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자의 인증샷] 뮤지컬배우 김태훈 “내 삶은 스트릿라이프였다”

입력 2011-11-14 19:5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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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인터뷰를 해도 괜찮을 걸까 … 싶지만 하기로 했다.

장소는 서울 동숭동 대학로의 한 주점. 시간은 이슥한 밤.

기자와 뮤지컬배우 이건명, 연극배우 황선식. 이렇게 3인이 선작을 하고 있으니 잠시 후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 김태훈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요즘 출연 중인 뮤지컬 ‘스트릿라이프’를 마악 끝내고 온 참이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 세 명 모두 우우 몰려가 ‘스트릿라이프’를 보고 나왔다.

DJ DOC의 히트곡을 꿰어 만든 쥬크박스 뮤지컬인데, 상당히 에너지가 넘치는 작품이었다. “저러다 배우들 쓰러지는 거 아닌가”싶을 정도로 배우들은 무대에서 뛰고 굴렀다.

소주잔을 든 김태훈이 시익 웃는다.

웃는 얼굴이 영락없이 비를 닮았다. 그런 얘기 많이 듣지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많이 들어요. 얼굴을 무뚝뚝하게 하고 있으면 (비가) 안 나오는데, 환하게 웃으면 나오죠.”

1980년생이니 올해 우리 나이로 서른 둘.

비 얘기가 나온 김에 얘기하자면, 실제로 김태훈은 유명 기획사에 소속돼 아이돌 그룹 멤버가 될 뻔했다. 이십대 중반 즈음의 일이다.

김태훈은 방송활동을 하다가 기획사에 픽업된 케이스라고 했다.

“스물 하나… 뭐 요 때인데요. 학교(서울예대) 후배 중에 나이는 저보다 위인 김지환이란 개그맨이 있어요. 그 형이랑 제가 학교 개그클럽이었거든요.”

학창시절부터 ‘한 개그’했던 김태훈은 개그 소스가 많았다. 김지환과 팀을 이뤄 개그 콘테스트에 나가 최우수상을 탔다.

한 케이블 방송에서 아마추어인 두 사람에게 과감히 코너 하나를 내줬다. 그러다 기획사의 눈에 들었다.

기획사가 김태훈을 발탁한 사유가 재미있다. ‘개그하기에는 미남형’이란 것이 이유였다.

아이돌 그룹 데뷔를 준비하던 김태훈은 어느 날 고교 동기 모임에 참석했다.
김태훈은 계원예고 출신이다. 그것도 오늘날 한국 뮤지컬계를 주름잡는 ‘79·80년생 계원예고파’의 일원이다. 다시 말해 조승우, 김다현, 최재웅, 조정은과 동창이다.
이들은 각자 바쁘게 활동하지만 “계원 모여!”하면 만사를 제쳐놓고 딱 모이는 끈끈한 우애로 유명하다.

모임에 나갔더니 동기 중 한 명이 비디오테이프 하나를 들고 왔다. 고등학교 때 학생들이 무대에 올린 뮤지컬 ‘가스펠’ 실황 비디오였다.

“틀어보니까 정말 노래도 못하고, 춤도 못 추고, 연기도 못 하는 11명이 열심히만 하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갑자기 ‘아, 내가 저거 하던 놈이지’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지’싶었죠.”

김태훈은 기획사에 정중히 탈퇴 의사를 밝히고 회사를 나왔다. 그리고 곧바로 뮤지컬 오디션을 보러 갔다. 2006년에 초연한 ‘러브메이커’로 뮤지컬에 데뷔했다. 이어 ‘위대한 캣츠비’로 무대에 섰다. 그리고 그는 지금까지 뮤지컬 배우로 살고 있다.

“(황선식) ‘스트릿라이프’를 보면서 궁금한 게 있더라고요. 랩을 굉장히 잘 하시던데(비트박스조차!) 따로 연습을 하신 건가요?”

“그게 … 말하자면 … 실은 중학교 3학년 때 백댄서를 했어요.”



●… 김원준의 최연소 백댄서로 출발

”김원준의 ‘너 없는 동안’ 활동할 때, 치마패션 백댄서였죠. 제일 막내였어요. 나랑 최창민 군이라고 있었는데, 동갑이었죠. 그 친구는 워낙 잘 생겨서 이슈가 되기도 했고요.”

