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원 1년, 궁중 다과 체험부터 연극 산책까지 특별한 오늘 선사


수원 화성행궁 별주에서 열리는 세계유산 활용 프로그램 ‘수원화성 태평성대’ 참가자들이 혜경궁 궁중 다과 체험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수원시

수원 화성행궁 별주에서 열리는 세계유산 활용 프로그램 ‘수원화성 태평성대’ 참가자들이 혜경궁 궁중 다과 체험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수원시



조선 후기, 백성을 사랑하고 효심이 깊었던 성군 정조가 만든 계획도시 수원에는, 노년에 태평성대를 바라보며 머물고자 했던 그의 염원이 담긴 화성행궁이 웅장한 규모와 격식으로 자리하고 있다. 230년 전 정조가 꿈꿨던 평화로운 세상은 복원 완료 1년을 맞이한 지금, 화성행궁 곳곳에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다. 누구나 자유롭게 거닐며 아름다운 추억을 사진으로 담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이곳으로 초대한다.

●‘별주’에서 즐기는 궁중 다과, ‘우화관’에서 만나는 행궁 연극

화성행궁 별주에서 혜경궁 궁중 다과 체험에 제공되는 다과상. 사진제공|수원시

화성행궁 별주에서 혜경궁 궁중 다과 체험에 제공되는 다과상. 사진제공|수원시


오는 5월 9일부터 화성행궁의 아늑한 공간 ‘별주’에서는 조선시대 최고의 회갑 잔치 음식을 모티브로 한 특별한 궁중 다과 체험이 시작된다. 2025 세계유산 활용 프로그램 ‘수원화성 태평성대’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혜경궁 궁중 다과 체험’은, 혜경궁 홍씨의 진찬연 때 음식을 만들던 역사적인 장소에서 전통 음악을 감상하며 눈과 입이 즐거운 특별한 다과상을 경험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다. 특히, 이번 프로그램은 행궁동 주민들이 직접 기획하고 운영하는 최초의 화성행궁 활용 프로그램으로, 5월과 6월 금·토요일 저녁 7시부터 하루 18명 한정으로 특별한 다과상을 선보일 예정이다.

혜경궁 궁중 다과 체험에서는 1인 다과상에 총 9가지의 정갈한 다과가 제공된다. 끊임없이 덩굴을 뻗어나가는 오이처럼 자손의 번창과 가문의 번영을 기원하는 ‘오이선’, 발효 과정을 거쳐 소화가 잘 되는 떡 ‘증편’, 나이 많은 어머니를 위해 부드러운 고기를 올린 아들의 따뜻한 마음을 담은 ‘떡갈비’, 상큼함을 더해 입맛을 돋우는 ‘사과단자’ 등이 든든한 요기를 채워준다. 이와 함께 녹말병이라고도 불렸던 묵 형태의 ‘밤편’, 무병장수와 부귀영화를 기원하는 꽃나무 가지 모양의 아름다운 ‘요화과’, 혜경궁에게 진상됐던 유자정과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상큼한 ‘금귤정과’ 등 맛은 물론 보기에도 정갈한 디저트가 준비돼 있다. 여기에 양녕대군과 인조가 즐겨 먹었던 것으로 유명한 특별한 맛의 ‘수원약과’와, 궁중에서 더위를 쫓기 위해 마셨던 고급 음료이자 사도세자가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마셨다고 전해지는 ‘제호탕’ 등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를 품은 음식들도 함께 맛볼 수 있다.

화성행궁 별주에서 혜경궁 궁중 다과 체험에 제공되는 다과상. 사진제공|수원시

화성행궁 별주에서 혜경궁 궁중 다과 체험에 제공되는 다과상. 사진제공|수원시


다과 음식에 담긴 깊은 의미를 알지 못해도 괜찮다. 혜경궁 궁중 다과 체험 장소인 ‘별주’ 자체가 프로그램의 특별함을 더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꼭 1년 전 복원을 마치고 처음으로 시민들에게 개방된 이 공간은, 혜경궁 홍씨의 회갑 잔치 음식을 준비했던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장소이다. ‘원행을묘정리의궤’를 바탕으로 재현된 궁중 다과상의 ‘원조’인 셈이다. 화성행궁 내 공간 중 유일하게 신발을 벗고 편안히 앉아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곳이자, 이러한 형태의 프로그램은 처음이다. 별주 한 칸에 자리를 잡고 앉아 창 너머로 은은한 조명이 비추는 아름다운 궁궐을 바라보는 경험은 그 자체로 힐링이 된다.

