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전 ‘희망포’ 쏘아올린 백승호, “내 인생을 걸었던 소중한 30분” [사커피플]

입력 2022-12-1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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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백승호는 6일 도하 974 스타디움에서 열린 브라질과 2022카타르월드컵 16강전을 통해 본선 데뷔전을 치렀다. 4골 차이로 뒤진 상황에서도 호쾌한 왼발 중거리 슛으로 브라질 골문을 열어 자존심을 세운 그는 “우리가 어떤 팀인지 꼭 보여주고 싶었다”고 월드컵 데뷔골 소감을 전했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우리가 어떤 팀인지 꼭 보여주고 싶었다.”

세상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30분. 누군가에게는 짧을 수도, 누군가에게는 긴 시간일 수도 있다. 백승호(25·전북 현대)에게는 전자였다. 정말 순식간에 흘러갔다. 그러나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했고, 또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다.

6일(한국시간) 도하 974 스타디움에서 열린 한국-브라질의 2022카타르월드컵 16강전. 벤치에서 출발해 몸을 풀던 백승호는 후반 20분, 지친 황인범(26·올림피아코스)을 대신해 꿈의 그라운드를 밟았다.

사실상 승부는 갈린 시점이었다. 우루과이(0-0 무)~가나(2-3 패)~포르투갈(2-1 승)과 조별리그 H조 3경기에 이미 모든 것을 쏟았던 한국은 브라질을 맞아 전반에만 4실점했다. 사상 첫 ‘원정 월드컵 8강 진출’은 가물가물해졌지만 태극전사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버텼고, 짜릿한 한 방으로 자존심도 지켰다. 백승호가 투입 11분 만에 통렬한 중거리포로 1-4 스코어를 만들었다.

이날 주어진 추가시간을 포함해 30분을 뛴 백승호는 12일 스포츠동아와 만나 “상황은 많이 좋지 않았어도 한 점 후회를 남기기 싫었다. 우리 모두가 그랬다. 직접 뛴 동료들도,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본 동료들도 사력을 다했다. 브라질전의 골은 내가 아닌, ‘함께’ 만든 득점이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사실 맞는 순간, 좋은 결과를 직감하긴 했다. 그는 “리바운드 볼을 잡았을 때 제대로 (발에) 얹혔다는 느낌이 딱 들었다. 게다가 브라질 골키퍼 알리송이 막기 어렵게 적절히 (상대 수비 몸에 맞아) 굴절도 이뤄졌다”고 털어놓았다.

훈련의 효과가 컸다. 소속팀 전북에서도 팀 훈련이 끝나면 마무리 훈련 삼아 슛을 많이 시도했다. 하루 수십 차례의 연습조차 부족하다고 느꼈으나, 월드컵을 앞두고 영점조정은 거의 완벽하게 돼 있었다.

백승호는 “브라질이 두렵지 않았다. 딱 하나 아쉬운 것은 우리가 너무 지쳐있었다는 부분이다. 브라질은 (카메룬과) 조별리그 3차전에서 로테이션을 했으나 우리는 그럴 수 없었다. 하루만 더 쉬었더라면 더 좋은 결과가 가능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럼에도 한국은 충분히 찬사를 받을 만했다. 우승이 아니면 실패인 브라질과 달리 한국축구로선 16강도 대단한 업적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축구를 잘하는 32개국이 출전해 절반에만 주어지는 영예다. 생애 첫 월드컵에서 직접 뛰어봤고, 득점자로도 기록됐으니 백승호에게는 더 없이 아름다운 여정이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물론 대표팀과 동행이 마냥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파울루 벤투 감독(53·포르투갈)의 부름을 받아 2019년 6월 이란과 친선경기(1-1 무)로 A매치에 데뷔한 그는 그해 10월 스리랑카와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8-0 승)을 끝으로 잠시 잊혀졌다. 다시 태극마크를 단 시점은 그로부터 2년여가 흐른 지난해 11월 이라크와 아시아 최종예선(3-0 승)이었다. 이를 계기로 백승호는 ‘붙박이 멤버’에 가까워졌고, 월드컵 출정식을 겸한 11월 아이슬란드와 평가전(1-0 승)에서 확신을 품게 됐다.

그렇게 월드컵 최종 엔트리(26명)에 발탁됐으나, 실전 출전은 다른 문제였다. 조별리그 내내 몸만 풀어야 했다. 하지만 실망할 틈은 없었다. 그 때, 그 순간, 그 자리에 자신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값진 일이었다. 김진수(30·전북), 홍철(32·대구FC) 등 대표팀 베테랑들의 격려 역시 큰 힘이 됐다.

그렇게 다가온 브라질전. 틈틈이 “훈련태도가 좋고 전술 이해도도 높다”고 칭찬한 벤투 감독은 조급해하지 않고 묵묵히 기다리던 백승호를 교체 투입하면서 “절대 서둘지 말자. 기다리면 꼭 기회가 온다”고 격려했고, 정말로 그렇게 됐다. 벤투 감독은 대표팀의 마지막 공식행사인 8일 청와대 만찬을 마친 뒤에는 다른 선수들과 함께 백승호를 따듯하게 안아주며 “네가 어디에 있든지 항상 지켜보고 응원할 것”이라고 담담하게 이별 메시지를 전했다.

백승호는 “길진 않았으나 (벤투) 감독님과 함께한 시간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며 “내게 많은 것을 주신 분이다. 월드컵 경험으로 한 뼘 더 자라났다. 앞으로 내가 향할 방향, 다음 스텝을 또렷하게 정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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