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월드 메이플 아일랜드 존 전경.                           사진제공 | 롯데월드

롯데월드 메이플 아일랜드 존 전경. 사진제공 | 롯데월드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의 첫 문장).”

계단을 오른다.
발걸음이 빨라지면서 심장이 뛴다. 촘촘하게 엮인 철제 그물망 사이로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고, 비로소 하늘이 활짝 열린다. 사방으로 탁 트인 공간이 펼쳐지며 롯데월드의 환상적인 세계가 두 눈에 차오른다.

긴 터널을 빠져나와 설국을 마주한 소설의 주인공이 이런 심경이었을까.
쫓기듯 걷던 회색빛 아스팔트를 벗어나 마주한 이 거대한 놀이터의 풍경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오늘 여정은 꽤 즐거울 예정이다. 유쾌한 동반자도 있다. 평소 밝은 성격과 특유의 입담으로 주변을 늘 환하게 만드는 쾌남, 김캡 시인이다. 그는 오늘도 세련된 재킷 차림에 야구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나왔다. 실내에 들어와서도 기어이 저 시커먼 선글라스를 눈에서 떼지 않는 낭만파 멋쟁이.

물론 그의 이름은 (당연히) ‘김캡’씨일리 없다. 하지만 트레이닝복을 입든 등산복을 입든 수트 차림을 하든 사철 내내 야구모자만 고집하는 그를 우리는 오래전부터 ‘김캡 시인’이라 부르고 있다.

“김 시인님, 오늘도 어김없이 야구모자에 선글라스 조합이군요. 실내에서는 답답하지 않으십니까.”

내 말에 김캡 시인은 야구모자 챙을 매만지며 미소 지었다.

“조선 말기 명시인 김병연 선생이 평생 삿갓을 쓰고 방랑하셨듯, 이 시대의 진짜 낭만 시인인 저는 현대적인 야구모자를 씁니다. 게다가 시인의 맑은 영혼은 원래 쉽게 노출되면 안 되는 법이지요. 이 화려한 축제의 세계에서 제 감성이 번잡함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이 검은 안경이야말로 제 영혼을 지키는 최소한의 방어선입니다.”

“어련하시겠습니까. 그 철저한 방어막 덕분에 오늘 화려한 퍼레이드 구경이나 제대로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롯데월드 메이플 아일랜드 존의 자이로스핀.       사진제공 | 롯데월드

롯데월드 메이플 아일랜드 존의 자이로스핀. 사진제공 | 롯데월드

농담을 주고받으며 우리는 서둘러 매직아일랜드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머릿속으로는 야외 구역을 오전 중에 빠르게 돌고, 해가 정수리 위로 솟구치는 오후에는 실내 어드벤처로 피신하겠다는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세상만사는 결코 중년 아저씨들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입구에서부터 쏟아져 들어온 무수한 학생 단체들이 우리를 제치고 매직아일랜드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눈앞을 휙휙 스쳐 지나가는 푸릇푸릇한 젊음의 속도를 우리는 도저히 당해낼 재간이 없다.

“김 시인님, 그렇게 팔자걸음하실 때가 아닌 듯합니다. 우리도 저 친구들처럼 좀 뛰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무리하지 마시지요. 저 펄떡이는 청춘들의 속도를 우리 낡은 도가니가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음미하는 것이 아재들의 진짜 미덕입니다.”

정신없이 인파를 헤치며 걷다 보니 왼쪽으로 샤롯데씨어터의 외관이 시야에 들어왔다. 오랜 세월 공연 담당 기자로 살고 있는 나로서는 친한 친구집 침대처럼 친근한 장소다. 하지만 롯데월드 안에서 바라보는 샤롯데씨어터는 꽤 생소하다. 각도가 조금 바뀌었을 뿐인데 완전히 다른 외국의 건축물처럼 보이는 것이 흥미로워 스마트폰을 꺼냈다. 극장 외벽에는 ‘겨울왕국’ 뮤지컬 대형 포스터가 위풍당당하게 걸려 있다.

