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길거리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원래는 호떡 장사를 했는데, 지난달부터 날씨가 더워져서 생과일주스로 바꿔서 팔고 있습니다. 요즘은 비가 와서 그런지 생과일주스를 먹겠다고 오는 손님들이 눈에 띄게 줄고 있어 걱정이 많답니다.
얼마 전에는 하도 손님이 없어서 일찌감치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돌아오는 길에 역시 노점시장에 들려 무슨 찬거리가 없나 해서 장을 좀 봤습니다. 그 때 제 눈에 포착된 것이 바로 감자였습니다. 그리고 생각나는 것이 바로 감자 부침개! 저는 감자 3000원어치를 사고, 부추 1000원어치를 사서,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집으로 향했습니다.
남편에게 전화해서 “여보! 난데. 오늘 저녁에 나하고 막걸리에 부침개 한 장 먹자. 내가 감자 부침개 맛나게 부쳐놓을 테니까 빈 입으로 일찍 와야 해!”라고 했더니 남편이 조금 머뭇거리면서 “어? 오늘? 오늘은 동료들하고 당구장 가기로 했는데. 난 거기서 간단히 분식 시켜 먹을 테니 당신하고 애들은 오늘 저녁 먹고 일찍 자” 라고 말했습니다.
모처럼 온 가족 머리 맞대고 앉아 구수한 들기름에 부쳐낸 전 한 장 나눠먹으려고 했더니, 요즘 당구에 푹 빠진 남편은 늦는다고 했습니다.
그날따라 몸도 더 찌뿌드드한 게 기분이 영 엉망이었습니다. 그렇게 힘없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신발장 앞에 누런 박스 하나가 놓여 있는 게 눈에 띄었습니다. ‘저건 또 뭐야?’하고 봤더니, 또박또박 성글게 써놓은 올케언니의 글씨가 눈에 띄었습니다.
멀리 필리핀에서 시집와서 초등학교 일 이 학년 수준으로 한국말을 쓰고 읽을 줄 아는 우리 올케언니! 그 걸 보는 순간, 남편에 대한 미움과 야속함이 싹 사라졌습니다. 박스를 열어봤더니 그 안에는 흙이 잔뜩 묻어있는 감자가 가득 담겨있었습니다. 삐뚤빼뚤한 약간의 틀린 글씨로 언니가 쓴 쪽지가 있었습니다.
“아카씨! 이 감자 먹고 힘내서 돈 많이 벌어서 부자되세요. 오빠랑 나랑 엄마랑 감자 캐면서 땀 많이 흘렸지만 맛있게 먹고 행복하게 웃어줄 아카씨 생각하니까 하나도 힘 안 들었어. 크러니까 감자 맛있게 먹고 주스 많이많이 팔아서 부자되세요 아카씨를 사랑하는 올케언니 씀.”
짧지만 언니의 마음이 절실하게 녹아있는 편지를 읽는 순간 눈앞이 흐려졌습니다. 속으로, ‘감자전에 막걸리 한 사발 마시고 싶었던 내 마음을 어쩜 이렇게 잘 알았을까? 이럴 줄 알았으면 3000원이나 주고 감자 안 사오는 건데’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감자상자를 집에 들여놓고, 저는 너무 고마운 생각에 친정집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뚜…뚜…뚜… 세 번의 신호음이 들리고 올케 언니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여포쎄요? 우리 집입니다∼∼” 저는 언니의 말에 너무 웃겨서 “알거든요∼ 거기 언니네 집 인 거∼” 이러면서 막 웃었더니, 올케언니가 “누구? 아카씨세요?” 하면서 같이 웃어주었답니다. 그렇게 수화기 너머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저는 감자를 정성껏 캐서 보내준 언니에게 고맙다고 진심 어린 마음을 전했습니다.
먼 곳에서 이곳까지 시집와 친정 농사일 다 맡아서 하고, 몸이 불편한 친정엄마를 공경하며 사는 올케가 전 늘 고마웠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고향의 향기가 가득 베인 감자를 깨끗하게 씻어 한 냄비 푸지게 삶아놓았습니다. 그리곤 배가 부를 때까지 그 감자를 다 먹었습니다.
땅거미가 내려앉은 창밖엔 여전히 간간이 비가 내리고, 집안엔 구수한 감자 삶은 냄새가 퍼져있고, 아직 애들도 집에 돌아오지 않아 모처럼 여유로운 그 저녁시간을 저는 올케언니 생각하며 참 행복하게 보냈답니다.
그날따라 친구처럼 따뜻한 올케언니가 유난히 고맙고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언니∼ 고마워요. 언니가 보내준 감자 맛나게 먹고 힘내서, 돈 많이 벌어서 꼭 부∼우자 될게요.”
전북 전주|김미정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