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생들이 국가 보훈부 장관에게 편지를 보낸 사연 … “제2의 헐버트가 되겠습니다!”

입력 2024-01-16 15: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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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호머 헐버트를 꿈꾸는 미국 청년들의 호머 헐버트 홍보 활동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호머 헐버트 홍보 영상 제작 및 홍보활동
호머 헐버트 박사의 훈격 상향 청원서 국가 보훈부 장관에게 편지
미국인 대학생들이 100년전 한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미국인 호머 헐버트 박사의 훈격을 상향시키기 위해 한국 국가보훈부 장관에게 편지를 보내고, 전세계에 홍보활동을 추진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반크에서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호머 헐버트 박사를 알게된 미국 청년들은 미국 하와이대 재학생인 미셸 브래들리(23세), 브라이언(22세)이다.

1886년 육영공원의 교사로 한국에 온 헐버트 박사는 한국의 역사, 문화 등에 관한 20권의 단행본과 304편의 논문, 기고문을 발표해 한국을 세계에 알린 인물이다. 한국의 국권 회복을 위해 38년간 투쟁했으며,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국제사회에 왜곡된 한국의 역사를 바로잡는 데 앞장섰다.

두 명의 미국 청년들의 꿈은 장래 한국과 미국의 우정과 친선을 높이는 ‘제2의 헐버트’가 되는 것.
이들은 미국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는 한국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인 한국어 플래그십(TLF) 출신이며, TLF에 따라 4학년 때 고려대에서 1년의 현지 학습 과정을 거치기 위해 방한했다.

반크는 2012년부터 고려대와 협력해 한국어 플래그십 인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반크에서 이들이 하는 주요 업무는 호머 헐버트의 업적을 전세계에 알리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활동이며, 이 활동을 하던 중 호머 헐버트 박사의 훈격 상향 청원서를 직접 작성해 국가 보훈부 장관에게 보낼 결심을 했다고 한다.

미셸 브래들리(23세)는 국가보훈부 장관에게 보낸 편지에서 “저는 반크를 통해 호머 헐버트 박사를 알게 되었습니다. 헐버트 박사는 저처럼 한국에 관심이 많았던 미국인이었는데, 저는 반크에서 인턴하기 전까지 헐버트 박사에 대해서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고 밝혔다.


그는 반크 활동울 통해 호머 헐버트 박사라는 인물이 100년전 한국을 위해 노력한 업적을 알게 되었고, 헐버트 박사의 업적이 전세계 사람들에게 더 널리 알려져 그가 존경받고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호머 헐버트 박사는 한국에 대해 많은 글을 쓴 작가였고 해외에서 한국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던 부분을 많이 고쳤습니다. 또 한국 문화를 홍보하면서 왜곡된 사건과 잘못된 선입견을 바로잡는 일을 했습니다.”

미셀 브래들리는 100년 전 한국을 위해 기여한 호머 헐버트 박사를 제대로 표창하여 그를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국가 보훈부 장관에게 “호머 헐버트의 훈격을 상향시키는 것과 호머 헐버트의 고향인 미국 버몬트 주에 호머 헐버트 동상을 세우는 것을 도와주실 것”을 호소했다.

“현재 한국 정부가 추서한 호머 헐버트 박사의 훈장은 건국훈장 독립장으로 이는 서훈등급 3등급에 해당합니다. 호머 헐버트 박사가 서훈을 받을 당시 그의 공적은 ‘헤이그 밀사 파견 협력’이라고 단 한 줄만 적혀 있었습니다. 한국을 위해 헌신한 호머 헐버트 박사의 훈격을 더 높은 등급으로 올려야 한다고 생각하며, 한국 정부가 호머 헐버트의 훈격을 높인다면 호머 헐버트 박사의 고국인 미국과 한국과 관계도 더 좋아질 것입니다.”


미셀 브래들리는 편지 말미에 “미국인과 외국인들이 호머 헐버트 박사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된다면, 저처럼 더 많은 사람들이 그로부터 영감을 받아서 한국에 관심을 갖고 열정 있게 한국의 발전에 기여할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싶습니다”라고 썼다.