롯데월드 매직아일랜드에서 바라본 샤롯데씨어터. 뮤지컬 겨울왕국의 대형 포스터가 걸려있다.

롯데월드 매직아일랜드에서 바라본 샤롯데씨어터. 뮤지컬 겨울왕국의 대형 포스터가 걸려있다.

매직아일랜드에서 사람구경을 실컷 하고는 서둘러 어드벤처로 이동한다.

“김 시인님. 샤롯데씨어터의 겨울왕국 포스터를 보니 날도 덥겠다, 엘사가 당장 얼음 마법을 쓸 것 같지 않습니까. 얼른 개막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경건하게 대기 중이거든요.”

“아름답고 웅장하더군요. 하지만 제 눈에는 지금 당장 저 멀리 허공을 찢고 날아다니는 바이킹이 더 시급해 보입니다만.”

김캡 시인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바이킹 앞 대기 줄이 끝도 없이 구불구불 늘어서 있었다. 바이킹이야말로 놀이공원의 상징이자 심장. “줄이 부산까지 이어져도 이건 타줘야 한다”는 김캡 시인에게 이끌려 얼굴이 하얘지도록 바이킹의 스릴을 맛보아야 했다.

늘 느끼는 바이지만, 롯데월드의 진짜 멋은 오밀조밀함에 있다. 한정된 공간 안에 즐길 거리와 먹거리가 빈틈없이 들어찬 모습은 정성스럽게 찬을 채워 넣은 일본 고급 도시락을 연상케 한다.

고소하고 달콤한 버터 냄새에 코를 벌름거리며 가판대로 향했다. 작은 종이박스에 듬뿍 담긴 오리지널 팝콘을 샀다. 사실은 평소 아내가 먹지 못하게 하는 ‘금지된 과실’ 같은 푸드다.

“사모님이 아시면 건강 걱정하며 잔소리가 꽤 길어지실 텐데요.” 김캡 시인이 선글라스 너머로 눈웃음을 쳤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먹겠습니까. 쉿, 비밀로 해주십시오. 이 짭조름하고 고소한 맛이야말로 세상 엄격한 규율로부터의 의미있는일탈 아니겠습니까.”

팝콘을 우물거리며 아래를 내려다보니 얼음판이 하얗게 빛나는 아이스링크가 펼쳐져 있다. 오직 롯데월드에서만 만날 수 있는 독점적인 시그니처 뷰다.

메이플 아일랜드 존 아르카나라이드.           사진제공 | 롯데월드

메이플 아일랜드 존 아르카나라이드. 사진제공 | 롯데월드


메이플 아일랜드 존 메이플 스토어.      사진제공 | 롯데월드

메이플 아일랜드 존 메이플 스토어. 사진제공 | 롯데월드

드디어 메인 목적지인 메이플스토리 테마존에 당도했다.

동화 속 마을 전경이 현실 세계의 물리적 공간으로, 포장이사한 것 같은 이곳은 과연 몰입감이 대단했다. 가상 세계의 도트 그래픽이 실제 입체적인 조형물로 세련되게 치환된 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캐릭터 광장에는 둥글고 거대한 핑크빈과 털북숭이 예티 조형물이 우뚝 솟아 방문객들을 반겼다.

많은 아이와 가족들이 인증샷을 찍기 위해 사방에서 카메라를 치켜들고 있었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가판대마다 소장 욕구를 강하게 자극하는 형형색색의 굿즈들이 유혹하고 있었다.

우리는 화려한 조명 아래 빙글빙글 돌아가는 회전목마 앞에 멈춰 섰다. 메리고라운드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신기한 치유의 힘이 있다. 회전목마는 대관람차와 함께 세상의 찌든 때를 조용히 잊게 만드는 힐링의 양대 놀이시설이다.

