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이 말한다] 김봉연의 1983년 KS 3차전

입력 2009-10-1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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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연.스포츠동아DB

스리런·쐐기타 ‘5타점 원맨쇼’
교통사고 부상 극복 ‘인간승리’

“프로에서 홈런 100개를 넘게 쳤지만 그때의 홈런이 아직도 가장 기억에 남아요.”

해태는 가을의 강자였다. 그 신화의 시작을 장식했던 김봉연(57·사진) 극동대 교수. 올해 KIA가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자 남모를 감회에 젖었다.

1982년 초대 홈런왕에 올랐던 해태 4번타자 김봉연은 1983년 올스타 브레이크 때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했다. 전기리그를 마치면서 홈런 타점 장타율 3개부문 1위를 달린 그에겐 치명적인 재앙이었다.

“친구와 가족동반 야유회를 갔어요. 어머니까지 모시고 여수에 회를 먹으러 갔다 광주로 돌아오는 길이었죠. 가족들이 많아 저는 친구차를 타고 갔는데 차가 가드레일을 뚫고 논두렁으로 떨어졌어요. 그 자리에서 친구 부인은 숨졌죠. 저도 사고 당시 기억은 전혀 없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얼굴과 머리에 314바늘을 꿰맸다고 하더라고요.”

얼굴의 흉터를 숨기기 위해 콧수염을 길렀다. 그리고는 기적적으로 재기해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불방망이를 휘둘렀다. 그 중에서도 잠실에서 열린 3차전은 그야말로 독무대. 5-3으로 승리했는데 혼자 5타점을 올리며 4번타자의 위용을 과시했다.

1회초 2사 2루서 선제 2루타. 그리고 3회 무사 1·2루에서 MBC 김동엽 감독이 선발투수 이광권을 빼고 하기룡을 투입하자 초구를 통타해 좌월 3점홈런을 날렸다. 4-3으로 쫓긴 7회말 내야땅볼로 3루주자를 불러들이는 쐐기 타점을 올렸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하기룡에게 무척 약했어요. 그래서 무조건 초구부터 치려고 마음먹었죠. 지금도 눈앞에는 그 홈런의 궤적이 그려집니다.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어쩌면 교통사고가 저에게는 전화위복이 됐는지 몰라요. 프로 들어올 때 서른 살이었는데 2∼3년 정도 활약하면 성공이라고 생각했어요. 교통사고 후 술 담배 다 끊으면서 7년을 뛰었으니까요.”

해태는 4차전 1-1 무승부 후 5차전 8-1 승리로 4승1무로 9회 우승신화의 첫 단추를 끼웠다. 김봉연은 콧수염을 휘날리며 한국시리즈 19타수 9안타(타율 0.474) 1홈런 8타점으로 MVP에 오르는 인간승리의 드라마를 썼다.

“대부분 전문가들이 MBC 청룡의 우세를 점쳤어요. 객관적인 전력도 MBC가 훨씬 좋았죠. 해태야 지원도 거의 없는 구단이었고, 원년에 선수 15명으로 시작했던 팀 아닙니까. 83년 해태는 20승 투수 이상윤이 있었지만 마운드도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MBC가 훨씬 좋았어요. 물론 베스트 멤버는 해태가 어디에 내놔도 밀리지 않았지만 백업요원이 없어 대부분 아파도 쉴 수 없는 상황이었죠. 해태는 정신력으로 숱한 우승신화를 만들었어요. 그야말로 헝그리 정신이었죠.”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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