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임생 KFA 기술총괄이사가 8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브리핑을 열어 홍명보 울산 감독을 국가대표팀 사령탑으로 내정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제공 | 대한축구협회
“(정몽규) 회장님은 제게 모든 기술파트에 대한 권한과 책임을 주셨다. ‘당신이 기술이사다. 모든 결정을 다 하라’고 하셨다.”
“후보 3명에 대한 결정은 내가 했다. (홍명보 감독) 선택을 (회장에게) 말씀드리지 않았다.”
홍명보 울산 HD 감독(55)을 축구국가대표팀 차기 사령탑으로 결정한 대한축구협회(KFA) 이임생 기술발전위원장 겸 기술총괄이사(테크니컬 디렉터)가 8일 취재진 브리핑에서 남긴 발언이다.
최종 후보 4명을 결정한 뒤 유럽 출장 일정을 계획하다가 사퇴 의사를 밝힌 정해성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장을 대신해 이 이사는 ‘포스트 클린스만’ 선임작업을 진행했고, 다비트 바그너 감독(독일)과 거스 포옛 감독(우루과이)을 대면 인터뷰한 뒤 5일 늦은 밤 만난 홍 감독을 선택했다.
유감스럽게도 모든 상황이 규정 위반이다. KFA 국가대표팀 운영 규정에 따르면 남녀 A대표팀은 전력강화위원회의 몫이고, 기술발전위원회는 17세 이하 연령별 대표팀에만 자문 및 조언을 할 수 있다. 내부 법률 자문을 거쳤다지만 규정 어디에도 기술발전위원장이나 기술총괄이사가 A대표팀 감독 선임에 개입할 수 있다는 근거가 없다.
이 이사는 ‘회장님이 주신 권한과 책임’을 이유로 댔는데, 정 회장 또한 규정을 바꿔가면서 큰 권한을 줄 자격이 없다. ‘전력강화위원장 대행’ 자격 부여에 대한 논의조차 이뤄진 정황도 없다. 이 이사 자신도 ‘상근직 기술총괄이사’가 됐을 때 이사회를 거쳤다.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독일)을 지난해 선임했을 때처럼 수뇌부의 입김이 작용하는 ‘톱다운 방식’이 다시금 작동한 것이다.
이 이사는 홍 감독의 선임을 홀로 결정했다고 했다. ‘전력강화위원장 자격’이 있다면 그렇게 할 수 있다. 다만 후보들을 면담한 결과는 전력강화위원들과 공유해야 한다. 그는 마지막 결정만 맡았어야 했다. 정보 유출 우려가 ‘나홀로 결정’의 이유가 될 순 없다. 과거 KFA 부회장으로 활동한 이영표 해설위원이 “당분간 축구인들은 행정을 해선 안 된다”고 꼬집은 배경이다.
여기서 KFA 조직의 구조적 문제도 확인할 수 있다. 전력강화위원회를 패싱하고, 회장 보고까지 생략한 이 이사는 지나치게 많은 권한을 쥐고 있었다. 드러난 직함만 기술발전위원장, 기술총괄이사 이외에 근거 없는 전력강화위원장(대행)까지 3가지다.
역할은 또 있다. 좋은 지도자들을 육성하는 임무를 맡은 지도자 강사로도 이름을 올렸다. 그를 포함한 6명의 리스트를 보면 이 이사를 ‘수석강사’로 봐도 무방하다. 오랜 시간 활동한 김남표, 최승범 등 전문성을 갖춘 KFA 전임강사들이 ‘계약만료’를 이유로 떠난 뒤 강사진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모두가 해당하는 것은 아니나, 제대로 자격을 갖췄는지 파악하기 어려운 인물들도 포함돼 의문을 자아낸다.
‘권력집중화’는 불필요한 오해를 낳는 법이다. 정상적 조직이라면 특정 인물에게 권한을 몰아주지 않는다. 큰 틀은 같아도 파트별 책임자가 달라야 견제도 하고, 협업도 하며 공동 발전을 꾀할 수 있다. 끊임없이 발전하고 변화하는 축구기술처럼 전문성이 강한 분야라면 더욱 그렇다. 권한과 책임을 고루 나눠야 한다는 얘기다.
축구인들은 “기술 독점 구조가 말이 안 된다. 특정인이 유소년을 키우고 지도자를 만들면서 좋은 연령별 대표팀과 출중한 A대표팀을 구성하는 것을 누가 이해하나? 홀로 권한을 쥐면 뒷말 역시 많아진다. 이 이사가 아니더라도 각 분야 전문가들은 많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