제목: 바이킹 (김캡 시)

피가 끓는 청춘들에겐 축제의 무대
저 사나운 바이킹도 장난감 같구나
아래서 구경하던 내 도가니가 울컥해
바라만 봐도 속이 울렁거리는 아재
부러우면 지는 거라며 눈을 감네

오후 2시를 알리는 경쾌하고 웅장한 음악이 광장 가득 울려 퍼졌다. 축제의 화려한 절정을 장식할 퍼레이드가 시작된다는 얘기다. 롯데월드에 와서 퍼레이드를 보지 않고 떠나는 것은 라면에 스프를 넣지 않고 끓여 먹는 것만큼이나 밍밍한 짓이다.

롤러브레이드를 신은 선두조가 관객의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내자 곧이어 거대한 퍼레이드 차량들이 자태를 드러냈다. 화려한 해적 의상을 빼입은 외국인 댄서 연기자가 다가오더니 나에게 불쑥 손을 내밀었다. 가볍게 주먹 악수를 나누며 축제의 즐거움을 공유했다.

퍼레이드는 중간에 행렬을 멈추고 관객과 가까이서 호흡하는 고정 공연 시간을 갖는다. 이때 어느 길목에 서 있느냐에 따라 눈앞에서 마주하는 퍼포먼서가 달라지는 복불복의 묘미가 있다. 내 자리는 거대한 황금빛 모형 배를 탄 신밧드 청년의 구역이었다. 신밧드는 지치지도 않는지 오랫동안 땀을 튀기며 열정적인 춤을 추어댔다.

“김 시인님, 저 친구 체력이 참 대단합니다. 하지만 너무 오래 머무는군요. 이제 다른 분들도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만.”

“조금만 참으시지요. 아름다운 예술의 길은 원래 멀고도 험한 법입니다.”

슬슬 박수가 기계적이 되어갈 무렵 드디어 초록색 의상을 아름답게 차려입고 정열적인 춤을 선보이는 밸리댄서 무리가 나타났다.

김캡 시인의 눈이 번쩍 빛났다.
“보십시오. 끈질긴 기다림 끝에 이런 낙이 오지 않습니까. 안무가 아주 훌륭합니다.”

흥겨운 축제의 열기를 뒤로하고 우리는 롯데월드를 떠나 아쿠아리움으로 향했다.

어린 시절부터 수족관을 유독 좋아했다. 기억 속 최초의 수족관은 아마 63빌딩에 있는 아쿠아리움이었을 것이다. 거대한 유리벽 너머로 신비감을 뿜어내던 바다가 안겨주었던 그 시절의 시각적 충격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뇌리에서 바래지 않고 있다.

진흙 바닥에 납작 엎드린 전기뱀장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저 녀석과 짜릿하게 하이파이브라도 한번 해보시겠습니까.” 김캡 시인이 농담을 던졌다.

“사양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저녁에 기사를 마감해야 할 의무가 있거든요.”

관람객들의 탄성이 터져 나오는 둥근 해저터널로 들어섰다. 휜 아치형 유리창 위로 큼직한 상어 한 마리가 매끄럽고 헤엄치며 지나갔다.

느릿느릿 날개를 펄럭이며 헤엄치는 거대한 가오리와 바다거북의 유영은 언제 보아도 경이롭다.

“참으로 우아한 자태입니다. 혹시 겉으로는 감탄하면서 속으로는 매콤하게 버무린 가오리 회무침이나 찜 요리를 떠올리고 계신 건 아니겠지요?” 김캡 시인이 정곡을 찔렀다.

“크게 오해하셨습니다. 저는 지극히 점잖은 인품과 지성을 갖춘 사람입니다. 지금 대자연의 신비에 순수하게 경탄하고 있을 뿐입니다. 콩나물을 듬뿍 얹은 매콤한 가오리찜이라니요. 당치도 않은 말씀입니다.”

