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인터뷰] 박기웅 “연기 아닌 미술 전공, 자격지심 있었다”

입력 2020-07-06 10: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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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인터뷰] 박기웅 “연기 아닌 미술 전공, 자격지심 있었다”

‘일문십답(一問十答)’

배우 박기웅은 하나를 물으면 열 가지를 답했다. 그만큼 연기와 작품에 대한 성찰이 많은 배우였다.

지난 1일 MBC 수목드라마 ‘꼰대인턴’이 종영했다. ‘꼰대인턴’은 최악의 상사 이만식(김응수 분)을 부하직원으로 맞게 된 가열찬(박해진 분)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드라마. 이만식에게 받았던 수모를 그대로 돌려주는 가열찬의 복수극을 유쾌하게 그려내며 사랑받았다.

극중 박기웅은 식품업체 준수그룹 총수 남궁표 회장의 철부지 아들이자 준수식품의 대표이사 남궁준수 역을 맡았다. 남궁준수는 아버지의 총애를 받는 가열찬을 밀어내려고 온갖 계략을 꾸미지만 결국 가열찬과 합세해 회사를 노리는 구자숙 전무를 물러나게 만드는 인물이다. 악역이지만 허술하고 인간적인 모습에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가 됐다.

박기웅은 자신의 고민이 여실히 담겨있는 남궁준수와의 작별이 아쉽기만 하다고 했다. 그는 종영소감을 묻자 “시원섭섭하다는 말이 있지만 시원하지 않고 섭섭하기만 하다”고 토로했다.

‘꼰대인턴’은 준수식품을 퇴사한 가열찬과 이만식이 다른 회사에서 경력직 부장과 시니어 인턴으로 재회하는 장면으로 끝이 났다. 두 사람 중 누가 어떤 직책을 맡았는지는 나타나지 않아 두 사람이 그려낼 뒷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들었다. 즉 완전한 열릴 결말이었다.

박기웅은 “가열찬이 다시 부장으로, 이만식은 또 한 번 시니어 인턴으로 채용된 게 아닌가 싶다. 예상했던 바는 아니었지만 이런 열릴 결말이 너무 좋았다. 보편적이라면 열찬이가 준수식품을 나가서 차린 회사가 잘 됐을 텐데 망한다. 남궁준수도 열찬을 도와주고 밀어줄 거 같은 데 아니었다. ‘꼰대인턴’은 대본이 뻔하지 않았고 트는 맛이 있었다. 근데 그게 억지스럽지 않았다. 마지막화 대본에서 회사가 망했다는 내용을 보고 ‘이래야 우리 대본이다’ 싶었다”고 웃어보였다.

그러면서 “‘한바탕 잘 놀았다’ 싶었다. 시즌2 논의는 아직 안 나왔지만 제작되면 무조건 하고 싶다”고 강한 의지를 보였다.

앞서 말했듯 남궁준수는 미워할 수 없는 악역이었다. 무슨 일을 꾸미든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고, 위화감 따위는 전혀 들지 않는 허술한 ‘바지사장’이다. 분풀이라곤 드로잉북에 색칠을 하는 게 전부였다.

박기웅은 “남궁준수는 피터팬 같은 아이다. 드로잉북은 그냥 남궁준수의 취미일 뿐이었다”며 “작품에 들어가기 전 감독님과 많은 얘기를 나눴다. 첫 미팅 때는 대역 없이 직접 그림을 그리겠다고도 했다. 비싼 장난감총, 큐브, 레고 같이 철부지 남궁준수를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것들을 준비했지만 드라마에는 나오지 않았다. 비비탄총 정도만 마지막화에 나왔다. 드라마가 리얼리티를 표방하지만 판타지적이다. 그래도 남궁준수가 갑자기 싸움 잘하는 건 웃겼다. 그래서 감독님께 말씀을 드려서 비비탄총 액션신이 탄생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만식이 형이라 한 것도 애드리브였다. 대본에는 이만식을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다 존댓말로 적혀있었다. 근데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 쓰면 어떨까 싶었다. 그 미팅 신을 기점으로 남궁준수가 뭘 해도 통용이 됐다”고 부연했다.

남궁준수의 허술한 모습에 ‘로켓단’이라는 애칭이 붙기도 했다.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 속 악당 ‘로켓단’처럼 욕심은 있지만 매번 주인공에게 당하는 모습이 닮았기 때문이다. 박기웅은 “원래 인터넷을 잘 안 해서 댓글을 잘 안 본다. 그런 별명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맘에 든다”고 즐거워했다.

올해로 데뷔 15년차인 박기웅은 출연한 드라마, 영화가 30편이 넘는다. 다만 그의 캐릭터가 러브라인이 성사된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꼰대인턴’ 남궁준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박기웅은 “보통 남자들과 작품을 많이 했다. 멜로에 대한 욕구는 있다. 하지만 장르보다는 캐릭터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소신을 밝혔다. 덕분에 박기웅의 필모그래피는 ‘각시탈’ 일본인 교사 기무라 슌지, ‘신입사관 구해령’ 왕세자 이진부터 ‘꼰대인턴’ 재벌2세 바지사장 남궁준수까지 다양한 캐릭터로 채워졌다.

박기웅은 다양한 캐릭터를 선택한 이유를 묻자 “어느 정도는 자격지심이었다. 난 연기 전공자도 아니고 미대를 졸업했다. 신인 때까지 미술 강사를 하기도 했다. 신인 때 오디션을 가면 엄한 분위기고 쌍욕도 많이 먹었다. 학교를 묻고 ‘얘는 연기 전공 아니면 연기 못하겠다’고 타박하는 감독도 많았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나는 증명하고 싶은 자격지심이 있었다. 꽃미남이라는 수식어도 있었지만 그런 걸 버리고 여러 작품을 하려고 했다. 그러다보니 자격지심이 모두 극복됐지만 또 다른 맛을 알게됐다. 도전하는 과정이 재밌다”고 연기 열정을 드러냈다.

끝으로 박기웅은 “배우 생활을 돌이켜보면 그냥 흘러갔다. 당시에는 많이 고민하고 선택하느라 골치 아프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보니 그냥 흘러갔구나 싶더라. 나도 아직은 어린 배우다. 신인 때만 해도 비장한 꿈이 원대했지만 지금은 배우로서 원대한 꿈이 없다. 그냥 자연스럽게 연기하고 싶다. 그냥 내 역할에서 잘 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소망했다.

사진|젤리피쉬 엔터테인먼트 제공

동아닷컴 함나얀 기자 nayamy9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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