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인터뷰] ‘스모크’ 김경수 “시인 이상, 한 번만 만날 수 있었다면”

입력 2018-05-18 16: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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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배우 김경수는 인터뷰 내내 말 한 마디에도 신경을 쓰는 듯 했다. 재연이긴 하지만 극이 가진 반전 때문에 혹여 자신이 스포일러를 말할까 조심스러워했다. “공연은 여러 번이지만 항상 처음 보는 관객이 있지 않을까”라는 등에서 배려심이 묻어났다. 초연에 이어 재연에서 ‘초’역을 맡은 그에게선 초심의 마음가짐도 볼 수 있었다. 초연에 부족한 모습을 보인 자신에 대한 반성이기도 했다.

지난달 24일에 개막한 뮤지컬 ‘스모크’는 이상의 연작 시 ‘오감도(烏瞰圖) 제15호’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된 극. 글을 쓰는 고통과 현실의 괴로움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려는 남자 ‘초(超)’, 바다를 꿈꾸는 순수한 소년 ‘해(海)’, 이 두 사람에게 납치당한 여자 ‘홍(紅)’에게 일어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식민지 조국에서 살아야했던 예술가의 고통, 사회의 암울한 시대상을 이 세 사람이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작품이다.

김경수에게 ‘스모크’는 미완의 작품이었다. 다른 매체의 작품과는 다르게 무대 공연은 조금씩 발전시킬 수 있다는 의미에서도 그렇지만 초연 당시 많은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던 터라 온전히 ‘스모크’에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함께 하는 배우들의 모습을 많이 참고하는 등 다소 수동적으로 참여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그러는 일이 대부분 없는데 공연 일정이 대관 문제 등으로 꼬이는 바람에 스케줄이 겹치게 됐거든요. 이미 하겠다고 결정한 상황에서 갑자기 안 하겠다고 할 수도 없었고요. 정말 기본적인 연습에만 참여할 수밖에 없었어요. 특히 가장 중요한 초반 작업을 많이 못했기 때문에 다소 수동적으로 연습을 하게 됐고 제 의견을 내기보다 다른 배우들의 생각을 받아들이면서 저만의 ‘초’를 만들었죠.”

김경수는 초연의 아쉬움을 재연으로 달래고 있다. 그는 “공연을 하면서 연습 때 몰랐던 것을 찾는 경우도 있다. 올리기 직전에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아쉬웠지만 이번 공연에는 새 배우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새로운 배우들과 창작진을 위해 이전 것을 고집하지는 않는다고.

“이번에 무대에 변화가 많아요. 대본은 비슷하지만 동선이 바뀌니 연기도 달라지죠. (연기적으로)조금 더 깊이를 찾아내야 하는 부분도 분명 있고요. 또 새로운 배우들이나 창작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노력해요. ‘우린 이렇게 했었다’라고 말해버리면 그들이 불편해할 수도 있고 극의 신선함이 사라질 수도 있으니까요.”

새로운 배우들 중에는 2PM 황찬성이 있다. 일본에서 공연한 ‘알타보이즈’ 외에 국내에서 뮤지컬 경험은 처음인 황찬성에 대해 김경수는 “아주 열심히 하는 배우”라고 극찬했다. 그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정말 잘하고자 하는 마음이 크게 느껴진 동생”이라고 말했다.

“지금도 너무 잘하고 있어요. 이번에 처음 만났는데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매우 훌륭한 배우였다. 얼마 전에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는데 정말 열심히 하고자 하는 마음이 느껴졌어요. 연습도 성실하게 하고 있고 대본도 엄청 꼼꼼히 보더라고요. 좋은 자세를 갖고 하고 있으니 이번 작품을 잘 해낼 거라 믿어요. 앞으로도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요.”

앞서 말했듯, ‘스모크’는 이상의 연작 시 ‘오감도(烏瞰圖) 제15호’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들었다. 여전히 그의 시는 추론만 가득한 해석이 있을 만큼 독특한 구조와 단어들로 구성된 집합체다. 띄어쓰기조차 돼있지 않은 그의 시로 대사를 만들고 노래를 써 내려간 뮤지컬을 연기하는 배우들은 쉽지 않은 과정을 거치게 된다.

김경수 역시 이상의 작품들을 읽었고 다양한 해석들을 보며 그를 이해하려 했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연기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뮤지컬이 ‘픽션’이기 때문에 너무 심각하게 파고들지는 않았다고 했다. 해석해서 너무 쉽게 다가가는 것도, 너무 난해하게 하는 것도 관객들에겐 도움이 안 될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정말 살아계신다면 만나서 어떤 생각을 갖고 쓰신 건지 묻고 싶어요.(웃음) 그 의미를 찾아보는 재미도 있긴 했지만 어렵긴 했어요. 모든 배우들이 같은 마음을 갖고 공연을 하고 있지 않을까요. 처음에 저희도 편하게 우리말로 해석해서 해볼까도 생각했는데 그러면 굳이 이상의 작품으로 공연을 만들 필요가 없더라고요. 이상의 작품만의 색채나 매력 등이 묻어나려면 그의 시를 그대로 가져와야 한다고 생각을 마무리 지었죠.”

어찌 보면, 시인 이상의 삶은 현재 살고 있는 예술가들의 삶일지도 모른다. 사명감과 대중들의 인정을 받아야 이어지는 예술가의 삶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특히나 후자의 경우는 더더욱 말이다. 그는 “사랑을 받다가도 비난을 받는 게 예술가들의 삶인 것 같다. 그러면서 성장을 하는 것 같다”라며 “그런데 이상은 처음부터 비난을 감수하고 글을 쓴 게 아닐까란 생각도 든다”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 이상은 ‘시대의 혁명’이라 평가받고 있지 않나. 그의 문학을 연구하는 사람도 있고 연구 자료도 많다. 이 예술가의 삶을 뮤지컬로 다루게 돼서 좋다. 예술가의 이야기는 음악으로 푸는 것이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그의 삶과 작품 그리고 뮤지컬까지 동시에 살아나는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김경수는 “관객들이 ‘스모크’를 보시고 나서 머릿속이 복잡해졌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은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그 만큼 인생은 복잡하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우리 모두의 삶이 이상과 같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시인 이상은 외롭고 고통스러웠지만 밝은 마음을 가졌다고 해요. 참 아이러니하지 않나요. 생각대로 살 수 없고 속은 화나지만 겉으론 웃고 있어야 하는 우리의 모습과 비슷하기도 하고요. 이게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 아닐까요. 홍이 말하는 ‘우리의 생은 그저 감옥이구나…. 갇혔구나. 빠져나갈 길 없는 출구 막힌 세상, 연기가 되면 여길 빠져나가려나’라는 대사는 삶의 고통 속에도 우리는 계속 나가야 한다고 말하는 거잖아요. 우리에게 인생을 나아가기 위한 고민을 제시하는 작품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로네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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