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서방님의못말리는복권사랑

입력 2008-05-0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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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도시에서 산골짝으로 시집온 지 23년째 접어든 중견 아줌마입니다. 도시에서 아가씨로 살 때와는 달리, 이제는 제법 농사에 대해 어느 정도 경험도 있고, 노하우도 있습니다. 저는 남편과 하우스에서 포도를 재배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하루는 대구에 사는 형님한테서 전화가 온 겁니다. 얼른 받아봤더니, “동서! 요새 마이 바쁘제?”하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냐고 여쭤 더니, 대구 근처에 살고 있는 시누이 남편이 병원에 입원했다는 겁니다.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치셨다고 했습니다. 심각하진 않지만 지금 병실이 없어 중환자실에 누워있다고 그랬습니다. 저는 주말이라고 해도 낮엔 도무지 시간이 나질 않아서 저녁 때 따로 가기로 하고 일단 전화를 끊었습니다. 남편한테도 말을 했는데, 하우스에 일손이 모자라서 둘 다 가기는 어렵다고 저 혼자 다녀오라고 합니다. 그래서 상주에서 학교 다니는 아들 녀석을 대구 터미널까지 데려다 주고, 저 혼자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터미널 들렀다가 다시 병원으로 가려고 하니 차가 엄청 막혔습니다. 하지만 오랜만에 농사일을 잊고 나온 길이라 그런지, 길가에 꽃들 핀 것도 눈에 들어오고, 날씨도 화창해서 길 막히는 게 별로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어느새 차는 병원 입구에 도착하게 되었고, 저녁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시누이에게 전화해서 병실 호수를 물어 찾아갔는데, 마침 시누랑 고모부랑 둘만 앉아 계셨습니다. 아들 며느리하고 딸 사위가 와 있는데, 저녁 먹고 오라고 내려 보내서 지금은 둘만 계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고무부는 제가 왔는데, 인사도 대충하고 텔레비전에서 눈을 못 떼고 계시는 겁니다. 앞에는 딸기 쟁반을 받쳐 들고, 눈은 텔레비전을 향해 있습니다. 마치 병실에 있는 분이 아니라 거실 소파에 앉아있는 분 같았습니다. ‘뭘 그렇게 열심히 보고 계시나’ 했더니, 복권추첨을 보고 계신 겁니다. 어제 꿈자리가 좋다고, 아침부터 며느리 시켜서 복권 사오게 하시더니, 하루 종일 복권추첨만 기다리고 계셨다고 했습니다. 시누이는 “의사선생님이 움직이면 안 된다 카는데, 저래 일라 앉아서, 아침부터 메늘아한테 짜증내며 복권 사오라 카더라” 하면서 고모부를 흘겨보시는데, 제가 그랬습니다. “고모요∼ 너무 그러지 마소. 혹시 아능교? 1등이라도 덜컥 걸릴지∼ 고모부! 이따 당첨되면 지한테 콩고물 좀 주이소∼” 했더니 다들 웃으면서 ‘나는 얼마, 누구는 얼마’ 하면서 모두가 꿈에 부풀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그냥 꽝! 그래도 모두에게 웃고 떠드는 재미를 줬던 복권추첨이었습니다. 우리 고모부는 원래 복권 잘 사기로 유명한 분인데, 복권당첨 될 생각하시기 전에 얼른 몸 나을 생각부터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혼자 다녀온 문병길이지만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농사의 피곤도 다 가셨습니다. “고모부요∼ 얼른 나아서 고모캉 고모부캉 오래 오래 재미나게 사시소~” 경북 군위 | 유정화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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