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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이 오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배우로 데뷔시켜주겠다”는 말에 여러 소속사에서 걸그룹 연습생 생활을 거쳤고, 데뷔한 이후에도 수많은 오디션에서 탈락의 쓴맛을 봐야했다. 회사에 취직해 안정적으로 삶을 꾸리는 친구들을 보면서 연기에 대한 마음이 흔들릴 때도 있었다.
조은유는 “그럴 때면 눈을 꼭 감고 외운 주문이 있다”며 “아모르 파티(Amor Fati)!”를 큰 소리로 외쳤다. ‘운명을 사랑하라’는 의미의 라틴어 구절이 그대로 그의 좌우명이 됐다. 최근 서울 서대문구 스포츠동아 사옥에서 만난 그는 “그렇게 9년을 버텼더니 이런 날도 온다. 연기가 내 운명이라 믿고 달린 보람이 있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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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그는 ‘사교육 1번지’ 대치동에서 가장 유명한 국어 일타 강사 윤임(안소희)의 친구이자 소설가인 나은 역을을 맡아 남다른 존재감을 발휘했다. 대학까지 함께 갈 정도로 윤임과 절친했지만, 그를 지독하게 질투한 나머지 인생 전부를 빼앗으면서 윤임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긴다.
“어쩌면 영화의 ‘키포인트’라 할 수 있는 캐릭터예요. 깊은 여운을 남길 수 있는 방법을 수없이 고민했죠. 나은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제 마음 속에 있는 부러움을 끄집어냈어요. 나은이만큼은 아니지만, 저도 함께 연기했던 동료들이 앞서나가는 걸 보면서 부럽고 질투가 난 적이 있었거든요. 이런 사소한 감정을 출발점 삼아서 캐릭터를 만들어 갔어요.”
윤임의 꿈과 사랑을 망가뜨리면서까지 자신의 열등감을 채우려 했던 나은은 끝내 행복해지지 못한다. 발랄하고 단순한 실제성격과는 정 반대인 나은을 연기하면서 “이해가 되는 한편 슬프기도 했다”고 돌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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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너인 안소희를 비롯해 백기행 역의 박상남, 동기생 미치오 역의 타쿠야와 함께 대학시절을 촬영할 땐 상명대 영화과를 다니던 때를 떠올렸다. 그는 “마침 영화를 촬영한 단국대 천안캠퍼스가 모교 근처여서 정말 대학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안소희 언니가 정말 잘 챙겨줬어요. 함께 손을 잡고 뛰는 장면에서는 소희 언니가 달리기 선수만큼 잘 뛰는 바람에 진땀이 다 났어요. 언니는 제게 몇 번이나 ‘나 혹시 너무 빨랐어?’라며 물어봐줬어요. 박상남, 타쿠야 오빠는 둘 다 정말 키가 커서 대화를 할 때마다 다리를 쫙 벌려주는 ‘매너다리’를 해줬죠. 모두 또래라서 대학 캠퍼스에서 만난 동기를 다시 만난 느낌이 들었어요. 좋은 추억이 많이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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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째 연기 한 우물을 파고 있지만, 한림예고 재학 시절부터 20대 초까지는 다양한 소속사에서 걸그룹 데뷔를 준비했다. 유명 아이돌 매니지먼트 회사들로부터 ‘러브콜’을 받으면서도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걸그룹 연습생 생활을 하면서 ‘내 길이 아니다’고 느꼈어요. 그 자리를 누군가는 간절히 원할 텐데, 저는 춤도 정말 못 췄고 무엇보다 재미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그건 어떤 걸 하든 똑같았어요. 아예 다른 직업을 갖자 싶어서 승무원 준비를 한 적도 있는데 ‘이걸 왜 해야 하지?’라는 마음만 맴돌았죠. 원래는 참을성이 없는 편인데, 연기만은 제가 평생을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때마다 외친 단어가 ‘아모르 파티’다. 그는 “운명을 사랑하라는 그 문구를 입 밖으로 말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다잡는 데 정말 도움이 된다”면서 “운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달렸더니 여기까지 왔다”고 돌이켰다.
“2015년 데뷔 당시에 ‘그녀는 예뻤다’를 비롯해서 3편을 한꺼번에 찍었어요. 오디션도 줄줄이 통과했죠. ‘와, 나 잘되려나보다’ 했어요. 그런데 곧 정체기가 오더라고요. 마음이 조급해지고, 작은 일에 일희일비했어요. 그렇게 수많은 거절을 겪으면서 비로소 견디는 힘이 생긴 것 같아요. 전보다 여유가 생기고, 차분해지고, 심지가 굳어졌죠. 지난 시간이 헛되지는 않았나 봐요.”
그는 “아직 갈 길이 멀다”며 벌써 다음 행보를 고민하고 있다.
“언젠가는 공포영화에서 엄청 까불다가 기괴한 모습으로 제일 먼저 죽는 캐릭터로 나오고 싶어요. 새로운 건 다 해보고 싶어요. 그렇게 하다보면 어떤 장르에 나와도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배우가 되어있지 않을까요? 제 꿈이 ‘설득력 있는 배우’거든요. 쉬워 보여도 가장 어려운 일이잖아요. 그만큼 열심히, 잘해야겠죠.”
유지혜 기자 yjh030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