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가 2026 베이징 국제 모터쇼’에서 ‘아이오닉 V’를 세계 최초로 공개했다. 중국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에 최적화된 상품성을 갖춘 아이오닉 브랜드의 첫번째 중국 전략형 모델이다. 사진제공|현대차

현대차가 2026 베이징 국제 모터쇼’에서 ‘아이오닉 V’를 세계 최초로 공개했다. 중국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에 최적화된 상품성을 갖춘 아이오닉 브랜드의 첫번째 중국 전략형 모델이다. 사진제공|현대차


[스포츠동아 원성열 기자]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패권이 단순한 전동화를 넘어 인공지능(AI)과 로봇 공학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피지컬 AI’ 시대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 24일 중국 베이징 순의구 ‘중국국제전람중심(NCIEC)’에서 막을 올린 ‘2026 베이징 국제 모터쇼(오토 차이나 2026, 4월 24일~5월 3일)’는 이러한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 속에서 세계 시장의 주도권을 선점하려는 완성차 기업들의 사활을 건 기술력이 충돌하는 현장이었다. 역대 최대인 38만㎡ 규모(축구장 약 50개 크기)의 부지에 1451대의 차량이 집결했으며, 181대에 달하는 월드 프리미어 모델이 쏟아져 나와 관람객의 시선을 압도했다. 특히 이번 모터쇼는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를 넘어 AI가 스스로 판단하고 운전자와 교감하는 지능형 모빌리티가 완벽한 주류로 부상했음을 알리는 서막과도 같았다. 이러한 거센 도전 속에서 현대자동차는 중국 전략형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 V(IONIQ V)’를 세계 최초로 공개하며 시장 재탈환을 위한 정면 승부에 나섰다.

BYD가 ‘-30℃ 저온 충전’ 기술을 시연하고 있다. 원성열 기자 sereno@donga.com

BYD가 ‘-30℃ 저온 충전’ 기술을 시연하고 있다. 원성열 기자 sereno@donga.com

● AI와 생태계가 주도하는 기술 전쟁
이번 베이징 모터쇼의 가장 큰 특징은 자동차 제조사와 빅테크 기업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기술 생태계 간의 전쟁’이 본격화됐다는 점이다. 과거 가성비를 앞세웠던 중국 토종 브랜드들은 이제 에이전틱 AI(Agentic AI)를 핵심 경쟁력으로 내세우며 글로벌 기술 패권을 강하게 위협하고 있다. 이번 모터쇼 현장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단연 중국 배터리 및 전기차 회사들이 선보인 ‘극한 환경 시연’이었다. 전시장 E홀 한복판에는 내부 온도가 영하 33.6도까지 내려간 투명 유리벽 냉동고가 등장해 시각적 충격을 안겼다. BYD는 이 냉동 챔버 안에 대형 SUV ‘바오 3’를 세워두고 영하 30도의 혹한에서도 배터리가 급속 충전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며 기술적 자신감을 과시했다. 전기차의 고질적 약점인 저온 성능 저하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했음을 입증한 것이다. 세계 1위 배터리 업체 CATL 역시 ‘션싱 3세대’ 배터리를 공개하며 응수했다. CATL은 상온에서 단 6분 만에 완충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영하 30도의 극한 환경에서도 단 9분 만에 20%에서 98%까지 충전할 수 있는 압도적인 성능을 선보였다. 중국 브랜드들이 더 이상 저가 물량 공세에 머물지 않고, ‘초고속·저온 충전’ 영역에서 독보적인 기술 장벽을 쌓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대목이다. 샤오미와 화웨이 등 테크 기업들 역시 자동차를 스마트폰과 가전이 연결된 거대한 커넥티드 생태계의 중심으로 설정하며 전시장 분위기를 주도했다. 특히 완성차 업체와 핵심 부품사가 동일한 전시관을 사용하는 파격적인 구성은 산업의 주도권이 하드웨어 제조에서 소프트웨어와 데이터 중심으로 이동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현대차, BMW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 역시 중국 자율주행 스타트업 모멘타(Momenta)와 손잡고 현지 최적화 모델을 개발하는 등 ‘In China’ 전략을 한층 강화하는 추세다.

아이오닉 브랜드의 첫번째 중국 전략형 모델 ‘아이오닉 V’. 원성열 기자 sereno@donga.com

아이오닉 브랜드의 첫번째 중국 전략형 모델 ‘아이오닉 V’. 원성열 기자 sereno@donga.com

●‘아이오닉 V’, 현지화로 무장한 현대차의 반격
이러한 중국 기업들의 거센 기술 파고에 맞서 현대차가 던진 승부수는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가장 중국적인’ 아이오닉 V다. 아이오닉 V는 현대차의 새로운 디자인 언어인 ‘디 오리진(The Origin)’을 적용했으며, 중국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수퍼카를 연상시키는 강렬하고 스포티한 디자인으로 눈길을 끌었다. 전장 4900mm, 축간거리 2900mm의 웅장한 차체와, 1019mm에 달하는 2열 레그룸은 동급 최고 수준의 거주성을 통해 뒷좌석 편의를 선호하는 중국 소비자들의 니즈를 정밀하게 타격했다. 실내에는 27인치 4K 대형 디스플레이와 퀄컴 스냅드래곤 8295 칩셋을 탑재해 거대언어모델(LLM) 기반의 스마트 AI 비서와 매끄러운 소통이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기술적으로는 CATL과 협력한 배터리를 통해 600km 이상의 주행거리를 확보했으며, 현지 자율주행 전문 기업 모멘타(Momenta)와 공동 개발한 ADAS 기능을 적용해 중국 도로 환경에 최적화된 주행 경험을 제공한다.

●1조 5500억 원 투입해 대반격
현대차의 이번 행보는 단순한 신차 출시를 넘어 중국 시장에 대한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현대차는 합자 파트너인 베이징자동차그룹(BAIC)과 함께 베이징현대에 총 80억 위안(한화 약 1조 5500억 원)을 공동 투자하며 혁신적인 산업 생태계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향후 5년간 20종의 신규 모델을 중국 시장에 투입해 제품 라인업을 대폭 확대하고 연간 50만 대 판매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했다. 내년 상반기에는 신규 전동화 SUV 모델을 추가로 선보이고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 라인업도 중대형급까지 확장할 계획이다. 호세 무뇨스 대표이사 사장은 “가장 빠른 개발 속도와 고도화된 혁신 생태계를 갖춘 중국은 현대차에게 필수적인 핵심 시장”이라며 “In China, For China 전략을 바탕으로 중국에서 모빌리티의 미래를 새롭게 정의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대차의 이번 행보는 독자 기술 고집이라는 껍질을 깨고 중국의 혁신 DNA를 수용해 ‘현지화’의 개념을 재정의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베이징에서 시작된 이 파격적인 ‘기술적 동맹’이 현대차를 넘어 글로벌 모빌리티 지형을 어떻게 재편할지 전 세계 자동차 산업이 주목하고 있다.


원성열 기자 seren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