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tvN
12일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은 10일 MBC가 ‘정년이’ 제작사 스튜디오N, 매니지먼트mmm, 앤피오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제기한 가압류 신청을 전부 인용했다. MBC는 ‘업무상 성과물 도용으로 인한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및 계약교섭의 부당파기로 인한 손해배상청구’를 근거로 제작사 재산 가압류를 신청했고, 법원은 모두 이유 있다고 판단했다. 끝내 합의하지 못하고 본안소송으로 가면,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2~3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정년이’는 1950년대 한국전쟁 후 최고의 국극 배우에 도전하는 ‘타고난 소리 천재’ 윤정년(김태리 분)을 둘러싼 경쟁과 연대, 그리고 찬란한 성장기를 그린 작품.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애초 MBC 편성으로 알려졌으며,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MBC 편성 작품으로 업계에서는 통용됐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 tvN 편성설이 돌더니 이내 확정됐다. 그러면서 MBC와 세 제작사 간의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MBC는 ‘정년이’ 기획과 편성 준비과정에 따른 시간과 인력 손실을 주장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정년이’ 연출자 정지인 PD는 MBC 소속일 당시 작품을 준비 중이었다. 하지만 MBC 편성 갈등이 불거지면서 MBC를 떠났다. 정지인 PD뿐만 아니라 관련 스태프 등 MBC 인력 일부도 이탈할 것으로 전해진다. MBC는 캐스팅부터 자료조사, 장소섭외, 미술, 소리, 콘티, 컴퓨터그래픽(CG), 홍보·마케팅 등 사전제작에 필요한 인력과 시간을 쓴 것에 따른 손실을 주장하고 있다.
반대로 스튜디오N, 매니지먼트mmm, 앤피오엔터테인먼트는 MBC가 편성 불발에 불만을 품고 ‘흠집내기’ 중이라는 장문의 입장을 내놨다.
세 제작사는 12일 공식 입장문을 통해 “‘정년이’는 제작사들의 주도하에 모든 비용을 부담해 기획 개발한 작품이다. MBC로부터 단 1원도 받은 적이 없다”며 “MBC는 촬영이 임박한 시점까지도 제작사들의 거듭된 요청에도 제작비 협상을 지연하여 제작사가 어쩔 수 없이 불합리한 MBC의 조건에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결국 제작사들은 MBC와 제작비에 대한 합의점을 단 한 번도 찾지 못했고, MBC는 촬영 시작 20일 전이 되어서야 다른 채널로 가볼 수 있으면 가라고 해 제작사들은 한 달 이상의 촬영 연기를 감수하고 다른 플랫폼으로 옮기게 됐다”고 주장했다.
세 제작사는 “우리는 거대 방송사의 심기를 건드릴 수 없어서 MBC가 내부에서 쓴 비용이 있다면 지급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MBC는 오랜 시간 동안 비용에 대한 내역도 밝히지 않고 면담 요청도 거절하더니, ‘정년이’ 방영을 앞둔 시점에서 법적 소송을 제기해 악의적으로 작품에 흠집을 내려고 하는 사안이라는 점을 알린다”며 “최근 MBC 가압류는 법원의 확정적 판단이 아니라 단순 보전처분이다. 제작사들 입장 소명기회 없이 MBC의 일방적인 주장에 따른 잠정 결정이다. 그리고 가압류 결정은 방송과 무관해 방송 일정에도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설명했다.
세 제작사는 MBC를 대놓고 저격했다. 구두 합의 등을 포함한 어떤 논의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세 제작사는 “MBC는 우리와 ‘정년이’와 관련된 구두합의를 포함 어떠한 계약도 체결한 사실이 없고, 제작사는 명시적인 편성 확정을 고지 받은 적도 없다. 우리는 2020년부터 오랜 기간 웹툰 ‘정년이’의 영상 제작을 기획해왔고, 적합한 연출자에 대한 논의 끝에 2022년 정지인 PD를 섭외하면서 2022년 11월 MBC에 편성 및 드라마 제작비 등을 정식 제안했다. 제안 당시 우리는 ‘정년이’는 제작 난이도가 높은 작품이라서 제작비가 높을 수밖에 없고, 촬영날짜가 정해져 있다는 점을 미리 정확하게 고지하면서 다른 플랫폼을 알아볼 기회를 박탈당하지 않게 제작사가 제안한 제작비를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빨리 달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 그러나 MBC는 우리 제안에 대해 무려 6개월간 아무 답을 주지 않다가 촬영 개시 4개월 전인 2023년 5월 말에 이르러서야 우리가 수용할 수 없는 수준의 제작비를 조건으로 제시했다”고 이야기했다.