초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김태훈의 원래 꿈은 백댄서도 개그맨, 가수도 아닌 연극배우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학예회에서 연극을 해보고는 이른 나이에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어머니가 초등학교 선생님이셨어요. 제가 외아들인데, 요즘 기준으로 보면 아동학대에 가까울 정도로 때려가며 가르치셨죠. 굉장히 엄하셨어요. 전 과목에서 세 문제 틀리면 전 그날 집에서 쫓겨나는 날이었죠.”

김태훈은 공부를 잘 했다. 전교 1등은 김태훈을 위한 자리였다. 전 과목 ‘올백’은 당연한 것이고, 두 세 개만 틀리면 매를 맞는 날이었다.

김태훈은 “다른 집도 다 그런 줄 알고 살았다”라고 했다.

어머니는 어린 김태훈에게 “너는 나사(NASA)에 들어가 비행기를 만들거나, 제일 못 해도 의사가 되라”고 할 정도였다.

그렇게 믿었던(?) 아들은 초등학교 졸업할 즈음이 되자 “엄마, 나 연필 놨어”하고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를 했다.

“처음에는 어머니께서 안 믿으시더라고요.”

김태훈은 그날 이후 진짜로 공부를 안 했다. 성적이 늦가을 은행잎 떨어지듯 낙하했다.

‘전교에서 1등’하던 김태훈이 ‘반에서 1등’만 하자 어머니는 드디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한 달간 모자는 단 한 마디도 대화가 없었다. 팽팽한 신경전이 이어졌다. 결국 한 달 뒤, 어머니가 백기를 들었다.

● … “작곡비 주세요”, “신인이 어디서!”

다시 백댄서 이야기로 돌아가면.

듀스 마지막 콘서트 때 백댄서로 내정돼 있던 중3 김태훈은 선배들이 들어오고, 일본인 백댄서가 유입되면서 밀려나게 됐다.

이왕 이렇게 된 일, 기획사에 들어가 음반을 준비하고 싶었다. 그러다 음악에 욕심이 생기면서 미디를 만지기 시작했다.

우상이었던 서태지, 듀스와 같은 곡을 만들고 싶었다. 기획사를 전전하다 보니 여기저기 회사에서 돈을 떼이는 경험도 겪었다.

“곡비 못 받은 일도 많았어요. 협찬받은 옷으로 때우기도 하고. ‘신인은 그냥 그 정도로 해’하는 식이죠.”

그때가 고1 시절.

지금은 아이돌들도 적극적으로 작곡을 하고, 자신의 음악을 내세우지만 그때만 해도 ‘건방지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혼이 나기도 하고, 회사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당시 어지간한 큰 엔터테인먼트 회사에는 거의 다 몸을 담았다.

“그러고 보니 이런 얘기들은 다 처음 하는 거네요.”

김태훈이 웃으며 소주 한 잔을 맛있게 목으로 넘겼다.

‘스트릿라이프’는 클럽 DJ, 종업원 등이 힘겨운 무명시절을 겪으며 음악적, 인간적으로 성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악덕 기업주에게 당해 죽어라 행사만 뛰다 결국 돈 한 푼 못 받고 쫓겨나는 장면도 등장한다.

이런 에피소드들이 김태훈에게는 남의 일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무대 위에서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는지 모른다.

내내 얘기를 듣고 있던 배우 이건명이 한 마디 했다.

“이 작품이 넌 되게 재미있겠다.”

“사실 제가 맡은 ‘재민’은 80~90퍼센트 저예요. 하지만 ‘저건 김태훈이야’하는 모습이 안 보이기 위해 노력하죠. 그래야 성공이니까요. 전 제 고등학교 동창들이 와서 보고 ‘딱 너야’라고 해버리면 실패라고 생각합니다. ‘강재민’으로서, 제 감성을 갖고 꺾어서 표현을 해야죠.”

계원예고 5인방 시절 이야기.

백댄서를 하다가 계원예고에 입학한 김태훈은 학교 측으로부터 청천벽력과 같은 통보를 들었다. 재학생은 이유를 불문하고 방송활동이 금지라는 것이었다. 김태훈은 계원예고 1학년 재학 중 방송활동을 허용하는 안양예고로의 전학을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단다.

