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철&박찬호 유쾌한 토크] 박찬호 “난 정코치 돕는 큰아들”

입력 2012-02-2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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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박찬호(오른쪽)는 훈련시간 등 공적인 자리에서는 동기생인 정민철 투수코치에게 꼬박꼬박 “코치님”이라고 존칭을 붙인다. 그러나 스파이크 끈을 풀면, 편한 친구 사이로 돌아온다.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하기 때문에 ‘애정남(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은 출동할 필요가 없다.오키나와(일본) | 배영은 기자

박찬호 빠른볼은
고교시절부터 전국적으로 유명
난, 귀공자 같은 외모로…ㅎㅎ

다저스시절 대단했잖아요
호투하면 대한민국이 들썩들썩



워낙 대스타라 걱정 했지만…
후배들에 먼저 스킨십
제 부담 많이 덜어줍니다

-정민철 코치



다저스시절 정코치 LA 왔는데
그땐 제가 머리가 좀 컸을때라
연락받고도 못만났죠 ㅋㅋ

동기생 선수-코치 불편한 조합?
코치님 덕에 적응 쉬워진걸요

함께한 두달, 허물없이 소통
걸어온 길 달라도 열정은 하나
팀의 장남처럼 정코치 도와야죠


-박찬호

한 무리의 젊은 선수들이 곁을 지나갔다. 시끌벅적 왁자지껄. 잠시 대화가 끊겼다. 박찬호(39)가 벌떡 일어나더니 정민철(40) 투수코치에게 말했다. “코치님, 제가 조용히 시키고 오겠습니다.” 정 코치가 느긋한 자세로 지시했다. “그래, 갔다 와.” 하지만 선수들이 탄 엘리베이터의 문은 이미 닫힌 후. 박찬호가 짐짓 아쉽다는 듯 “코치님, 애들이 사라졌습니다”라고 말하자 정 코치가 한숨을 내쉬며 손짓을 했다. “할 수 없지. 와서 앉아.” 잠시 침묵. 그리고 이내 폭소가 터졌다. 두 친구가 펼친 익살스러운 상황극이었다. 한국프로야구와 메이저리그에서 각각 빛나는 업적을 쌓은 정민철과 박찬호. 두 동기생 고수가 2012년 한화에서 지도자와 선수로 손잡았다. 스포츠동아는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두 사람을 함께 만나 서로에 대한 믿음과 생각, 그리고 각자의 역할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유머 감각으로 정평이 난 두 사람의 대화답게 인터뷰는 유쾌한 농담으로 시작됐다.

 박찬호가 정민철(이상 한화) 투수코치와 호흡을 맞춘다면? “…” 솔직히 그랬다. ‘메이저리그 124승 투수’ 박찬호는 어느 지도자도 버거워할 만한 존재다. 게다가 정 코치는 박찬호의 동기생. 야구계에서는 분명 우려의 시선이 존재했다. 하지만 모든 것은 그 속사정을 들여다 보지 못한 사람들의 기우일 뿐이었다. 훈련시간을 포함한 공적인 자리에서 박찬호는 정민철 코치에게 꼬박꼬박 “정 코치님”이라고 불렀다. 정 코치 앞에 무릎을 꿇은 채로 장난스럽게 설정 포즈를 취해준 박찬호의 모습이 야구장 안 공적인 자리에서 둘의 관계를 대변한다. 하지만 해가 지고, 둘이 있을 때면 환한 얼굴로 어깨동무를 하며 친구 사이로 돌아온다. 그 때의 호칭은 “정 코치”다. 글·사진 오키나와(일본) |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트위터 @goodgoer



#정민철(이하 정)=서로 알고 지낸지는 오래됐네요. 초등학교 때부터 이웃 학교였으니까.


박찬호(이하 박)=중학교 때까지는 자주 경기를 했는데, 고교 때는 우리 학교(공주고)랑 천안 북일고가 많이 붙었죠. 정 코치님네 학교(대전고)는 왕따였다고나 할까.


정=찬호는 그때부터 볼이 빨라서 전국적으로 유명했어요. 저는 그냥 가능성 있는 투수 정도였고. 오히려 귀공자 같은 외모로 잘 알려졌었죠. (폭소)


박=제가 미국에 간 후에는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어요. LA 다저스에 있을 때 정 코치님이 개인훈련을 하러 LA에 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연락은 받았지만 못 만났어요. 제가 좀 머리가 컸을 때라 너무 바빴거든요. 머리 다이어트를 하기 전이라…. (다시 폭소)


정=선수 시절에는 저야 잘 던지면 하루 정도 신문에 크게 나는 정도였지만 찬호는 잘 던지면 대한민국이 떠들썩했잖아요. 저도 저 무대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어요.


박=사실 저와 오랜 친구인 넥센 홍원기 코치가 정 코치님과 굉장히 친해요. 홍 코치에게 좋은 친구라고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겨울에 가족끼리 저녁식사 한 번 하려고 했는데 안타깝게도 시간이 안 맞아서 또 못 봤네요.


정=등산도 한 번 가려다가 찬호는 제주도에 있고 저는 강원도에 있어서 무산됐고.


