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처 못 다 쓴 이야기 ②
살다보면 인연도 있고, ‘악연’도 있기 마련이다.기자란 직업은 어찌 보면 사람 상대가 거의 전부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한 해를 마감하며 인연과 악연 가운데 어떤 경우가 더 많았는지 곰곰이 세어 보면서 스스로 ‘잘 살았다 혹은 잘못 살았다’를 평가하는 버릇이 생겼다.
늘 취재원에게 좋은 기사만 쓸 수 없다는 직업적 숙명은 ‘필연적’으로 악연을 만들어낸다. 10년째 기자 생활을 하며 나름 노하우란, 결국 한때 악연을 시간이 흘러 좋은 인연으로 돌려놓는 게 아닐까 싶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면서 어제도 동지였던 이들보다 더 끈끈해지는 일이 경험상 더러 있었다. 그것은 기자이기에 앞서 한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하나의 의미이자 또한 묘미이기도 했다.
인연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사연은 지난 해 유명을 달리 한 고 최진실을 이야기하고자 함이다. 최진실과의 관계를 한해를 마무리 짓는 이 글에 풀어내는 이유는, 글의 제목대로 ‘미처 못 다한 이야기’였을 뿐더러 실은 ‘차마 할 수 없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고백하자면 고 최진실은 몇 안 되는 악연 가운데 하나였다. 전 남편과의 이혼 공방이 한창이던 당시 ‘이혼은 없다’는 그녀의 공식 입장과 다른 일종의 이혼 합의서를 입수 공개해 법적 분쟁까지 간 적이 있었다. 당시 문건의 존재를 최진실에게도 알려 양측 입장을 균등하게 다루긴 했지만, 그럼에도 ‘상한 감정’이야 어찌 기사의 행간에 다 녹일 수 있었을까. 이후 소송은 취하됐다. 그 뒤로 최진실과 단 한 번 만났다. ‘어색한 기운이 흘렀다’는 관용적 표현이 어떤 것인지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때 오랜 침묵 끝에 최진실은 기자에게 “식사는 했냐”고 물었다.
지난 해 그녀의 사망 소식은 전담 취재팀까지 꾸려질 정도로 큰 뉴스였다. 그때 이 일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취재팀에서 제외시켜 달라는 간곡한 요청을 했다. 개인적인 속내를 털어놓자면, ‘악연이 또 다른 악연으로 이어지면 어쩌나’하는 섣부른 두려움과 ‘과거의 관계를 되돌려놓지도, 그럴 기회조차 닿질 않았다’는 적잖은 고통에서였다.
그렇게 아프게 보낸 그녀를 올 해 또 기사의 말머리에 올릴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유골함이 도난당했다는 기가 막힌 사건….
뙤약볕이 내리쬐던 여름 어느 날, 둔기에 뻥 뚫려버린 그녀의 묘역을 찾았다. 이젠 들을 수도 없는 그녀에게 말을 건넨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후회란 참으로 비정하고, 허무한 단어다.
허민녕 기자 | just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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