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 기자의 인증샷(1)] 이계창 “관객은 나의 눈물을 보지 못 한다”

입력 2011-05-23 19:3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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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계창(41) 배우를 처음 보았을 때를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꽤 늦은 시간, 맥주를 파는 대학로의 한 술집이었고 그는 취해 있었다.

2층에는 단체 손님이라도 몰려 왔는지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일행과 합석한 이계창은 잠시 후 “위층으로 올라가봐야겠다”라며 일어섰다. 위층의 떼거리 손님들이 자신의 후배들이라고 했다.

상당히 취한 모습이라 일행은 “밤도 늦었으니 후배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들어가는 것이 어떻겠느냐”라고 만류했지만 그는 연신 몸을 비틀대면서도 고개를 저었다.

그로부터 1시간여가 흐른 뒤, 술자리를 파한 우리 일행은 카운터 옆 계단에서 잠들어 있는 이계창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술에 몹시 취한 그가 이 시간까지 버티고 있던 이유는 단 한 가지. 후배들의 술값을 직접 내주어야 한다는 선배로서의 의무감 때문이었다.

배우 이계창을 떠올릴 때마다 기자는 그날 밤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2. 이계창 배우는 요즘 뮤지컬 ‘엄마를 부탁해’에 출연 중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엄마 붐’을 일으키고 있는 신경숙 작가의 소설을 뮤지컬로 만든 작품이다.

지난해 신시컴퍼니에서 연극으로 만들었는데 엄마, 딸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이며 대박이 났다. ‘연극도 됐는데 뮤지컬이 안 될 리 없다’란 생각이었는지, 어쨌든 이번 ‘엄마를 부탁해’는 뮤지컬 버전이다.

연극에서 차녀를 맡았던 뮤지컬배우 차지연이 이번에는 본연의 영역으로 돌아와 장녀로 출연한다.

이계창 배우는 장남 역이다. 까칠한 여동생들과 아내를 잃고 자책에 빠진 아버지, 현실적인 아내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노력하는 인물이다.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 ‘엄마를 부탁해’를 관람한 뒤, 공연장 인근의 족발집에서 이계창을 만났다.

이계창의 선배 한성식 배우, 신시컴퍼니의 최승희 홍보팀장이 자리를 함께 했다.

이런 인터뷰는 늘 그렇듯, 소형 녹음기 한 대만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자유롭게 진행한다. 운이 좋으면 꾸밈이 없는 진솔한 인터뷰가 되지만, 잘못하면 잡담이 절반이다.



#3. 우선 작품 이야기.

이계창은 ‘엄마를 부탁해’의 첫 공연 막이 오르기 전 연출자이자 후배인 구태환과 제법 부딪쳤다고 털어놓았다.

“연출자는 아들이 어머니한테 굉장히 미안해하고, 공손하고, 예의바라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장남을 모르는 거죠. 제가 집에서 장남인데, 연출자는 막내더라고요.”

“장남은 무뚝뚝하잖아요. 어머니가 행방불명이 되고난 뒤에야 죽도록 후회하는 거죠. 소설을 읽어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아들이 원래 어머니를 모시러 서울역에 나가려고 했는데 전날 술을 잔뜩 먹죠. 그러고는 ‘동생 집에 가신다고 했으니 동생이 나가겠지’하고 다음날 사우나를 가버리죠. 그게 솔직히 아들이거든요. 난 그런 아들의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던 거구요.”

나중에 문제가 터지고 나서야 죽도록 후회하는 아들. 이렇게 앞뒤를 대비시켜줘야 관객을 납득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 저게 바로 나야”할 것 같았다.

‘엄마를 부탁해’는 줄기부터 뿌리까지 눈물을 뽑는 작품이다. 아닌 게 아니라 배우들은 연습실에서부터 울어댔다. 엄마(김성녀)도, 장녀(차지연)도, 차녀(김경선)도, 하다못해 앙상블 배우들까지 울었다.

그런데 장남만 울지 않는다.

“울컥해도 참는 거죠. 장남이니까. 대한민국 남자는 그러니까. 눈물을 흘리고 싶어도 못 흘리는 사람이니까.”

그런 그도 공연 중 딱 한 번 운다. 술을 왕창 먹고 들어 와 아내와 말다툼을 하는 남편. 그때 아버지가 방에 들어와 ‘내일 나는 시골로 내려가마’하고는 퇴장해버리는 장면이다.
이계창은 이때 그 동안 참고 참았던 눈물을 한꺼번에 쏟아낸다.

그러나 관객은 그가 우는 모습을 볼 수 없다. 암전이 된 뒤, 어두운 무대 바닥에 엎드려 혼자 울기 때문이다.

관객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 겨우 눌러 온 감정의 봉인을 푸는 것이다. 연기가 아니라, 진짜 우는 것이다.

그런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장남이니까요. 대한민국의 남자가 이렇게 생겨먹은 거죠.”

양형모 기자 (트위터 @ranbi361)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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