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마다 홀로 러닝머신 타는 IBK기업은행 산타나 [스토리 발리볼]

입력 2022-02-03 1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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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K기업은행 산타나. 스포츠동아DB

IBK기업은행의 대체 외국인선수 달리 산타나(26)는 여러모로 특별하다. 역대급으로 인기가 많았고 팀을 떠날 때 더욱 사랑을 받았던 레베카 라셈의 후임으로 결정된 뒤 많은 일을 겪었다. 팀 내부문제로 자신을 선택했던 감독의 얼굴은 보지도 못했다. 2명의 감독대행을 거쳐 한 시즌에 무려 4번째 감독을 만났다. 배구현장을 한동안 떠나있었던 탓에 한국에 도착했을 때 몸은 정상이 아니었다. 준비기간이 필요했다.


김호철 감독은 한 달간의 충분한 시간을 줬다. 시즌이 한창인데 체력훈련부터 다시 시작하는 외국인선수는 산타나가 유일했다. 팀 성적의 추락을 막기 위해 뽑은 선수가 몸을 만들기 시작했으니 동료들도 황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산타나에게는 무기가 있었다. 푸에르토리코 출신답게 친화력이 ‘만렙’이었다. 동료들에게 배운 서툰 한국말을 섞어가며 살갑게 다가섰다. 훈련장에서 모두를 웃게 만드는 분위기 메이커를 동료들은 좋아했다.

한 세트를 뛸 체력을 갖추지 못한 산타나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체중 감량이었다. 자가격리에 들어갔을 때 숙소생활을 동영상으로 찍었다. 이 영상에서 드러난 그의 식성은 만만치 않았다. 다행히 곁에는 체력관리 전문가인 남편이 있었다. 김 감독은 행여 무리하다가 부상을 당할까봐 20점 이후에만 출전시키며 서서히 경기감각을 끌어올리게 했다.

IBK기업은행 김호철 감독. 스포츠동아DB



선수에게 가장 힘든 시간은 경기를 위한 체력을 다지는 때다. 산타나는 약속된 한 달간의 힘든 시기를 잘 견뎠다. 하루에 무려 4차례씩 훈련했다. 매일 오전 1시간30분씩 웨이트트레이닝을 하고 난 뒤에야 볼 훈련에 참가했다. 땀은 정직했다. 뱃살이 빠지고 몸이 근육질로 바뀌면서 장점이 조금씩 나타났다. 일단 공을 다룰 줄 알았다. 공을 보는 눈도 빼어났다. 높은 배구 IQ를 갖춘 그의 진짜 장점은 스피드와 파괴력이었다. 다만 그것을 살리기 위한 몸이 필요했다.


지난달 15일 흥국생명전에서 산타나는 잠재된 기량을 어느 정도 보여줬다. 당초 1, 2세트만 출전할 예정이었으나, 경기가 치열해지자 5세트까지 쉬지 않고 뛰며 23득점(공격성공률 43%)을 기록했다. 그가 레프트에서 활로를 열어주자 IBK기업은행의 경기력이 훨씬 살아났다. 아쉽게도 다음 페퍼저축은행전에선 몸이 무거웠고, 팀은 세트스코어 0-3으로 완패했다. 한 시즌을 꾸준히 뛸 체력이 아직은 갖춰지지 않았다는 것만 확인했다.

정상으로 몸을 만들겠다는 5라운드를 앞두고 산타나는 더욱 감량에 노력했다. 최근에는 새벽운동도 시작했다. 매일 새벽 혼자 훈련장에 나와 러닝머신을 타는 유산소운동을 마친 뒤 숙소로 돌아가 아침을 먹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외국인선수가 새벽훈련을 하는 것도 특별한 일이었다.

IBK기업은행 산타나. 스포츠동아DB



그런 노력 덕분에 마침내 정상의 몸에 접근했다. 김 감독은 “이제 2㎏만 더 빼면 좋겠다”고 했지만, 2일 도로공사전에서 드러난 산타나의 유니폼 핏은 이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산타나는 이번 시즌 가장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줬다. 26득점에 공격성공률은 무려 62.5%였다. 범실은 3개밖에 없었다. 상대 블로킹의 낮은 곳을 찾아 내리 꽂고 밀어치는 다양한 공격기술에 도로공사의 블로킹은 속수무책이었다.


다음 시즌에도 김희진을 라이트로 고정할 계획인 김 감독은 산타나가 활약할수록 새로운 고민을 해야 한다. 이제 자리를 잡은 산타나와 다음 시즌도 함께 갈 것인지, 아니면 더 좋은 누군가를 찾아야 하는지다. 이런 사실은 잘 아는 듯 산타나는 “나는 이 팀을 사랑하고 멋지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진 기술을 보여줄 수 있도록 도와준다. IBK기업은행과 오래가고 싶지만, 미래 일은 아무도 모른다. 남은 시간에 더 집중하고 싶다”고 밝혔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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