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효 U21대회 결승전 주심이 말하는 국제심판의 세계 [스토리 발리볼]

입력 2021-10-19 10: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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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FIVB

대한민국 배구 심판계에서 희소식이 자주 들리고 있다.

강주희 심판이 2021발리볼네이션스리그(이하 VNL) 여자배구 결승전 주심에 선정됐고 2020도쿄올림픽에 출전한데 이어 최재효 심판이 최근 21세 이하 세계남자선수권대회(이하 U21대회) 결승전의 주심을 맡았다. 국제배구연맹(FIVB)이 주관하는 대회의 결승전 주심을 본다는 것은 우리 심판의 빼어난 능력을 확인시켜주는 증거다. 최재효 심판은 9월 8일 일본 지바에서 벌어졌던 아시아선수권대회에 참가한 뒤 이탈리아로 이동했다가 지난 5일 귀국했다.

거의 한 달간 엄격한 방역수칙을 지켜가며 판정을 내릴 때마다 쌓이는 중압감과 스트레스를 견디며 휘슬을 불었던 그에게 국제심판 세계의 뒷얘기를 들었다.


-늦었지만 U21대회 결승전 주심배정을 축하한다.

“이번 대회에서 심판을 평가하는 분이 좋게 봐준 덕분이다. 준결승전을 이틀 앞두고 시간이 있었는데 러시아-아르헨티나 준결승전의 부심으로 배정되면서 어느 정도 기대는 했다.(결국 그 2명의 심판이 역할을 바꿔 결승전에 배정됐다.)”


-결승전 주심 배정은 그 대회에서 가장 심판을 잘 봤다는 얘기인데 어떤 혜택이 있는가.

“나도 궁금해서 물어봤다. 내 등급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다고 했는데 내년에 FIVB에서 등급을 어떻게 결정하는지 지켜봐야 한다. 국제심판은 A B1 B2 C등급 등 4단계가 있다. 나는 2년 전에 B2등급이 됐다. 만일 내년에 B1등급이 되면 성인세계선수권대회와 VNL에 참가할 수 있다. 올림픽만 빼고는 다 배정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된다.”

사진출처 | FIVB



-이번 대회에 참가한 많은 심판 가운데서 어떻게 결승전 심판이 결정되는지 궁금하다.

“전 세계에서 16명의 심판이 참가했다. 아시아권에서는 나와 카자흐스탄 심판 2명뿐이었다. 아시아선수권대회를 마치자마자 U21대회와 일정이 겹쳐 이탈리아로 갔다. 대회는 이탈리아(2곳)와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열렸다. 조별리그를 거친 뒤 각조의 심판 2명은 상위팀, 나머지 2명은 하위 팀들의 조로 각각 배정됐다. 이렇게 점점 단계를 거쳐서 준결승전, 결승전 주심을 최종 결정했다. 모든 경기를 따라다니면서 심판능력을 평가하는 분이 내게 좋은 점수를 준 것 같다. 구체적인 내용은 나도 잘 알지 못한다.”


-U21대회 결승전 영상을 보면 엄청난 열기가 느껴지던데.


“이탈리아는 자국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거둘 것을 예상해서 대회를 유치한 것으로 보였다. 이탈리아는 그린패스 제도를 운영하는데 코로나19 백신을 맞고 마스크를 쓰면 거리제한 없이 누구나 입장이 가능했다. 경기는 U튜브와 TV로 중계했는데 현장의 열기가 엄청났다.”


-심판으로서 기억에 남을 경험인데.

“지금 각 대륙의 심판들이 세대교체 중이다. 은퇴심판이 많아서 앞으로 국제대회에 활약할 심판을 새로 찾고 있다고 했다. 이번 결승전 주심 경험이 좋은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사진출처 | FIVB



-코로나19로 심판들도 과거보다는 국제대회에서의 생활이 훨씬 더 힘들지 않나.

“그렇다. 지바에서는 마치 교도소에서 생활하는 느낌이었다. 심판들은 대회기간 내내 음식을 가지고 각자 방으로 돌아가서 혼자 밥을 먹어야 했다. 방 앞에는 혹시 외출할까봐 감시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나마 이탈리아에서는 심판들이 함께 밥을 먹고 잠시 산책할 여유를 줬다.”


-VNL은 버블시스템으로 운영했는데 이번 대회는 어땠나.

“마찬가지였다. 이탈리아의 개최장소는 칼리아리와 카르보니아 두 곳이었는데 사르데냐라는 섬에 있는 도시였다. 매일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생활이었지만 심판들끼리 회의를 하고 대화할 수 있어서 그나마 좋았다. 일본에서는 사람을 만날 기회조자 없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얼굴을 보며 대화를 하는 회의가 기다려질 정도였다. 모두가 외로워서 그랬던 모양이다.”


-이탈리아 현지 생활 때 가장 힘든 부분은.

“식사는 매일 뷔페식으로 나왔지만 라면 한 그릇 생각이 많이 났다. 잘 참아왔는데 심판 가운데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민을 갔던 분이 계셨다. 준결승전 심판을 봤는데 한국말도 유창하게 잘 하는 이 분이 ‘라면과 김치’ 얘기를 할 때가 가장 힘들었다.”

사진출처 | FIVB



-U21 대회는 몇 년 뒤 세계배구의 판도를 예측할 수 있지 않나.

“그렇다. 이번에 우승한 이탈리아는 U18 대회 우승멤버들이 성장해서 참가했다. 선수 가운데 2명은 국가대표인데 그 선수들을 보려고 경기장에 사람이 가득했다. 이탈리아 대표팀의 2번째 세터는 키가 무려 198cm였다. 좋은 선수들이 꾸준하게 나오는 이탈리아가 부러웠다. 아시아에서는 이란과 태국이 참가했다. 이란의 사닷은 플레이를 한 번 보고 싶었는데 심판배정이 잡히지 않았다. 우리 남자배구도 자주 국제대회에 나가서 포인트를 쌓아야 하는데 앞으로 점점 더 세계와의 격차가 커질 것 같아서 걱정이다.”


-심판들은 세계배구의 흐름과 변화를 가장 잘 알 수 있지 않나.

“심판들끼리 많은 정보를 주고받기는 한다. 이탈리아는 클럽이 발달해 좋은 인재들이 꾸준히 나온다고 했다. 폴란드는 10년 전에 정부의 지원을 받아서 각 지방에 돈을 뿌렸는데 그 결과로 유망주들이 이제 나온다고 했다. 앞으로 몇 년 뒤 세계 배구계의 주인공으로 활약할 좋은 기대주들이 많이 보였다. 우리 선수들이 그 속에 없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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