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Black&White]원성진의화려한부활

입력 2008-06-27 00: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원성진 9단이 한중 천원전에서 구리 9단을 2-0으로 완파하고 우승했다는 소식에 ‘당연하지’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구리가 누굽니까? 벌써 수년째 중국랭킹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대륙의 기룡(棋龍)’이 아닙니까? 이름은 좀 ‘구리구리’하지만 실력 하나만큼은 이세돌과 함께 당대 최강이라고 손꼽히는 인물입니다. 원성진이 넘기엔, 그것도 2-0이라는 퍼펙트한 내용으로 넘어서기엔 솔직히 벅찬 상대였지요. 사실 이번 대결이 성사되기 전까지만 해도 원성진은 구리에게 3전 전패를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1985년생 원성진은 알려져 있다시피 박영훈 · 최철한과 함께 동갑내기 ‘송아지삼총사’의 일원입니다. 사실 프로 입단 이후 가장 먼저 두각을 나타냈던 사람은 원성진이었지요. 물론 이후 가장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사람도 원성진이었습니다. 박영훈이 후지쯔배에서 우승하고, 최철한이 ‘이창호 킬러’로 급부상하며 국수전과 기성전을 연달아 따냈을 때에도 원성진은 여전히 우승과는 손이 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원펀치는 새가슴’이라는 아픈 말이 돌기도 했지요. 원성진이 가장 주목을 받았던 해는 2003년이었습니다. 이 해에 원성진은 특히 세계대회에서 이름을 냈습니다. LG배 4강, 삼성화재배 16강,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에는 한국대표로 나가 3연승을 거뒀지요. 이후에도 랭킹 10위권 안팎을 넘나들며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했지만 타이틀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원성진은 갔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지요. 후배들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올라오고 있었고, 그처럼 잘 나가던 최철한도 슬슬 쇠락의 길을 걸으니 송아지삼총사는 박영훈 홀로 남아 쓸쓸히 명성을 이어가는가 싶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5월 원성진은 비씨카드배 신인왕전에서 우승했습니다. 사람들은 ‘원성진이 무슨 신인이냐?’며 웃었습니다. 입단 10년차까지 출전할 수 있는 이 대회에서의 우승은 신인딱지와 함께 불운 · 부진과의 영원한 안녕을 상징하는 원성진의 ‘졸업작품’이었습니다. 12월 제12회 박카스배 천원전에서 원성진이 우승했을 때 비로소 사람들은 ‘뭔가 있구나’하는 감을 잡았습니다. 원성진은 ‘신인대회 우승 → 국내 메이저대회 우승 → 세계대회 우승’이라는 선배 정상급 기사들이 밟은 ‘정석 수순’을 또박또박 밟아나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비씨카드배 신인왕전에 이어 천원전 우승. 그리고 비록 미니대회지만 엄연히 국제대회인 한중천원전에서 보란 듯이 우승하며 ‘원펀치’의 완벽한 부활을 선언했습니다. 원성진은 공부하는 기사입니다. 그리고 ‘송아지’답게 우보천리(牛步千里)의 자세로 나아가는 기사입니다. 어느새 송아지에서 부쩍 황소로 성장해버린 원성진 9단. 차고 넘치도록 ‘대기’한 끝에 ‘만성’만을 남겨둔 원성진 9단. 뜬금없지만, 역시 소는 ‘한우’가 최고입니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