동창들과의 거리감도 있었다. 친구들이 ‘캣츠’, ‘레미제라블’의 OST를 들을 때 김태훈은 거울 앞에서 랩을 하고 춤을 추고 전기기타를 튕겼다.

그러던 어느 날, 남경읍 선생이 김태훈을 불렀다.

‘또 까불다 혼나는구나’하고 풀이 죽어 갔더니, 그를 보고 남경읍 선생이 말했다.

“너 뮤지컬 하자.”



●… 뮤지컬은 나의 길

백댄서를 했지만, 김태훈이 계원예고에 입학한 것은 연극배우가 되기 위해서였다. 어머니에게 “예고에 들어가면 대학을 가지 않겠다”라고 통보를 하고 입학했다.

김태훈이 선생에게 물었다. “뮤지컬이 뭡니까?”
“너 ‘캣츠’ 아니?”
“모르는데요.”
“그럼 ‘레미제라블’은? ‘미스 사이공’은?”
“모릅니다.”
“그래? 너처럼 춤추고 노래하는 게 뮤지컬이야.”

남경읍 선생은 김태훈에게 비디오 영상물 하나를 보여주었다. ‘캣츠’의 실황공연이었다.

“정말 고양이들이 나와서 춤을 추고 노래를 하더라고요. 완전 쇼크였죠. ‘우리나라에 이런 게 있었어?’하고 놀랐어요.”

계원예고 시절 동기들과 뮤지컬 ‘방황하는 별들’, ‘돈키호테’를 했다. 조승우가 ‘산초’, 최재웅이 ‘돈키호테’, 김다현이 ‘신부’, 조정은이 ‘기도하는 여자’, 심정완이 ‘마부’였다. 김태훈은 ‘페드로’ 역을 맡았다.

요즘 기준으로 봐도, 그야말로 대박 캐스팅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

“그땐 우리들 모두 참 촌스러웠어요. 저만해도 이 키 그대로에 55kg이었으니까요. 허리가 23. 비쩍 말랐죠. 애들이 다 말랐어요. (조)정은이는 까무잡잡했고요. 시골에서 올라온 애같은 느낌이었죠. 흐흐”

학생들은 작품을 올리면 순회공연을 했다. 순회공연을 하면서,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보며 생각했다. “이게 내 길이다!”

“(양기자) ‘이게 내 길이다!’해놓고, 졸업 후에는 개그클럽에 가입하지 않았습니까. 아이돌 그룹 멤버가 되기 위해 준비를 하기도 하고.”

“그렇죠. ‘이게 내 길이다’하긴 했는데, 문제가 있었어요. 3학년 1학기 때 ‘돈키호테’가 워낙 잘 되어서 계원예고 최초로 또 한번 순회공연을 했거든요. 거기서 딱 슬럼프가 온 거예요.”

느닷없이 찾아온 두려움. ‘뮤지컬은 천재가 아니면 못 하겠구나’싶었다. 동료들에게 “미안한데, 난 빠질게”하고 포기했다. 미칠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음악을 시작했다.

그러나 앞서 밝힌 대로 ‘불라불라’하여 오늘날 김태훈은 뮤지컬 배우로 살고 있다.
이날 밤, 우리 모두 꽤 늦은 밤까지 마셨다.

불그스레한 얼굴이 된 김태훈이 예의 비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전 이게 좋아요. 누군가 다시 방송하라고 해도 … 지금이 좋아요.”

인터뷰는 여기까지.

뒷얘기 하나를 남기자면, 기자가 자리를 뜬 이후에도 일행은 으¤으¤하여 옆집에서 한 잔을 더 걸쳤고, 술이 약한 김태훈은 한 구석에 엎드려 잠을 잤다고 한다.

나이 서른둘에 남들 오십년 산 것 같은 이력을 지닌 배우, 김태훈.

지금 생각해보니 그날 그에게 이 한 마디는 해주고 인터뷰를 마칠 것을 그랬다.

“그대가 비보다 데뷔가 빨랐더라면, 어쩌면 사람들은 ‘비를 닮은 배우 김태훈’ 대신 비를 ‘김태훈 닮은 가수’로 기억했을지 모를 일이오”라고.
뭐, 덕담은 자유니까.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ranbi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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