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이승엽 감독(왼쪽)·박흥식 수석코치. 사진제공 | 두산 베어스
그랬던 그가 2023시즌 후 두산 유니폼을 입기로 결심한 이유는 분명했다. 애초부터 두산의 육성 시스템을 인상 깊게 지켜봤던 터라 “지도자 인생의 마지막은 두산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컸다. 그뿐 아니라 삼성 시절(1996~2003년) 사제관계였던 이승엽 두산 감독(48)에게도 어떻게든 힘이 되고 싶었다. 이 감독의 요청을 받은 만큼 더 이상 고민할 이유도 없었다. 박 코치는 두산과 계약한 뒤 “내 노하우와 경험을 어떻게든 활용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2023시즌 두산 사령탑을 맡으면서 지도자 커리어를 시작했다. 선수 시절 경력이 워낙 화려하지만, 지도자로선 이제 막 첫발을 뗐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박 코치의 존재가 분명 힘이 될 수 있다. 실제로 박 코치는 젊은 선수들과도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해법을 찾는 데 능하다. 수직적 관계에서 벗어나 선수들과 코칭스태프 사이의 가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적임자라는 분석이다. 두산이 박 코치에게 수석코치 보직을 맡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감독은 선수 시절 박 코치를 무척 따랐다. 지금까지 고마움을 잊지 못하는 과거의 일화도 있다. 2000년대 초 이 감독은 타격폼을 바꾸라는 코칭스태프의 지시를 받고 고민에 빠졌다. 입단 후 첫 5년간(1995~1999년) 146홈런을 날리며 자신의 타격폼을 확실히 정립했던 터라 고민은 깊을 수밖에 없었다.
이 감독은 “하루는 박 코치님이 배팅볼을 던져주는데, 타격훈련에 전력을 다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고 털어놓았다. 이튿날 이 감독 앞으로 봉투 하나가 전달됐다. 보너스인 줄 알았지만 봉투를 연 그는 깜짝 놀랐다. 박 코치가 직접 쓴 편지였다. “쇠도 두드려야 더 단단해진다. 너처럼 큰 선수는 그런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진심에 이 감독은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이후 2003년 KBO리그 단일시즌 최다인 56홈런을 쳐내는 등 매년 눈부신 활약을 이어가며 일본프로야구(NPB) 무대까지 밟을 수 있었다.
박 코치는 이제 이 감독의 참모로서 모든 힘을 쏟을 참이다. 그는 “감독님의 생각대로, 선수들이 즐겁고 행복하게 야구할 수 있도록 돕겠다”며 “판단이 필요할 때는 최대한 냉철하고 빠르게 할 수 있도록 잘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