박=지난 시즌이 끝나고 한화 입단을 준비하면서 정 코치님에게 훈련 프로그램부터 준비해야 할 것들까지 많은 부분을 상의했어요. 편안하게 묻고 얘기할 사람이 있으니까 저도 스트레스 없이 적응을 시작했던 것 같아요.

박찬호는 인터뷰 내내 꼬박꼬박 ‘정 코치님’이라고 했다. 야구장에서 대화할 때도 꼭 존칭을 붙인다고 했다. 공과 사는 철저히 구분하고 지킬 건 서로 지키자는 데에 두 사람의 생각이 일치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걱정스러운 시선도 있었다. 한국 야구가 낳은 최고의 스타와 동기생 투수코치의 애매한 조합. 하지만 모든 게 기우에 불과했다. ‘애정남(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조차 필요 없을 만큼.


#박=사실 걱정은 다른 분들이 하신 거고, 전 아니었어요. 언젠가부터 한국에서 야구하고 싶다는 희망이 생기면서 당연히 한화를 생각하게 됐고, 2010년 하와이 한화 스프링캠프에서 개인 훈련을 하면서 정 코치님을 만났어요. 그때 얘기를 나누면서 한화에 대해 좋은 느낌을 더 많이 받았죠. 오히려 코치 입장에서는 주위의 시선이 부담될 수 있었을 것 같아요.


정=박찬호라는 선수가 워낙 대스타니까, 저는 사실 걱정을 하기도 했죠. 하지만 어차피 시즌이 시작되면 둘 다 정신없이 승부에 집중할 거란 말이에요. 저는 박찬호의 친구 이전에 한화 투수코치니까 한 선수에게 편중되지 않으면 돼요. 또 찬호는 저보다 훨씬 유명한 선수였으니 조금씩 자문도 구하고 제가 알고 있는 걸 말해주기도 하고 그래요.


박=어떤 상황이든 어려운 점은 다 있을 거예요. 저는 정 코치님하고 부담 없이 소통하면서 한국 팀문화에 적응하기가 조금 더 쉬워졌어요. 후배들에게는 코치님이 미처 챙기지 못하는 부분을 대신 해줄 수도 있는 거고. 말하자면 집안의 ‘큰 아들’처럼 말이에요.


정=정말 ‘큰’ 아들이네요. (폭소)


박=그렇죠. 또 저는 나이와 커리어와 경험이 많은 장남이잖아요. 최우석이나 임기영 같은 어린 선수들보다는 염려가 덜 되는 아들.


정=맞아요. 찬호가 지금은 오히려 제 부담을 덜어주고 있어요. 한참 어린 조카뻘 후배들에게 스스럼없이 대하고, 지루할 수 있는 캠프 기간에 앞장서서 기를 살려주는 것은 담당 코치로서 분명히 고마운 부분이죠. 선수들이 나중에 이런 부분은 보고 배웠으면 좋겠어요.


박=선수들도 코치님과 제가 웃으면서 얘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에게 친근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낯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죠.

호흡을 맞춘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았지만, 둘은 많은 부분에서 서로 교감하고 있다. 정 코치와 박찬호 모두 ‘소통’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입에 올렸다. 낮에는 코치와 선수로서 철저히 훈련에 집중하고, 밤에는 친구로 돌아가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눈다. 걸어온 길은 많이 달라도, 야구와 승리에 대한 열정이 이들을 하나로 묶는다.


#박=정 코치님도 다른 야구문화(일본)를 경험해봐서 그런지 이해의 폭이 넓은 것 같아요. 제가 남과 다른 부분을 ‘왜 저래?’ 하지 않고 그대로 인정해주거든요. 저도 지난해 일본에서 고생하다 왔기 때문에 통하는 점도 있고. 그리고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야구 철학 같은 걸 저에게 많이 물어봐요. 코치가 되니까 더 궁금한가 봐요.


정=저도 아직 더 많이 배우고 경험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지금 한대화 감독님께 많이 의지하고 있어요. 다만 지금 선수들 개개인이 프로야구 선수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게 돕고 싶어요. 스스로가 소중한 존재라는 걸 깨닫길 바라고요. 박찬호도 그 소중한 선수들 중 한 명이죠.


박=제가 미국에 있을 때, 야구 이외의 인생에 대해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코치였어요. 솔직히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선배 투수들에게 더 많이 배워요. 하지만 정말 힘들 때 어깨에 손 올려주고 등을 두드려준 건 코치들이었어요. 그런 보호자 역할을 정 코치님이 잘 해주고 계세요.


정=저는 프로야구팀 투수코치고, 이 친구는 프로야구팀 투수예요. 둘 다 결국 다른 팀을 이기려고 이렇게 캠프를 치르고 있는 거고요. 하지만 그 과정이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고 믿어요. 남은 한 달, 힘을 합쳐서 더 즐겁게 준비해 보겠습니다.


박=저도 그래요. ‘이기고 싶다’와 ‘이겨야 한다’는 분명히 다르잖아요. 전 이기고 싶어요. 그리고 이왕이면 한화 유니폼을 입고 한화 선수들과 함께 이기고 싶어요.
오키나와(일본) |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goodgo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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