나의 대답에 시인이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쿠키런 in 롯데월드 아쿠아리움 바다모험전 오픈. 인증샷을 남기는 외국인 가족.     사진제공 | 롯데월드

쿠키런 in 롯데월드 아쿠아리움 바다모험전 오픈. 인증샷을 남기는 외국인 가족. 사진제공 | 롯데월드

자판기에서 3000원을 주고 먹이 캡슐을 뽑았다. 라면 스프가 아닐까 의심이 드는 빨간 사료를 수면에 뿌리자 작은 물고기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먹이를 맹렬하게 쪼아먹는 물고기보다 곁에서 입을 헤 벌리고 신기해하는 꼬마 손님들의 반응을 구경하는 것이 훨씬 흥미로웠다. 남은 먹이를 아이 손에 쥐여주고는 다음 코스로 이동한다.

산소통을 멘 스쿠버다이버가 등장했다. 뭔가 대단한 수중쇼를 보여주는가 싶었는데, 밀대를 꺼내더니 유리창을 슥슥 닦아냈다. 청소를 하는 모양이다. 그렇긴 해도 사라지기 전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통통하고 귀여운 모습을 한 훔볼트 펭귄들. 평화로워 보이지만 저들 세상에선 나름 서열체계가 엄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둥지 자리나 먹이,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이 치열하다고 한다. 싸울 때는 부리로 쪼거나 딱딱한 앞다리(플리퍼)를 이용해 상대방에게 빠른 연타를 먹인다. 이른바 펭귄 영춘권이다.

“저 녀석들, 은근히 성질이 까칠해 보입니다. 배트맨 영화에서 왜 펭귄이 고담시의 악당으로 나왔는지 충분히 알 것 같습니다.”
김캡 시인도 나와 같은 생각인 모양이다.

아쿠아리움 내부는 마침 화려한 축제의 장으로 생동감 넘치게 꾸며져 있었다. 입구에서는 거대한 쿠키와 캐릭터 인형들이 손님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다정하게 손을 잡아주는 모습에 사방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터졌다.

카피바라 수조 앞에서는 국적을 불문하고 모여든 관람객들이 녀석 특유의 느긋하고 무해한 매력에 푹 빠져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바빴다.

아쿠아리움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거대한 메인 수조. 푸른 바다의 심연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초대형 수조 앞에서, 캐릭터들과 관람객들이 한데 어우러져 동화 속 한 장면 같은 포토타임을 즐겼다. 전래동화 속 용궁의 풍경을 정교하게 재해석한 ‘신비로운 용궁의 입구’ 테마존 역시 웅장한 전경 그대로 압도적인 감흥을 선사했다.

제목: 아싸가오리 (김캡 시)

유유하게 헤엄치는
저 가오리 날갯짓에
회무침이 생각나니
침이 고여 미안하다
초장 생각 접어둔다

치열한 탐방을 마치고 나니 뱃속에서 밥 달라는 신호가 요란하다.
서울스카이에 오르기 전 저녁 식사를 위해 롯데월드몰 6층 식당가에 입점한 ‘신라제면’으로 향했다. 메뉴판을 찬찬히 정독한 뒤, 매콤한 칼낙지(낙지비빔칼국수)와 바삭한 감자전을 주문했다.

신라제면의 칼낙지. ‘약간 매운맛’을 주문하였으나 맵질이 아저씨들에게는 ‘몹시 매운맛’으로 느껴졌다.

신라제면의 칼낙지. ‘약간 매운맛’을 주문하였으나 맵질이 아저씨들에게는 ‘몹시 매운맛’으로 느껴졌다.

송이버섯구이처럼 생겼지만 감자전이다.

송이버섯구이처럼 생겼지만 감자전이다.

잠시 후 테이블 중앙에 놓인 감자전의 비주얼에 약속이나 한 듯 탄성이 터졌다. 평소 흔히 보던 두껍고 둥그런 전통 부침개의 형태가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감자를 얇고 정교하게 채 썰어 기름에 바삭하게 튀겨내듯 구워냈는데, 그 모양새가 꼭 슬라이스한 버섯을 촘촘히 얹어놓은 조형물 같았다.

