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향의 프리다·리사의 레하…“그대들에게 벌새박수를 보내는 이유” [예체능 양기자]

입력 2022-04-04 09: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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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로 만난 ‘고통의 여왕’ 프리다 칼로의 가혹한 운명
김소향의 열연 “왜 그가 최고의 배우인지 또 한번 입증”
“비바 라 비다, 인생이여 만세” 세종S씨어터에서 공연 중
많은 임사체험자들의 증언처럼 사람은 정말 죽음이 찾아오기 직전, 자신의 인생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지나가는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일까.

미국 루이빌 대학 연구진에 따르면 충분한 가능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과학적’이기까지 하다.
이 연구진은 87세의 남성이 심장마비로 사망하면서, 죽어가는 뇌의 활동을 우연히 기록하게 되었는데 심장박동이 멈춘 전후 30초간 다양한 유형의 뇌파를 발견했다.

연구진의 아즈말 젬마 박사는 “죽음에 가까워졌을 때 삶의 마지막 기억을 회상하는 것일 수 있다”고 추측했다. 이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노화신경과학 최신연구’에 게재됐다.

뮤지컬 프리다는 멕시코의 세계적인 여성화가 프리다 칼로의 삶을 다룬 작품이다.

20세기가 시작되고, 7년 후.
1907년 멕시코의 코요아킨에서 태어난 프리다 칼로는 1954년 47세의 나이로 사망하기까지 다수의 자화상을 포함한 걸작을 남겼고, 1984년 멕시코 정부는 그의 작품을 국보로 분류했다.

하지만 이러한 예술가적 성취와 영광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프리다 칼로는 ‘고통의 여왕’으로 불릴 정도로 가혹한 삶을 산 인물이었다.

여섯 살 때에는 척추성 소아마비를 앓아 아홉 달 동안이나 침대에 누워 생활해야 했다.
멕시코 최고의 명문학교인 국립예비학교에 입학하지만(전교생 2000명 중 여학생은 프리다 칼로를 포함해 35명에 불과했다) 그가 탄 버스를 전동차가 들이받는 대형 교통사고를 당해 온 몸의 뼈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1929년 둘째 부인과 이혼한 유명 예술가 디에고 리베라와 21년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결혼했지만 두 번의 유산을 겪어야 했고, 결국 자신의 여동생과 바람을 핀 디에고와 이혼. 하지만 불과 1년 뒤 재결합.

1954년 사망하기까지 프리다는 이후에도 회저병으로 발가락을 절단하고, 골수이식 수술 중 세균에 감염돼 수차례의 재수술을 받는 등 끝없는 고통, 가혹한 운명과 싸워야 했다.

그의 참담한 인생여정을 알고 나니 “47년 밖에 못 살았군”이란 생각은 “용케도 47년이나 살았구나”로 바뀌게 되었다.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고통과 괴로움의 총체를 47년이란 세월 속에 우겨넣은 ‘고통상자’와 같은 삶이다.

뮤지컬 프리다는 이런 프리다 칼로의 굴곡진 삶을 쇼의 형식으로 구성했다.
자신의 삶을 소개하는 ‘라스트 나이트 쇼’에 출연한 프리다 칼로가 3명의 크루와 함께 리허설을 진행한다는 것이 이 극의 설정.

리프라이즈를 포함한 14곡의 넘버들로 짜인 뮤지컬 프리다는 EMK뮤지컬컴퍼니의 첫 소극장 작품이다.
대본과 가사, 연출은 추정화 작가의 솜씨로 추정화 특유의 어두움이 안개처럼 자욱한 이야기들이 허수현의 음악과 함께 무대디자이너 이엄지, 영상디자이너 이수경, 의상디자이너 오유경의 손을 거쳐 눈부시도록 스타일리시한 뮤지컬로 완성됐다.

뮤지컬 프리다는 쇼의 리허설이라는 설정이지만 죽음 직전 프리다 칼로에게 찾아온 인생의 주마등, 파노라마의 경험으로 해석할 만하다.
이는 몇 개의 근거를 갖고 있는데, 그 중 하나는 프리다의 극중 의미심장한 마지막 대사.

붉은 꽃잎들이 흩날리고 낙하하는 빛의 웅덩이 속에서 고통과 환희가 뒤섞인 몸부림과 같은 프리다의 독무를 마친 프리다는 “전 외출을 떠날 겁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예요. 괴로워서가 아니라, 그만큼 충분했으니까요”라는 대사를 객석에 던진다.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을 떠올리게 하는 프리다의 마지막 대사는 죽음 너머의 세상으로 외출을 떠나는 그의 최후진술처럼 강인하게 마음을 울린다.
극 중 극의 형식을 띤 이 쇼의 제목 ‘라스트 나이트 쇼’ 역시 그의 죽음과 새로운 시작을 예감하게 한다.