이 특별한 궁중 다과 메뉴는 행궁동 주민들이 직접 정성껏 만든다. 행궁마을협동조합 소속 10명의 ‘수라지기’들은 지난해 12월부터 매주 모여 궁중 음식과 화성행궁의 역사 등 이론 교육을 받고, 다과 메뉴와 조리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연구하는 과정을 거쳐 비로소 이 다과상을 완성했다. 별주에는 조리 시설이 없어 인근에서 당일 조리한 신선한 음식을 가져와 다과상에 정성스럽게 담아낸다.

혜경궁 궁중 다과 체험은 인터파크를 통해 사전 예약해야 참여할 수 있다. 2인 기준 5만 원의 참가비가 있다. 일부 좌석은 10% 할인된 가격으로 제공된다. 1차 프로그램은 6월 28일까지 진행되며, 2차 프로그램은 오는 9월 5일부터 11월 1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태평성대’를 생생하게 그려내는 또 다른 세계유산 활용 프로그램으로는 ‘주민 배우와 함께하는 고궁 산책’이 있다. 이는 복원이 완료된 화성행궁의 주요 공간들을 주민 배우와 함께 걸어보며 역사 이야기를 듣는 특별한 역사 투어 프로그램이다. 행복장인 2인과 해설을 맡은 동행지기가 함께 이동하며, 신풍루, 유여택, 봉수당, 장락당, 노래당, 낙남헌, 우화관 등 주요 장소에서 역사적인 장면을 흥미로운 연극으로 재현해 몰입도를 높인다. 낙남헌 연못과 조선시대 궁궐 정원 조성 기법인 ‘취병’ 등을 감상하는 것도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다.

행궁동 주민들로 구성된 수라지기들이 혜경궁 궁중 다과 체험을 위해 직접 만든 메뉴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제공|수원시

행궁동 주민들로 구성된 수라지기들이 혜경궁 궁중 다과 체험을 위해 직접 만든 메뉴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제공|수원시


특히, 고궁 산책 프로그램의 마지막 코스인 우화관은 지난해 새롭게 복원을 완료한 의미 있는 공간이다. 과거 신풍초등학교가 자리했던 곳이기도 했다. 우화관은 원래 왕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시고 수령이 매달 의례를 거행하던 중요한 장소였다. 건립 당시에는 사통팔달의 의미를 담아 ‘팔달관’이라고 불렸으나, 정조가 1795년 수원 행차를 기념해 ‘우화관’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는 ‘태평성대로 나아간다(于華)’는 의미에 ‘볼 관(觀)’자를 더해 수원화성이 태평성대로 발전하는 모습을 지켜보고자 했던 정조의 깊은 뜻을 담고 있다. 복원된 우화관 내부에는 방문객들이 화성행궁의 역사와 복원 과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설명 자료들이 마련돼 있으니, 꼼꼼히 살펴보는 것을 추천한다.

주민 배우와 함께하는 고궁 산책에 참여하는 행복장인과 동행지기들이 화성행궁 봉수당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수원시

주민 배우와 함께하는 고궁 산책에 참여하는 행복장인과 동행지기들이 화성행궁 봉수당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수원시


주민 배우와 함께하는 고궁 산책은 네이버 예약 페이지를 통해 회당 15명씩 선착순으로 신청을 받는다. 참가비는 무료이다.

●시민의 힘으로 되살아난 화성행궁… 끊임없는 복원 노력

복원이 완료된 화성행궁 별주. 사진제공|수원시

복원이 완료된 화성행궁 별주. 사진제공|수원시


세계유산 활용 프로그램을 통해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은, 오랜 역사 속에서 훼손과 재건을 반복했던 화성행궁이 시민들의 노력으로 마침내 완전한 복원을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동안 끊임없이 파괴됐던 화성행궁은 수원 시민들의 주도적인 복원 사업을 통해 비로소 본래의 아름다운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다.

구한말까지 관아로 사용됐던 화성행궁은 1905년 우화관이 수원공립소학교로 바뀌면서부터 아픔을 겪기 시작했다. 특히, 국권을 빼앗긴 1910년 이후로는 행궁의 파괴가 더욱 본격화됐다. 가장 위상이 높았던 건물인 봉수당은 ‘자혜의원’으로 운영됐고, 주변 행각까지 병실과 약품 창고로 사용되는 등 본래의 모습을 잃어갔다. 심지어 1923년에는 행궁을 완전히 허물고 경기도립병원을 세우는 계획이 실행돼 해방 이후까지 수원의료원이라는 이름으로 그 자리를 지켰다. 1980년대 후반에는 현대식 고층 빌딩으로 신축하겠다는 계획까지 세워져 화성행궁의 원래 모습은 역사 속 기록으로만 남을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복원된 화성행궁 우화관 외관. 사진제공|수원시

