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코 버틴 창단 멤버가 완성한 KT 첫 V “우리 팀 멋지죠?” [스토리 베이스볼]

입력 2021-11-03 14: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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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송민섭(오른쪽)은 2013년 육성선수 트라이아웃으로 신생팀 유니폼을 입었다. 그렇게 버틴 9년. 팀의 정규시즌 첫 우승을 확정짓는 아웃카운트를 그가 잡았다. 사진제공 | KT 위즈

올 시즌 개막전부터 단 한 차례의 말소도 없이 1군 엔트리의 한 자리를 지키며 122경기에 출장했다.

하지만 소화한 타석은 65번에 불과하다. 대수비, 대주자가 익숙한 ‘21시 이후’의 사나이. 송민섭(30·KT 위즈)은 팀 창단 첫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지은 뒤 그라운드 위에서 한참을 울었다.

KT는 10월 31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와 1위 결정전에서 1-0으로 이겨 창단 첫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했다. 이틀 휴식 후 괴물 같은 투구를 한 선발투수 윌리엄 쿠에바스, 결승타를 친 강백호가 승리의 주역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아웃카운트는 좌익수 송민섭이 잡았다.

올 시즌 122경기 중 선발출장은 3경기뿐. 이날도 1-0으로 앞선 8회말 대수비로 투입됐다. 이강철 감독이 가장 믿는 수비용 카드였다. 송민섭은 호세 피렐라의 타구를 잡은 뒤 껑충껑충 뛰며 내야로 향했다. 그리고 한참을 일어서지 못한 채 오열했다. 그는 “마지막 공이 나한테 와서 어찌나 좋았는지 모르겠다”며 “엄청 집중했는데, 공이 와서 잡는 순간 그간 고생했던 게 다 생각나며 눈물이 흘렀다”고 돌아봤다.

전화 인터뷰에 나선 송민섭의 목소리는 잔뜩 쉬어있었다. 송민섭은 “개인적으로 타석을 많이 소화하지 못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팀이 잘돼야 나도 잘 된다. 그렇게 버텼다”고 밝혔다. 이어 “감독님과 최만호 코치님, 박정환 코치님이 정말 많은 믿음을 주셨다. 그 덕에 대주자로 나가서 득점할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감격의 순간, 모두가 힘들었을 때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린다. 송민섭에게는 그 폭이 조금 더 깊다. KT는 창단 직후인 2013년 육성선수 트라이아웃을 진행했다. 당시 22명을 뽑았는데, 그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이가 송민섭이다. 이 감독은 물론 이숭용 단장도 팀 내에서 가장 파이팅 넘치는 선수로 그를 꼽는다. 창단 멤버가 일군 우승. 송민섭은 심우준, 김민혁, 고영표, 문상철 등 창단부터 함께한 이들과 대구에서 한참을 울었다. 함께 트라이아웃으로 KT 유니폼을 입은 이들도 “네가 드디어 살아남고 우승까지 하는구나”라고 격려를 보냈다고.

정규시즌 우승의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았지만, 한국시리즈(KS)라는 큰 무대가 남아있다. 한국야구의 꼭대기 경연장에서도 이 감독의 수비강화 1옵션은 송민섭일 터. 송민섭은 KS에서도 몸을 아끼지 않으며 아웃카운트를 잡기 위해 힘차게 달릴 참이다.

“우리 팀 참 멋지지 않나?”. 인터뷰 말미, 송민섭의 질문이다. 안타를 치는 타자, 삼진을 잡는 투수로만 팀이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송민섭처럼 덕아웃에서 분위기를 만드는, 그리고 스포트라이트 욕심 대신 팀을 위해 헌신하는 이들의 존재도 필수다. KT가 참 멋지지 않냐는 질문에 그렇다는 답이 돌아온다면, 그 속에는 송민섭을 비롯한 알토란같은 백업들의 지분도 적지 않다.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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