뮤지컬 프리다는 추정화 작가의 작품답게 풍부한 상징적 키워드를 제공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심장.
심장은 피와 강렬한 레드로 이 작품을 강하게 지지하고 있다.

반어적 느낌마저 안겨주는 프리다 칼로 최후의 작품 ‘비바 라 비다(Viva la vida, 인생이여 만세, 1954)’는 핏빛처럼 붉은 수박에 ‘비바 라 비다’를 새겨 넣었다.
인생의 위기 때마다 사이렌이 섬뜩하고 음울하게 울릴 때마다 무대는 조명에 의해 붉게 물든다.

이 작품의 명장면인 독무신에서 떨어지는 붉은 꽃잎은 죽음을 향해 산산이 흩뿌려지는 혈액 같다.

프리다 칼로의 작품에도 종종 등장하는 벌새(허밍버드)도 붙잡아야 할 대상.
14세기 멕시코 아즈텍 문명을 일으켰던 인디오들은 벌새를 ‘죽은 전사들이 환생한 새’라고 믿었다고 한다.

하지만 세상에서는 ‘가장 작은 새’로 알려져 있다.
성체가 되어도 몸 길이가 5cm 남짓한 이 작은 새에게는 매우 인상적인 능력이 있는데, 그것은 1초에 90번이나 움직일 수 있는 빠른 날갯짓이다.

운명과 세상을 대상으로 가혹하고 고통스러운 투쟁을 벌여야 했던 프리다를 상징하는 듯한 벌새는 이명처럼 울리는 사이렌의 대척점에 서 있다.

뮤지컬 프리다에서 유일한 실제 인물인 프리다 칼로는 최정원과 김소향이 맡고 있다.
쇼의 진행자와 디에고 리베라의 두 인물을 연기하는 레플레하는 전수미와 리사.
쇼의 크루들인 데스티노와 메모리아(운명과 기억이라는 두 캐릭터의 이름도 상징적이다)는 각각 임정희 정영아와 최서연 허혜진 황우림이 연기한다.
세종문화회관의 공연장 중 가장 규모가 작지만 독특한 매력을 지닌 S씨어터에서 공연 중.

이번에 관람한 뮤지컬 프리다는 김소향-리사-임정희-최서연 조합이었다.
김소향이 출연한 작품은 다수 보았던 터라 내심 어느 정도 그의 연기를 마스터했다고(적어도 예상 또는 예측할 수 있는)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작품에서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당하고 말았다.

크루들과 군무를 추던 김소향이 몇 번이나 멈칫하다 결국 리허설을 중단하는 장면은 이 극에서 프리다의 가장 인간적인 면을 묘사하고 있다.
이 장면에서 보여준 김소향의 숨 막히는 디테일은 왜 그가 요즘 한국 뮤지컬을 대표하는 최고의 배우 중 한 명인지를 강력하게 입증한다.

떨어지는 꽃잎 속에서 보여준 김소향의 독무는 ‘충격’이라는 단어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빌리 엘리어트의 명장면과 비견될 만한 김소향의 독무에는 이 작품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음악, 조명마저 김소향의 움직임을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시간이 멈춰서고, 보는 이의 심장마저 뛰기를 거부한 순간.
이 작품의 모든 것이 이 한 장면에 쏟아 부어졌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레플레하는 3명의 크루 중 가장 비중이 크다.
디에고 리베라(레플레하가 연기한다)가 프리다를 유혹하는 장면에서 리사는 그 동안 좀처럼 보여주지 않았던 스캣 실력을 발휘한다.
이 장면을 또 다른 캐스트인 전수미는 탭댄스로 표현했다고 하는데, 이 작품을 재관람한다면 이 연기를 보기 위함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리사의 쇼 진행 연기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대사 톤, 표정, 몸짓, 프리다와 관객을 향한 적절한 시선 배분까지 리사의 연기는 해외 유명 토크쇼 진행자를 그대로 모사한 듯했다.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한 인물답게 프리다의 삶은 물론 그의 작품들을 고려한 해석 또한 돋보였다.

“나의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
(프리다 칼로의 일기 마지막 글 중에서)”

리허설은 본 공연을 앞두고 행해지는 최후의 무대.
리허설은 끝났다.
진짜 공연은 이제 시작이다. 비바 라 비다!

이 멋진 작품을 혼신을 다해 무대에서 보여준 4명의 배우들에게, 1초 90회의 ‘벌새박수’를 보내고 싶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 | EMK뮤지컬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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