과제로 떠올랐다. 김연경과 쌍둥이가 팀을 떠난 데 이어 김세영이 은퇴했고, 이한비가 신생팀 AI 페퍼스로 향했다.

강제적인 상황이 만든 도전과제이지만 오히려 활기가 가득하다. 추석 연휴에도 훈련을 할 만큼 기본기를 다지는 데 초점을 맞췄다. 김다솔은 “매년 비시즌이 힘들지만 올해는 유독 볼을 다루는 운동을 많이 했다. 입단 후 가장 힘들게 여름을 보낸 것 같다”면서도 웃었다. 흘린 땀의 양이 결과와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 비슷한 그래프를 그린다. 흥국생명의 젊은 선수들은 이 땀의 힘을 믿는다.

출산으로 은퇴를 선언한 뒤 1년 만에 돌아온 ‘디그 여왕’ 김해란의 시선도 비슷했다. 김해란은 “지난 시즌 여러 일이 있었음에도 떠나기 전과 분위기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시즌 일들을 선수들이 금세 극복한 모습이 느껴져서 대견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 시즌 주전 선수들 중 올해도 자리를 지키는 이는 레프트 김미연과 센터 이주아뿐이다. 지난 시즌까지 뒤를 받치는 역할이었던 이들이 전면에서 팀을 이끌어야 한다. 사령탑은 키플레이어로 “모두가 잘해야 한다”면서도 ‘캡틴’ 김미연의 역할을 강조했다. 박 감독은 “(김)미연이는 매번 스스로를 ‘보조 공격수’로 얘기했는데 올 시즌은 다르다. 주 공격수로서 큰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해주고 있다. 훈련을 가장 열심히 소화하며 몸을 잘 만들었다”며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흥국생명 선수단. 사진제공 | 흥국생명


좌충우돌 시행착오, 그 속에서 그리는 미래

흥국생명은 새 시즌부터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을 홈구장으로 쓴다. 기존 계양체육관을 떠나 새 구장에서 팬들을 맞이한다. 새로운 선수들과 새로운 구장에서 뛰는, ‘뉴 흥국생명’의 원년인 셈이다.

흥국생명 훈련장이 인근에는 큰 규모의 운전면허연습장이 있다. 병아리 같은 노란색 차들이 즐비한 도로. 처음 운전대를 잡는 학생, 사회초년병들은 긴장과 설렘이 교차한다. 새 시즌 흥국생명이 그렇다. 초보운전자들이 미숙한 모습을 보이거나 접촉사고를 내는 것처럼, 이번 시즌 선수들도 좌충우돌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박 감독은 긴 호흡으로 인내할 생각이다. 박 감독의 출사표는 어느 해보다 담담했지만, 무게감이 있었다.

“젊은 선수들이 팀 주축으로 도약하는 데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때로는 안 풀리는 경기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젊은 선수들이 경험을 쌓아 반전을 만들어야 한다. 가만히 앉아 눈으로 본다고 성장하진 않는다. 팀이 다시 정상에 오를 때까지 걸릴 시간을 줄이는 게 올 시즌 목표다. 주위에선 ‘흥국생명은 깔고 간다’는 얘기도 들린다. 조용히 듣고 있다. 가장 희망적인 건, 선수들이 행복하게 배구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개개인의 욕심이 늘고 목표치가 높아졌다. 요란한 빈 깡통보단 팀워크를 바탕으로 우리만의 경기를 하겠다. 첫 경기보다 두 번째 경기가, 1라운드보다 2라운드가 더 좋은 팀을 만들고 싶다. 우리한테 물리면 꽤 아플 것이다.”

용인|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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