또 다른 미국 하와이대 학생인 브라이언(22세)은 국가보훈부 강정애 장관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사람>이라는 사람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한국에 도착하기 전에 이 사람에 대해 전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또 물어봤지만, 비슷한 반응이었습니다. 진짜 당황했습니다! 이렇게 인상적인 사람을 모르는 사람이 왜 많을까요?”라고 질문했다.

이어 “저는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사람인 호머 베잘릴 헐버트를 세계에 알리기 결심했습니다. 저는 장관님께서 이 편지를 읽으시면서 제가 호머 헐버트 박사에 대해 느끼는 감정과 같은 감정을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다.

브라이언은 “헐버트 박사는 1863년 버몬트 출신 미국인으로 한국을 만나자마자 한글, 한국의 문화, 역사의 매력에 빠졌습니다. 그 이후 그는 63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국을 위해 살아왔습니다. 그는 교육자, 언어학자, 기자, 역사학자, 선교사, 대한제국 황제의 고문위원, 한국 독립운동 지지자였습니다. 헐버트 박사는 한국과 한국어에 사랑에 빠져 있었습니다! 한국어를 두 해 사이에 완전히 터득하고 170장 분량의 책인 ‘사민필지’를 3년 안에 쓰는 도전까지 했습니다. 저는 4년 동안 한국어를 배우고 있지만, 한국어로 책을 쓴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라며 헐버트 박사의 한국 사랑을 칭송했다.

그는 “한국 황제 고종은 헐버트 박사의 노력을 인상깊게 여겼고, 일본에 대항하여 한국의 독립을 위해 헐버트 박사를 특사로 임명했습니다. 헐버트 박사의 첫 임무는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에게 조미수호통상조약의 조건을 지키고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직접 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시어도어 행정부로부터 편지의 요청을 거부당했습니다. 그래도 헐버트 박사는 이런 임무를 다시 시도하기 위해 1907년 만국평화회의가 열린다는 소식 후 임명된 헤이그 특사 3명을 도우며 편지를 전달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로비활동에 막혀 차단당했습니다. 그때 많은 사람은 이미 포기했을지도 모르지만, 헐버트 박사는 한국의 독립을 위해 어려움을 무릅쓰고 여론을 모았습니다. 신문 기사를 끊임없이 게재하여 1945년 한국이 광복할 때까지 한국의 독립을 위해 지지를 모으려고 했습니다”라고 헐버트 박사의 독립운동 업적을 소개했다.



브라이언은 “헐버트 박사의 공로를 인정해 한국 정부는 1950년 그에게 외국인 최초로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지만, 한국의 독립을 싸우기 위해 인생을 헌신한 헐버트 박사의 삶을 더 알리고 높이 삼아야 하며, 우리는 그의 훈장인 3등급 독립장을 1등급 대한민국장으로 격상해야 합니다”라고 호소했다.

브라이언은 “저는 꿈이 있으며, 그 꿈은 바로 헐버트 박사의 고향에 버몬트 주 뉴헤이븐에 동상을 세우는 것입니다. 헐버트 박사의 한국을 위한 끊임없는 지원을 보답하는 마음으로 이 동상을 세워 상징으로 삼고 싶습니다”라고 밝혔다.

전 세계 한류열풍으로 한류팬이 1억 7000만 명이 넘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들은 한류에 관심이 있을 뿐 한국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 특히 100년 전 한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호머 헐버트와 같은 외국인 독립운동가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다.

반크는 “21세기 호머 헐버트가 되고 싶다”는 미국 청년들의 활동으로 전세계 1억 7000만 한류 팬들이 호머 헐버트와 같이 한국과 함께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역으로 변화되기를 바라는 한편 무엇보다 국가보훈부에서 호머 헐버트의 훈격을 높이고, 미국에 호머 헐버트 동상이 세워질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양형모 스포츠동아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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