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적인 세 장면과 대한항공의 새 항로 [스토리 발리볼]

입력 2021-11-09 09: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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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대한항공 점보스 홈페이지

7일 한국전력과 홈경기를 치른 대한항공에서 상징적 장면이 3가지가 나왔다.


지난 시즌 통합우승팀으로서 이번 시즌에도 안정된 전력을 보여줄 것으로 예상됐던 대한항공은 1라운드를 2승4패(승점 7), 6위로 마쳤다. 팀의 조종간을 새로 잡은 토미 틸리카이넨 감독은 스피드에 바탕을 둔 ‘스마트배구’로 팬들에게 호기심을 선사하겠다고 약속했다.


큰 포부와 달리 1라운드에서 드러난 대한항공의 여러 숫자들은 실망스럽다. 공격성공률 6위(47.25%), 오픈공격성공률 최하위(34.39%), 속공 6위(52.94%), 서브 6위(세트 평균 0.957개), 블로킹 6위(세트 평균 1.957개)다. 범실은 173개로 2위 팀보다 무려 30개나 더 많았다. 공격효율을 더 따지고 범실을 유난히 싫어하는 감독이었지만, 선수들은 정반대의 결과를 보여준 것이다. 전혀 스마트하지 않은 이런 결과 때문인지 틸리카이넨 감독도 7일 한국전력을 상대로는 자신의 고집을 꺾고 변화를 시도했다.

대한항공 유광우. 스포츠동아DB


이날 틸리카이넨 감독은 1·2세트에 한선수를 선발 세터로 기용한 뒤 3·4세트는 유광우를 선발로 투입했다. 우리카드와 시즌 개막전에서 3·4세트 막판 전위에 3명의 공격수를 두기 위해 잠시 교체한 적은 있었지만, 선발 세터의 교체는 그동안 틸리카이넨 감독의 머릿속에 전혀 없었다. 이후 4경기 동안 한선수가 2경기, 유광우가 2경기를 각각 교체 없이 책임졌지만 한국전력전에선 2명을 나눠서 기용했다. 이 변화가 어떤 의미를 지닐지는 앞으로 더 지켜봐야 한다.


또 다른 상징적 장면은 경기 후에 나왔다. 대한항공 선수들은 주장 한선수를 중심으로 코트에 모여 오랫동안 의견을 주고받았다. 진지한 표정으로 나눈 얘기들이라 밖으로 노출될 가능성은 적다. 다만 선수들의 표정이나 무려 38개의 범실로 사실상 자멸했던 경기 상황을 고려하면 상당히 심각한 얘기가 오갔으리란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대한항공 토미 틸리카이넨 감독. 스포츠동아DB


마지막 상징적 장면은 경기 후 감독 인터뷰였다. 평소 중요한 정보와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발언을 절제하던 틸리카이넨 감독이 이례적으로 많은 말을 했다. 그는 먼저 ‘실패’라는 단어를 꺼냈다. “리더로서 내가 실패했다고 본다. 선수들한테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이해시켰어야 했는데, 그 부분이 부족했다”고 반성했다. 1라운드를 복기하면서는 “두 경기는 잘해서 이겼고, 나머지는 우리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못했다.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였던 점은 긍정적이지만,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선수들에게 이해시키지 못했다. 이 부분은 실패했다”고 털어놓았다. 자신이 추구했던 배구가 선수들의 마음속에 완전히 자리를 잡지 못한 현실을 인정한 대목으로 의미심장하다.


아직 스마트하지 못한 대한항공의 항로가 어디까지인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틸리카이넨 감독은 “이기고 지고를 떠나서 선수 탓은 절대 하지 않는다. 본인들도 아쉬울 것”이라고만 말했다. ‘해결책을 혼자서만 찾기보다는 선수들에게 마음을 열고 함께 하자’는 시그널이라고 기자는 해석한다. 아직 정상궤도에 이르지 못한 대한항공이 어떤 모습으로 바뀔지 궁금하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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