경쾌하게 부서지는 식감 뒤로 감자 본연의 고소한 풍미가 혀끝에 부드럽게 퍼져나간다. 뒤이어 새빨간 칼낙지의 매콤한 불향이 코끝을 알싸하게 자극했다. 쫄깃한 칼국수 면발에 매콤한 낙지 양념을 듬뿍 묻혀 감자전 조각 위에 얹어 먹으니 그 맛의 밸런스가 환상적이었다.

“김 시인님, 이 감자전의 파삭한 질감이 매콤한 낙지 양념과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집니다. 비주얼만 훌륭한 게 아니라 맛도 진짜 물건이군요.”

“정말 그렇습니다. 이 바삭하고 고소한 구원투수가 우리 테이블에 없었다면, 저처럼 소문난 맵질이는 이 화끈한 칼낙지의 공격적인 매운맛을 견디지 못하고 항복했을 겁니다. 매운맛과 고소함의 조화가 그야말로 신의 한 수네요.”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있자니 문득 A씨 생각이 났다. 요리를 공부하기 위해 ‘굳이’ 영국 유학까지 다녀온 A씨가 이 감자전과 칼낙지를 맛보았다면 과연 어떤 평을 했을까. 틀림없이

“이 감자전은 전분질의 호화(糊化) 현상을 극대화한 아주 흥미로운 조리 기법입니다. 감자를 미세하게 채 썰어 표면적을 넓힌 뒤, 고온의 기름에서 수분을 완벽하게 탈수시켰군요. 덕분에 내부의 수분 증발로 발생한 미세한 기포들이 프랑스식 ‘갈레트 드 폼드테르(Galette de pommes de terre)’나 영국 클래식 튀김옷의 바삭함 못지않은 크리스피한 질감을 선사합니다. 비주얼이 버섯을 닮은 것 역시 시각적 유희를 노린 아주 재미있는 연출이군요”라든지

“여기에 낙지비빔칼국수를 매칭한 것은 분자요리학적으로 무척 훌륭한 상호작용입니다. 낙지의 캡사이신 성분이 인간의 통각 수용체를 강하게 자극하여 고통을 유발할 때, 감자전의 기름진 지질(脂質) 성분이 그 수용체를 부드럽게 코팅하며 통증을 쇄신해 줍니다. 쉽게 말해 매운맛의 공격성을 고소함으로 중화하는 최적의 밸런스라는 뜻이지요”와 같은 소리를 해댔을 테지.

중년 사내 둘이서 정수리에 땀을 뻘뻘 흘려가며 매콤한 낙지와 바삭한 전을 번갈아 집어 먹다 보니 어느새 그릇 바닥까지 싹싹 비워냈다.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나니 방전되었던 육체에 새로운 에너지가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포만감을 두둑하게 안고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로 향한다.
서울스카이는 공간 전체가 스타워즈의 은하계 세계관에 빠져들어 있었다. 지하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시커먼 다스베이더와 하얀 제국군 스톰트루퍼 무리가 삼엄하게 도열해 기선을 압도했다.

다스베이더 홀로그램.      사진제공 | 롯데월드

다스베이더 홀로그램. 사진제공 | 롯데월드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스타워즈 주제곡을 듣고 있자니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저 다스베이더의 위엄이 대단합니다. 당장이라도 특유의 식식대는 숨소리가 들릴 것 같습니다.”
자칭 스타워즈 덕후라는 김캡 시인의 말에 나도 맞장구를 쳤다.

“맞습니다. 어릴 적 가슴 뛰게 했던 추억이 생생하게 살아나는군요.”

