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 인터뷰] “출산 후 복귀 어렵다? 오기 생겨…자랑스러운 엄마 김해란이 목표”

입력 2021-10-01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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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그 여왕\'이 돌아왔다. 김해란은 은퇴를 번복하고 1년 만에 다시 코트에 섰다. 그토록 바라던 아이를 출산한 뒤에도 배구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다. 김해란은 "부정적 시선에 오기가 생긴다"며 이를 악물었다. 사진제공 | 흥국생명

국내 최고의 리베로로 군림한 시간만 10년이 넘었으니 이룰 것은 다 이뤘다. 미련 없이 유니폼을 벗었을 때만 해도 복귀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연거푸 코트로 눈길이 돌아갔다. 천상 배구인은 결국 1년 만에 복귀를 선언했다. 공교롭게도 리빌딩에 나선 팀에 중심을 잡아줄 선수가 필요했던 시기였으니 ‘천군만마’다. 김해란(37·흥국생명)은 다시 강팀이 될 흥국생명을 위해 시간을 벌어줄 채비가 한창이다.

“애 낳으니 안 된다? 오기가 생긴다”

10년 넘게 국가대표 리베로 자리를 지켰던 김해란은 2019~2020시즌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조기에 종료된 2020년 4월 은퇴를 선언했다. 출산에 대한 의지가 강했던 만큼 더 미룰 수 없겠다는 판단이었다. 그해 12월 출산한 김해란은 올 4월 복귀를 선언하고 흥국생명과 재계약했다. ‘엄마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의지였다.

30일 용인 흥국생명 연수원에서 만난 김해란은 은퇴 전과 달라진 모습이 없었다. 출산을 앞두고 몸무게가 크게 불었지만 저녁밥 대신 다이어트 도시락을 먹으며 20㎏ 가까이 감량했다. 그는 “애를 낳으니 살이 안 빠졌는데, 코트 복귀라는 목표가 생기니 (다이어트가) 되더라”며 웃었다.

“돌아봐도 후회 없이 배구를 했다”는 김해란. 주위에서 ‘복귀해야 하지 않겠나’라는 얘기를 연거푸 들으면서 조금씩 욕심이 생겼다. 처음 복귀를 입에 담았을 때만 해도 친정어머니와 남편 모두 “다치는 걸 더 보기 싫다”고 만류했다.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2012런던올림픽 배구 멤버들의 모임에서 정대영은 “복귀하면 힘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출산 후 복귀했던 이력이 있는 정대영의 말이었기에 다가오는 느낌도 달랐다. 하지만 김해란의 복귀 의지가 더 강했다.

“아무래도 부정적 시선이 많다. ‘애 낳으니 안 되네’, ‘나이 먹으니 쉽지 않네’라는 말을 들으면서 오기도 생겼다. 그런 시선을 깨버리고 싶다. 세월이 쌓였으니 몸이 느려질 수 있지만 더 독하게 운동하고 있다. 나중엔 후회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너무 행복하다. 가장 좋아하는 일, 잘하는 걸 하면서 돈도 벌지 않나. 1년을 쉬는 동안 훈련장에 출퇴근하는 소소한 일상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1년이 미안한 선배, 복귀가 고마운 동료

‘리빙 레전드’는 존재만으로도 후배들에게 귀감이 된다. 젊은 선수들이 리시브를 받을 땐 아예 김해란이 코치처럼 옆에서 지켜보고 원 포인트 레슨을 한다. 김해란은 “아무래도 (도)수빈이가 이것저것 많이 물어본다. 기량과 멘탈 모두 충분히 잘할 수 있는 선수다. 네 장점 살리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고 말했다. 박미희 감독은 “올 시즌을 앞두고 제일 잘한 일 중 하나가 (김)해란이를 빨리 복귀시킨 것이었다. 그게 신의 한 수가 됐다. 기대만큼 팀 중심 역할을 잘해주고 있다. 해란이가 코트에 있으면 아무래도 안정감이 다르다. 은퇴 이전과 기량에 차이가 없다”며 복귀를 환영했다.

오히려 김해란은 후배들에게 미안함을 먼저 얘기했다. 흥국생명은 지난 시즌 초반 ‘흥벤져스’로 1패가 화제였던 팀에서 중반 이후 쌍둥이의 이탈로 1승이 화제가 됐다. 박 감독은 물론 팀원들 전체가 겪어본 적 없던 혼란의 시기를 보냈다. 김해란은 “선수들 걱정이 정말 많이 됐다. 개인적으로 연락해 상황을 물어보기도 미안했다. 도움이 못 되고 ‘괜찮냐’는 말만 했던 것 같다”고 자책했다. 그러면서도 “은퇴 전후로 선수들의 분위기는 그대로다. 선수들이 지난 시즌 아픔에서 빨리 털고 일어선 것 같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출산한 아들은 김해란의 활력이자 복덩이다. 김해란은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사진제공 | 김해란

자랑스러운 엄마, 또 하나 추가된 목표

돌도 지나지 않은 아들 조하율 군은 지친 훈련의 회복제다. 이제 막 물건을 짚고 일어나거나 혼자 옆으로 걷는 단계. 아이를 두고 훈련장으로 출근하는 발걸음이 결코 가볍지 않은데, 하율 군은 어째서인지 출근하는 엄마를 지켜보며 손을 흔든다. 김해란은 “울면서 떼를 쓰면 마음이 무거울 텐데 엄마를 안 좋아하는지…”라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덕분에 힘이 난다”고 아들 자랑을 이어갔다.

그토록 사랑하는 배구에 쉼표를 찍었던 것도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이 강했기 때문이다. 박 감독은 하율 군을 ‘효자’라고 표현했다. 김해란은 “아이를 갖고 싶다고 해서 쉽게 생기는 게 아니지 않나. 은퇴를 하자마자 아이가 들어섰다. 조금만 어긋났어도 복귀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차근차근 할 수 있게 만드는 복덩이 같다”며 웃었다.

흥국생명 선수단은 훈련장 벽에 각자 시즌 목표를 적는다. 김해란은 은퇴 이전처럼 체력관리, 리시브 성공률을 차례로 적었다. 여기에 ‘엄마 김해란’의 세 번째 목표가 추가됐다. ‘하율이에게 자랑스러운 엄마 되기’. 김해란은 이번 시즌을 마칠 때쯤, 아들이 TV에 나오는 엄마를 알아볼 수 있길 기대하고 있다. 하율이가 유니폼 입고 코트를 누비는 엄마를 알아보는 순간, 그때 김해란은 언제나처럼 팀의 정신적 지주로 핑크 거미들을 이끌고 있지 않을까.

용인|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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