복원된 화성행궁 우화관 외관. 사진제공|수원시


화성행궁의 운명을 극적으로 바꾼 것은 바로 수원 시민들의 뜨거운 열정과 헌신이었다. 1989년 5월, 향토 사학자 이승언 선생이 채색된 화성행궁 그림을 발견하면서 복원 논의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당시 문화원장이었던 심재덕 초대 및 2대 수원시장을 중심으로 ‘화성행궁복원추진위원회’가 발족됐고, “수원화성의 얼과 정신을 되찾기 위해 행궁을 반드시 복원하자”는 강력한 의지를 담은 발기문 선포까지 채 한 달이 걸리지 않았다. 복원추진위원회는 대통령 비서실, 내무부, 문화재관리국 등 관련 정부 기관에 복원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설득하는 노력을 끊임없이 이어갔다. 지역 인사들의 끈질긴 노력 덕분에 봉수당 자리에 있던 수원의료원은 이전이 결정됐고, 마침내 1993년 철거됐다.

이후 수원시는 3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끈기 있게 화성행궁 복원 사업을 추진했다. 1단계 사업으로 1994년부터 시굴 조사와 복원 기본 계획을 수립했고, 총 5차에 걸친 철저한 발굴 조사를 진행했다. 1996년 7월 마침내 복원 공사에 착공해 1998년 3월 봉수당이 가장 먼저 웅장한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2003년 10월에는 신풍루까지 차근차근 화성행궁 내 482칸을 복원해 시민들에게 감동적인 개방을 맞이했다. 2004년부터는 2단계 사업으로 관아와 군영으로 사용됐던 권역의 옛 모습을 되살리는 작업에 착수했다. 화성행궁 앞 넓은 광장이 조성됐고, 관아 기능을 수행했던 우화관과 별주를 복원해 마침내 지난해 4월 24일 시민들에게 다시 한번 감격적인 개방을 이루었다.

복원 완료된 화성행궁 우화관 내부. 사진제공|수원시

복원 완료된 화성행궁 우화관 내부. 사진제공|수원시


화성행궁의 물리적인 복원은 마무리됐지만, 수원시는 수원의 고유한 정체성이 담긴 수원화성이 온전한 모습을 되찾고 시민들이 더욱 가까이에서 역사 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복원 사업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화성행궁 복원을 넘어 수원화성 전체가 끊김 없이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이다.

현재 진행 중인 하남지 부분 복원 사업이 대표적인 예이다. 수원화성 남쪽 내부에 있었던 두 개의 연못 중 아래쪽에 위치했던 하남지를 복원하는 사업으로, 남창초등학교 앞 행궁동 공방거리가 시작되는 부근에 자리하고 있다. 수원시는 지난 2020년부터 발굴 조사를 진행해 하남지의 서쪽 외곽 경계와 과거 시설의 흔적을 확인하는 중요한 성과를 거두었다.

하남지 복원은 국가유산청으로부터 부분 복원을 승인받은 상태이다. 이후 실시 설계와 세계유산 영향 평가 등 관련 절차를 거친 뒤 본격적인 복원 공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수원시는 오는 2029년 복원된 아름다운 하남지를 시민들에게 개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하남지 복원은 수원화성 내부의 도시 경관을 복원하는 첫 번째 시도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지며, 수원시는 하남지를 지역 주민과 함께 상생하는 문화 공간으로 조성해 그 의미를 더욱 깊게 할 예정이다. 본격적인 복원 공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하남지 부지를 녹지로 조성해 시민들의 편안한 휴게 공간으로 제공하는 것 역시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지난해 4월 수원 화성행궁 우화관 및 별주 복원 개관식에서 이재준 수원시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수원시

지난해 4월 수원 화성행궁 우화관 및 별주 복원 개관식에서 이재준 수원시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수원시


궁극적으로 수원시는 수원화성 성곽 전체를 온전히 이어내는 것을 수원화성 복원의 최종 목표로 삼고 있다. 화성행궁 복원에 만족하지 않고 팔달문 좌우로 끊어진 성곽을 연결하기 위한 복원 사업 역시 끈기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의지를 확고히 하고 있다.

수원시 화성사업소 관계자는 “세계유산 수원화성 복원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건축물의 형상을 되살리는 것을 넘어, 시민들의 자긍심을 회복시키는 매우 중요한 일”이라며 “시민들의 손으로 정성껏 복원한 아름다운 건축물을 시민들이 직접 다채롭게 활용해 세계유산의 가치를 창출하는 ‘태평성대’ 프로그램에 많은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경기|장관섭 기자 localcb@donga.com


장관섭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