세 제작사는 “‘정년이’는 감독 및 출연진 확정과 함께 2023년 9월 촬영 시작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제작비 조달 및 편성 확정이 시급했다. 제작사들은 차질 없는 촬영 진행을 위해 MBC가 의사 결정을 미루던 동안에도 촬영 준비를 위한 제작비를 자체 조달해 가며 계약 협상의 상대방인 MBC와의 신의를 지키기 위해 다른 플랫폼의 요청을 다 거절하며 끊임없이 협의를 지속해 갔다. 그런데도 MBC는 불과 촬영 한 달 전, 이미 우리와 작업 중이던 주요 스태프들 교체를 요구하고, 촬영이 임박한 2023년 8월 제작사들이 다른 플랫폼을 알아볼 수밖에 없다는 최종적인 제안에도 그렇게 할 수 있으면 하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MBC가 사실상 협상을 진전시켜 나갈 의사가 없다고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세 제작사는 “우리는 그런데도 MBC 답변을 한 달이나 더 기다렸으나, 아무런 답이 없기에 ‘정년이’ 제작을 이어 가기 위해 부득이하게 타 플랫폼과 협상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조건을 합리적이라고 바로 수용한 tvN에 드라마를 편성하기로 합의하게 된 것”이라며 “앞서 보도된 ‘MBC 대거 인력유출’은 사실무근이며, 실제로 MBC를 퇴사한 것은 정지인 PD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정지인 PD 퇴사 결정 또한 작품 완성도를 위한 정지인 PD의 자발적인 결정이었다. 그리고 실제 촬영 결과 ‘정년이’는 MBC에서 제안한 제작비보다 훨씬 많은 제작비가 소요됐다”고 주장했다.
편성을 둘러싼 갈등은 방송가에서 흔한 일이다. 하지만 대작을 둘러싼 이런 피곤한 싸움은 잦지 않다. 시쳇말로 이미 ‘개싸움’은 시작됐다. 이제 이 싸움에서 지는 쪽은 이미지 타격이 크다. 편성 불발에 따른 손실을 주장하며 문제를 제기한 MBC가 최종 싸움에서 승리한다면, 세 제작사, 그리고 제작비 대고 편성까지 가져간 스튜디오드래곤과 tvN(CJ ENM 채널) 꼴은 우습게 된다. 덩달아 주연배우인 김태리 이미지 타격도 연장선이다. 세 제작사 중 매니지먼트mmm 김태리 소속사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세 제작사가 주장이 사실이고 최종 승리를 거머쥔다면, MBC 이미지는 ‘진상’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된다. 가뜩이나 지상파 몰락을 세 방송사가 경쟁하는 상황에서 MBC가 자책골을 제대로 넣으며 시청자들 눈 밖에 날 수 있다.
결과는 아직 알 수 없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정년이’ 성패다. 이 상황에서 흥한다면, 싸울만한 작품으로 평가받겠지만, 망한다면 정말 촌극이 따로 없다. 편성 갈등을 떠나 이미 원작 팬들까지 한마디씩 거드는 ‘정년이’다. 무슨 시어머니가 이렇게 많은지 알 수 없지만, 기대작인지 문제작인지 모를 ‘정년이’는 어찌됐든 10월 방송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 끝이 주목된다. 캐스팅 하차(김히어라)부터 편성 갈아타기까지 참 말 많은 ‘정년이’가 어떤 흔적을 남길지 말이다.
홍세영 동아닷컴 기자 projecthong@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