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저녁 반찬을 사러 시장에 나갔는데, 슈퍼 한 귀퉁이 유리상자 안에 ‘센베이’ 라고 불렀던 부채모양의 과자가 팔리고 있었습니다.
그것 말고도 생강 맛 나는 돌돌 말린 하얀 과자도 있고, 딱딱한 강정도 있었습니다. 팔 때 무게를 달아 팔아야 하니까 유리상자 위에 저울도 하나 올려져 있었습니다. 그걸 보는데, 왜 그렇게 아버지 생각이 나는지…
이미 16년 전에 돌아가신 저희 아버지 생각에 한참을 서서 물끄러미 바라보다, 한 근을 사 가지고 집에 왔습니다. 저희 돌아가신 아버지는 이미 40대에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고 계셔서 바깥일은 전혀 못 하시고 항상 집에만 계셨습니다.
한창 일하셔야 될 아버지가 집에 계시니까 어쩔 수 없이 저희 어머니 혼자 농사를 지으시고, 시장에 나가 채소와 곡식을 파셨습니다.
엄마 혼자 바깥일을 맡아하게 되자, 아버지는 그게 미안하셨던지 집에서 집안일도 조금씩 하시고, 엄마가 팔아야 되는 채소와 곡식을 정리해주시곤 하셨습니다. 그런데 저희 부모님은 참 금슬이 좋으셨던 것 같습니다. 엄마도, 집에 하루 종일 계시면서 술도 담배도 하지 않는 아버지 생각을 하며 항상 그 ‘센베이’ 과자를 사 가지고 들어오시곤 하셨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그 과자를 드실 때마다 “막내야∼ 이리 오너라∼” 하고 같이 먹자고 하셨습니다. 누런 종이봉투에 담긴 부채모양의 과자를 꺼내, 김이 많은 쪽을 찾아 바삭 깨물 때, 입속 가득 밀려왔던 짭조름하고 달콤했던 맛! 그 걸 생각하면 지금도 입안 가득 침이 고입니다.
엄마 눈치 때문에 하나 이상은 먹지 못 했지만, 그래서 더 맛있고 달콤했던 과자였습니다. 어머니가 과자를 사 오지 못하는 날도 있었는데, 그 때는 부엌 한쪽 끝에 매달려 있던 북어를 구워 먹기도 했습니다.
아버지가 “막내야∼ 한 마리 구워 와라∼” 하시면서 나무꼬챙이에 끼워져 있는 여러 마리의 북어 중 한 마리를 빼와서 망치로 두들겨 연탄불에 구웠습니다. 그리고 쟁반에 담아 아버지께 드리면, 아버지는 쭉쭉 찢어 제 입에도 하나 넣어주셨습니다.
샅 바느질 하고 있는 어머니께도 한쪽 입에 넣어주셨습니다.
그러면 엄마는 부끄러운 듯 아버지가 주시는 북어를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어 드셨습니다. 비 오는 날이면 밖에 일을 안 나가시는 엄마가 아버지 좋아하시는 팥 칼국수를 해주시기도 했습니다.
콩을 볶아서 나중에 간식으로 먹을 수 있게 만들어 놓기도 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저희 엄마는 편찮으신 아버지가 외출도 못 하시고 계속 집에 계시는 걸 늘 안쓰러워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간식거리라도 잘 챙겨주시려고 늘 이것저것 먹을 걸 만들어 두셨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또 아버지대로 본인 대신 고생하는 엄마께 늘 미안해하시며 거동 불편한 몸으로 도울 수 있는 건 도와주셨습니다. 서로를 위했던 그 마음! 그게 부부의 사랑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사실 지금 되돌아 봐도 저희 부모님 싸우신 모습은 한번도 못 본 것 같습니다.
오남매 중에 막내였기 때문에 아버지 돌아가실 때까지 제가 아버지 곁에 있었는데, 저희 부모님은 늘 다정한 모습으로 지내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남편과 부부싸움 할 때면, 저도 모르게 저희 부모님 생각을 하며 반성을 합니다.
지금은 돌아가셔서 볼 수 없는 아버지! 하지만 제 가슴속엔 늘 아버지가 살아 계십니다. 아버지가 제 입에 넣어주셨던 간식들을 볼 때마다 문득 문득 아버지 생각에 가슴이 저려오곤 합니다.
서울 동작 | 성정연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