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형 성남 감독(왼쪽)과 그의 아들 포항 이호재. 스포츠동아DB
포항에는 김기동 감독과 아들 준호가 지도자-선수의 관계를 맺고 있을 뿐 아니라 이기형 성남 감독의 아들 호재가 활약 중이다. 성남에는 신태용 인도네시아대표팀 감독의 아들 재원이 뛰고 있다. 3명 모두 팀의 에이스로 분류하기에는 2% 부족하나, 착실히 성장하며 ‘내일이 더 기대되는’ 차세대 자원이다.
패배는 탈락인 단판 토너먼트, 양 팀 벤치는 과감했다. 포항은 이호재와 김준호를, 성남은 신재원을 선발로 투입해 서로를 겨냥했다. 그리고 90분 뒤 명암은 엇갈렸다. 포항의 3-0 완승. 그 중 가장 빛을 발한 이는 멀티골을 몰아치며 ‘불효자’가 된 이호재였다.
경기 후 공식 인터뷰가 진행된 기자실의 공기는 조금 묘했다. 김 감독은 “상대 입장에서 (패배는) 아쉽겠으나 아들의 득점으로 졌으니 한편으로는 다행이란 생각을 하지 않겠느냐”는 위로를 건넸고, 이 감독은 “아들의 활약이 기쁘긴 했는데…”라며 말꼬리를 흐린 뒤 “이겨도, 져도 감정은 복잡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감독이 거북해했던 ‘부자 대결’은 앞으로는 더 흔해질 것 같다. 요즘 K리그에는 축구인의 아들들이 여럿 눈에 띈다. FC서울에도 이을용 용인축구센터 총감독의 아들 태석이 폭풍 성장하고 있고, 2023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에 출전 중인 골키퍼(GK) 김준홍(김천 상무)은 김이섭 인천 유나이티드 GK코치의 아들이다.
당연히 아빠 감독들은 대개 칭찬에 인색하다. 좋은 기량보다는 부족함이 더 눈에 들어온다. 힘겨운 길을 함께 걷는 자식이기에 더 냉정하고 엄격해진다. 단점을 더 꼬집던 이 감독이 격려의 문자를 아들에게 보낸 것도 ‘부자 더비’ 직전이었다.
물론 이 세상 부모들의 마음은 똑같다. 가슴으로는 조용히 격려하고 응원한다. 이 감독은 “아들은 (아빠의 존재로) 더 신경 쓰이고, 눈치도 많이 봐야 했을 것이다. 이제는 프로에 있으니 더는 (아빠를) 염두에 두지 않아도 될 것 같다”며 “축구는 개인 능력이 우선이다. 자신감을 갖고 잘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 감독은 “아들의 학창 시절 지도자들에게 ‘신경 써달라’는 인사조차 할 수 없었다. 정말 불편했다”면서도 “(준호는) 많이 부족하고 더 성장해야 하나 지금 축구인 2세들이 좋은 모습을 보이면 다른 이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아들의 솔직한 감정은 어땠을까. 이날 이호재는 MZ세대답게 골 세리머니도 화끈했고, 표현도 거침없었다. “엄마는 아들을 더 응원했을 것이다. 더 잘해서 아빠의 인정을 받고 싶다. 이런 경기가 부담스럽지만 자신감이 생겼다. 경기 후 아빠의 뒷모습을 봤는데,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승자가 있으면 패자도 있는 법이다. 성남이 승격해 다시 만나도 내가 골을 넣고 이기는 경기를 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