은하 제국의 우주선 앞에서 사진을 찍는 관람객들.      사진제공 | 롯데월드

은하 제국의 우주선 앞에서 사진을 찍는 관람객들. 사진제공 | 롯데월드

빛나는 스크린 기둥이 앞길을 열었다. 엘리베이터로 가는 길은 멀었지만 지루할 겨를이 없다. 은하수를 통째로 쏟아부은 미디어 아트가 발길을 붙잡은 까닭이다. 시선을 돌리면 사방이 우주. 벽면 가득 중력을 잊은 우주 바위들이 허공을 유영하며 신비감을 더했다.

테마 공간에 들어서자 그로구 피규어 앞에서 장난치며 포즈를 취하는 관객들이 보였다.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어둠 속에서 번쩍이는 홍청색 LED 불빛은 낯선 미래 도시에 발을 디딘 듯한 기분을 안겼다.

이어 실린더 내부에서 파랗게 깜빡이며 압도적인 위엄을 발산하는 다스베이더의 홀로그램 장치 앞을 지나쳤다. 시선을 사로잡는 정교한 광경에 감탄하는 사이, 드디어 초고속 승강기 ‘스카이셔틀’의 문이 열렸다.

지상에서 출발해 117층까지 도달하는 시간은 단 60초. 승강기가 아니라 수직으로 도약하는 미디어 갤러리다. 문이 닫히는 순간 벽면은 우주선 창공으로 변했다. 시공간을 가르는 영상이 눈앞을 거세게 스쳤다. 고속 상승의 압력에 귀가 멍멍해질 때쯤 눈길은 층수를 알려주는 인디케이터로 향했다. 빠르게 증가해 가는 숫자에 시선을 빼앗긴 찰나, 신기하게도 마음속 복잡한 걱정들이 휘발됐다. 나는 이것을 ‘승강기멍’이라 부르기로 한다.

김캡 시인이 입을 열었다.
“이 무서운 속도로 하늘을 뚫고 올라가는데 제 마음은 오히려 고요해집니다.”

“그게 바로 승강기멍의 매력이지요. 물멍이나 불멍을 뛰어넘는 이 짧은 몰입의 시간을 저는 무척 사랑합니다.”

순식간에 117층에 도착해 문을 나서자, 유년 시절의 낡은 추억을 소환하는 황금빛 로봇 C-3PO와 귀여운 R2-D2 조형물이 우리를 반겼다.

통유리창 너머로 굽이치는 한강 줄기를 따라 묵직하게 내려앉는 붉은 일몰을 온전히 목격했다. 인주를 듬뿍 묻혀 아파트 매매 계약서 정중앙에 선명하게 찍어 누른 도장 같은 강렬한 태양이었다.

맑고 붉은빛이 한강의 일렁이는 물결 위로 부드럽게 번져나가는 풍경은 무척이나 시적으로 보였다. 최종 관람층인 121층은 진짜 스타워즈 우주선 내부처럼 꾸며져 있었다. 은하 제국의 우주선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한 공간 중심에 위풍당당하게 버티고 선 다스베이더 형상 앞을 지날 때마다 “내가 네 애비다”라는 특유의 중저음 환청이 귓가를 맴도는 듯해 혼자 헛웃음을 웃었다.

어느덧 창밖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통유리창에 이마를 바짝 대고 아득한 발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거미줄처럼 뻗어 나간 빌딩 숲의 촘촘한 불빛들이 거대한 은하계의 별무리처럼 반짝이며 물위를 흐르고 있었다.

소음이 지워진 하늘 위는 아늑했다. 현실을 벗어난 공간에서 마주한 정적은 다정했다. 우주의 빛나는 조각을 품에 안은 듯, 마음속에 지독하게 아름다운 평온이 찾아왔다. 김캡 시인이 펜을 꺼냈다. 툭, 시가 떨어졌다.

제목 : 서울야경 (김캡 시)

매콤하게 삼켰던 칼낙지 양념처럼
대로 위 불빛들이 붉은 강을 이루네
한강의 품속으로 그 온기 스며들며
고단했던 하루에 마침표를 찍는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